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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기술은 없다

노인을 위한 기술은 없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같은 기술이 노화 경험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발전되고 있다. 노인 환자를 위한 가상 왕진이 매우 유용할 전망이다.
기술산업은 더는 고령자를 위한 기술에 관해 터무니없이 몰상식해선 안 된다.

지난 10년 동안 IT 산업은 시장 일부분의 삶과 일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25세의 소비자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세계의 다른 주요 시장 일부분은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몰랐다. 고령자와 그들을 돌보는 가족을 가리킨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다른 베이비붐 세대처럼 내게도 고령인 부모가 있다. 그들에겐 기억력이 감퇴하고 거동이 불편하며 사회생활이 위축되고 따분함을 느끼며 병원 찾을 일이 많아지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이 절실하다. 자기계발을 원하고 스마트폰에 붙어 살며 늘 SNS로 대화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고령자를 위해 개발되고, 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찾아봤지만 거의 없었다.

조만간 그런 상품이나 서비스가 쏟아질 조짐을 찾을 수 없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그 행사를 구경했다면 프라이팬에 연결되는 스마티팬(무엇을 요리하는지 알려준다!)이나 디지-센스 기저귀 모니터(디지털 센서로 아기의 배변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같은 희한한 제품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어르신을 위한 제품은 찾기 어려웠다. 고령자를 위한 기술 개발을 주창하는 블로거 로리 올로브는 CES를 돌아본 뒤 “한심했다”고 평했다.

아니면 144개에 이르는 IT 유니콘 리스트를 보라. 유니콘은 기업가치 평가액이 10억 달러를 웃도는 비상장 기업을 가리킨다. 그중 어느 회사도 고령자를 위한 기술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런 기술은 벤처 투자자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는 사업이다. 야후 최고기술책임자(CTO)와 IBM의 조사과학자를 지낸 아시파크 먼시(54)는 “벤처 투자자는 급속히 인기를 얻는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고령자를 위한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노인에게 신기술을 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신기술에서 약간의 소비자 저항이라도 있는 낌새를 채면 벤처 투자자는 지갑을 닫는다”고 말했다.

IT 기업가의 시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 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IT 업체 설립자 대다수는 20∼34세로 평균 나이가 31세다. 기업가들은 회사를 세우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잘 아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을 찾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문제가 대부분 특정 상품을 하루 24시간 주 7일 배달할 수 있는 방법부터 클라우드 기반의 기업 인적자원 시스템 구축까지 너무도 다양하다는 사실은 일리가 있다. 25∼30세 소비자의 삶과 일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노인의 어려움은 먼 나라 이야기다. 실리콘밸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할아버지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쪽으로 개발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1980년대의 ‘넘어졌는데 못 일어나겠어요!’라는 광고로 유명한 의료경보 장치는 수많은 착용형 응급호출 기기로 진화했다. 구글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1억 달러에 판매한 머리 좋은 사업가 세스 스턴버그는 그 후 2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고령자에게 도우미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클라우드 서비스 ‘아너(Honor)’를 설립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개발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먼시 같은 기술자는 고령자를 위한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설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같은 기술이 노화 경험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발전되고 있다.

먼시는 아마존 에코나 애플 시리의 후속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용 음성인식 기기의 개발에 착수했다. 음성을 인식해 문맥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기계학습을 사용하는 기기다. 그 기기가 있으면 고령자는 스마트폰이나 웹사이트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스마트폰을 열어 앱을 찾거나 웹사이트를 검색할 능력이 없는 알츠하이머나 치매 환자에게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아들과 전화하고 싶어’라고 말만 하면 TV 화면을 이용한 화상 전화가 자동으로 걸린다. 기억력 감퇴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내가 어디에 갔는지 언제 돌아올지 모를 수 있다. 그런 궁금한 점을 말로 질문하면 시스템이 답변을 준다. 또 그 시스템은 사람이 말하는 방식을 듣고 그것을 이전의 대화와 비교함으로써 뇌졸중 조짐이나 기억력 감퇴 악화 같은 문제를 판별할 수 있다. 먼시는 “그런 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은 더욱 확장된다. 가상현실 안경은 다음 10년 동안 소형화하고 간단해지는 동시에 성능은 더 나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노인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도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와 더 자연스럽게 만나고 동년배와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히어버드 같은 기술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얼굴인식 기술과 융합하면 노인은 자신의 위치와 대화 상대 정보를 헤드폰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고령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운전을 못하면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거나 아무 때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면 그런 제한이 사라진다. 100세의 나이에 거의 앞이 보이지 않고 반사작용 신경도 둔화됐을 때도 휘파람으로 자율주행차를 호출해 가장 가까운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착용형 기기는 달리거나 걸은 거리를 측정하려는 젊은이보다는 넘어지기 쉬운 노인에게 더 적합하도록 개발할 수 있다. 기기를 착용한 노인의 걸음걸이 변화나 다른 불길한 활력징후를 측정해 가족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의료 측면에선 노인 환자가 병원에 가는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가상 왕진이 큰 도움이 된다. 착용형 기기가 의사에게 활력징후를 측정해 알려주고 고해상도 비디오로 의사가 무엇이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서비스가 이미 등장하고 있다. 다만 IT에 서툰 고령자들에게 맞도록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런 발전이 뭉쳐지면 10년 뒤는 노화 체험이 지금과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인 2006년의 젊은이가 지금의 젊은이와 다르듯이 말이다. 전화기로 통화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문자 메시지밖에 없다면 청소년으로서의 삶이 어떨지 상상해보라.

하지만 디지-센스 기기가 고령자 기저귀 시장으로 확대되진 않기 바란다. 부모에 관해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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