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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화가의 재발견

잊혀진 화가의 재발견

뷔페는 화단에서 진지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 좌절해 은둔자가 됐다. 그의 작품 ‘장미꽃 모자 쓴 여인’(유고슬라비아 우표에 실렸다).
파블로 피카소에 견줘지던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는 붓으로 한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뷔페는 1950년대에 널리 사랑 받으며 부와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그를 미술의 총아로 여기던 미술계는 곧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결국 추방했다. 그는 홀로 쓸쓸히 살다가 1999년 자살했다. 그는 요즘 사람이 거의 잘 모르는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저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니컬러스 포크스는 뷔페의 전기 ‘대화가의 발견(The Invention of a Mega-Artist)’에서 그의 생애를 규정한 환희와 비극을 깊이 파헤쳤다. 뉴스위크는 포크스에게서 뷔페의 부침과 현대 프랑스 문화에 관해 들어봤다.



책 제목이 ‘대화가의 발견’인데 ‘재발견’이 더 맞지 않나?


그의 일생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진진해 ‘재발견’이 더 멋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약·알코올 중독자였고, 대단한 사교계 명사였으며, 나중엔 은둔자였다. 그는 거대한 성에서 혼자 살며 2년 동안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때론 동성애자이기도 했다. 늘 그림을 그리면서 아주 복잡한 삶을 살았다.



그를 “피카소만큼 유명하고, 로제 바딤(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처럼 화려하고, 브리지트 바르도(섹스 심벌이었던 프랑스 여배우)처럼 유명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 정도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치곤 대단한 사람인데.


요즘 사람들은 뷔페를 거의 잘 모른다. 그는 명사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에 끌렸다.

프랑스 파리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였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에 미국 뉴욕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말이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당시 젊은 뷔페는 프랑스에서 파카소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화가였다. 그는 당시 주요 인물 거의 전부의 초상화를 그렸고, 영화 포스터도 제작했으며, 책 삽화도 그렸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졌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프랑수아즈 사강(소설가), 로제 바딤, 브리지트 바르도, 이브 생 로랑(패션 디자이너)과 함께 ‘경이로운 5인’으로 불렀다. 프랑스의 문화 지도를 바꾼 인물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조건이 문화혁명에 적합했던 이유는?


그 맥락이 아주 흥미롭다. 전후 프랑스는 나치 점령과 부역의 치욕에 짓눌렸다.

뷔페는 그런 기성세대와의 완전한 단절을 상징했다. 그는 전시 파리에서 성장했다. 그는 프랑스가 여전히 대담한 미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보여줬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줬나?


그는 동성애와 전시 파리의 끊임없는 불행을 보여줬다. 찌그러진 냄비와 음산해 보이는 석유 램프, 훼손된 고기 조각 등 아주 평범한 사물을 대담하게 예술로 표현했다.



뷔페의 스타일이 어떻게 그런 문화와 맞아 떨어져 그의 초기 성공에 기여했나?


젊은이에겐 뷔페의 스타일이 흔히 보던 화려한 채색 작품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그때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뷔페가 혜성처럼 나타나 회색의 수십 가지 색조를 보여줬다. 남자가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여자들이 형편없는 스토브로 뭔가를 요리하는 아주 지저분한 그림을 그렸다.

그런 작품이 프랑스인의 경험을 그대로 전해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실존주의와 고통, 세계에 곧 닥칠 재앙 등. 핵전쟁이 일어날까? 이런 암울함이 언제 끝날까? 그런 불안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그는 그 세대의 시각적 대변인이 됐다. 그의 작품이 그 한 시대를 정의했다.



뷔페의 추락은 극히 예외적인 듯한데 왜 그런가? 피카소와 예술산업이 그를 치욕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뷔페는 단순히 미술시장만이 아니라 TV와 컬러 잡지 등 새로운 매체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기성 주류 화가들과 차이가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엔 거의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롤스로이스를 구입하고 흥청대며 살기 시작했다. 그가 명성을 얻은 그림과는 정 반대되는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위선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물론 그가 순식간에 크게 성공한 데 대한 기성 화단의 질투도 작용한 듯하다.

1950년대의 프랑스는 무제한적인 풍요의 땅이 아니었다. 하지만 뷔페는 최고급 자동차와 거대한 성, 애완용 원숭이도 갖고 있었다. 30세도 안 된 나이에 사회 명사가 됐다. 그런 것이 일생 동안 그의 오점이 됐다. 그는 청소년 스타처럼 대우 받았다. 미술계의 저스틴 비버였다.



뷔페는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즐긴 듯하다. 주류 화단의 평가가 그에게 중요했을까?


물론이다. 뷔페는 멋지고 신기한 것을 좋아했고 호사를 즐기면서 비평가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화단에서 진지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 좌절했다. 그 때문에 늘 억울한 생각을 갖고 살았다. 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인생 2부의 주제가 좌절과 피해망상이었다.



그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는데 주류 화단은 왜 미술사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려 했는가?


그게 큰 수수께끼다. 그런 음모가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뷔페가 공공 전시에 적합하지 않은 당혹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아주 나쁜 화가였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질서정연한 공식 문화가 일류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뷔페는 화가로서 첫 10년 동안 전혀 실수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정신 나간 화가가 됐다는 게 희한한 점이다. 어떻게 10년 동안 천재였다가 하룻밤 사이에 광대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에 낸 책으로 뷔페의 유산을 재정의하려는 생각인가 아니면 뒤틀어진 미술산업을 폭로하려는 의도인가?


지금은 아주 흥미로운 시대다. 현재 미술 세계는 두 산업으로 나눠졌다. 하나는 오락 산업이고 하나는 투자 산업이다.

첫째 나는 뷔페가 어떤 사람인지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신세대를 위해 그를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다. 둘째, 그의 명성을 만들어냈다가 빼앗아버린 시대적 상황을 고찰하고 싶었다.



지금 그의 작품을 누가 원하는가?


지난 4년 동안 뷔페의 작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아시아와 옛 소련권 국가들에서 인기 높다.



이번에 낸 책이 대중문화의 역사와 화가의 속성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미술시장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또 대중의 취향이 어떻게 형성되고 무엇의 영향 받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행운과 개인의 힘이 그 모든 것을 좌우한다.

내가 이 책에서 의도한 바는 뷔페의 부상과 추락,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재탄생을 독자가 직접 살펴보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 책을 통해 독자가 현대 프랑스의 탄생에 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디포 팔로인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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