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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대비책 필요하다

핵전쟁 대비책 필요하다

도시지역에서 핵폭탄이 터지면 기존의 공중보건 시스템이 파괴될 뿐 아니라 복구·재건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진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70여 년이 지났으니 핵무기 위협이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는 직시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부정은 한편으론 우리가 핵과 방사능 사고에 거의 대비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는 30여 년 동안 핵 관련 사태(폭발로부터 사고)의 영향을 연구해 왔다. 옛 소련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 지역을 여러 차례 찾아가 연구·교육, 그리고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해 왔다. 지금은 세계핵보건전문가집단(NGHW) 구성안 수립에 관여한다. 그런 단체가 생기면 핵·비핵 관련 기술·보건 전문가를 교육·훈련시키고, 대규모 핵위기 대처에 필요한 준비·조율·협력 그리고 인력조달에 부응하도록 도울 수 있다.

핵전쟁이나 대형 원자로 멜트다운(노심용융)이 일어나면 전 세계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비상사태로 직결된다. 우리는 에볼라 대유행에서 대형 공중 보건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NGHW는 어떤 준비태세를 갖춰야 할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뿐 아니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핵 관련 사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도시에 핵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각각 어림잡아 13만5000명, 6만4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다수 사망자가 폭발 직후 며칠 사이 발생했다. 주로 열성 화상, 심각한 부상, 방사선 노출이 원인이었다.

히로시마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90%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따라서 위기 대응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는 대체로 의료 전문인력과 시설이 도심 지역에 집중됐던 탓이다. 오늘날의 미국 대다수 도시도 전혀 다를 바 없다. 핵 위기에 대한 의학적 대응의 어려움을 오싹하게 상기시켜 준다.

오늘날 도시에서 핵폭탄이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2007년 미국 4개 도시를 겨냥해 핵무기 공격이 발생한다고 가정한 모델을 통해 이 문제를 연구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처럼 사망자의 과반수가 폭발 직후에 발생한다. 그리고 지역의 보건의료 대응 능력을 대부분 상실하게 된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기존의 공중보건 보호막이 파괴될 뿐 아니라 그에 대처하고 복구·재건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모델들은 보여준다.

폭발 후 의료시설이 거의 파괴돼 부상자 치료가 대단히 어렵다. 희생자 분포와 지역의 사전 예측을 통해 남은 자원과 인력 중 무엇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

오늘날 핵폭발로 발생하는 유형과 규모의 부상을 치료할 만한 기술이나 지식을 갖춘 의료인력은 극히 드물다.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방사선 피해자의 치료 경험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을 것이다. 열성 화상의 경우 환자 1명을 치료하는 데도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그런 환자가 한꺼번에 몰려들면 기존의 어떤 의료 시스템도 감당하기 어렵다. 폭넓은 지역의 유리가 거의 깨져 열상 환자도 엄청나게 발생하게 된다.

현재로선 도시 핵폭발로 압도적인 숫자의 환자가 발생할 때 피해지역의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같은 사태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고 정부의 대비책 강구를 돕는 데 NGHW 같은 노력의 중요성이 훨씬 더 커진다.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일
대형 핵 위기가 발생하면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 수십 년 동안 사람이 거주할 수 없다. 사람·경제·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해 위험지역 주민의 대피 결정이 수시간 내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계획과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 같은 대피와 잠재적인 재정착의 규모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예컨대 체르노빌 사고 후 몇 주 내에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최대 오염지역으로부터 11만6000명 이상이 소개됐다. 그 뒤 몇 년 사이 추가로 22만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당국이 엄격히 분류해 통제하는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계속 생활한다. 고질적인 방사능 세슘 오염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곳이다.

후쿠시마 지진과 쓰나미 발생 다음 날 원전 20㎞ 이내 지역으로부터 20만 명 이상이 소개됐다. 방사능 노출 우려 때문이었다. 3일째엔 원전 주위 20~30㎞ 지역 거주자들은 집 밖으로 외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결국에는 스스로 알아서 대피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와 같은 대피과정은 오보, 부적절하고 혼란을 초래하는 지시, 정보공개의 지연으로 점철됐다. 피해지역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대피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노약자들은 원전 인근 지역에 그대로 방치됐다. 입원 환자들이 엉뚱한 곳으로 이송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온갖 문제가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모두 원자로 멜트다운이었다. 하지만 대형 핵폭탄(high-yield nuclear weapon, 다시 말해 아주 큰 폭발력과 방사능을 가진 대형 폭탄)의 경우엔 환자와 대피 인원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 국토안보부가 예상하는 가장 유력한 미국 내 핵공격 시나리오에선 더 소형의 핵폭탄을 가정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공격에 사용된 무기와 비슷한 규모인 10kt(kilotons·1000t)이다. 그리고 현재의 미국 핵전쟁 대응 절차에선 인근 지역 주민의 대규모 대피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예컨대 워싱턴 DC에 가상의 소형(10kt) 핵폭탄이 투하될 경우 제한적인 소개만 실시한다. 10만 명의 사망자와 약 15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피해를 유발하는 방사선 구름(radiation plume)은 실제로 비교적 작은 지역에 국한된다고 예상한다. 바람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아무 조치도 필요 없고 바람 부는 방향에 있는 사람 대다수는 ‘적당한 보호막’만 찾으면 된다는 식이다.

NGHW가 결성되면 그와 같은 공격에 어떻게 신속하게 대처할지 계획을 수립하고 대피 계획이 필요한지 그렇다면 어떤 종류가 될지 추정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방사선 노출의 장기적인 영향
방사선영향연구소(RERF)는 방사능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생존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설립됐다. 수십년 전부터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해 왔다.

RERF에 따르면 약 1900건의 초과 방사선 암 사망(excess cancer deaths), 약 200건의 백혈병, 1700건의 고형암(solid cancers, 혈액암 이외의 종양)이 원폭에서 비롯됐다. 히로시마·나가사키·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은 대단히 정밀한 암 검사법 체계를 수립했다. 체르노빌의 조사도 광범위했지만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는 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방사선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상당수 잠재적인 영향에 관한 데이터는 그만큼 확정적이지 않다. 치료 목적의 집중적인 X선 노출이 인간의 선천성 기형을 초래했음은 입증됐다. 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의 후손에게 선천성 기형이 있었는지를 두고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

예컨대 한 조사에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출신 일부 아동의 두뇌 기형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다른 저명한 장기조사에선 원폭 피해 생존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선천성 기형의 증가는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기 중 방사선의 방출량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합친 수준의 100배에 달한 체르노빌의 데이터를 봐도 마찬가지로 방사선으로 인한 선천성 기형을 보여주는 명확한 데이터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광범위한 조사에서 체르노빌 방사선 노출 아동의 정신지체와 정서장애 발생률이 대조군 어린이들에 비해 차이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버드대학은 체르노빌 관련 보고서에서 그 사고로 배출된 방사선이 배아나 태아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실질적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다른 연구에선 체르노빌 낙진이 발생한 유럽 16개 지역에 기록된 선천성 기형을 조사했다. 방사선 노출이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대중의 우려는 근거 없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통계 측면에서 체르노빌이 인체에 미친 가장 확실한 영향은 사고지점에서 가깝거나 상당히 먼 지역에서 인공유산의 대폭적인 증가였다. 이는 ‘핵 공포증’, 정보와 적절한 공식 지침의 부재 탓이었다. 실제로는 위험이 없다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방사선이 태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관한 우려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기형아 출산에 관한 공포가 임부들 사이에 확산됐다.

NGHW는 건강의료 관계자, 정책입안자, 행정가 등이 방사선의 허상과 실상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핵 위기 직후의 ‘골든 타임’에 당국자들이 증거에 기반한 정책결정을 내리고 실제적인 당면 위험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
 또 다른 히로시마나 나가사키가 발생할 위험은?
오늘날 핵전쟁(그것이 전 세계 의료와 공중보건에 미치는 막대한 피해) 위험은 확대일로에 있다.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고 국제관계는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테러단체들의 기술수준이 갈수록 고도화하고 방사성 물질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보급·유통되는 추세 또한 특히 걱정스럽다.

대규모 핵위기가 인체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많은 사람이 갖고 있더라도 그에 대처해야 하는 도덕적·윤리적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 CHAM DALLAS / 번역 차진우



[필자 챔 댈라스 교수는 조지아대학 재해관리 연구소 소장이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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