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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신산업④ 바이오] ‘神의 손’ 되려면 덩치 키우고 투자 늘려야

[한국의 미래 신산업④ 바이오] ‘神의 손’ 되려면 덩치 키우고 투자 늘려야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91세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말기 암에서 완전히 회복했다고 밝혔다. 불과 석 달 전 투병사실을 공개할 때만 해도 그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간과 뇌로 전이됐다”며 “이제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힘없이 말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90대 암 환자를 건강한 몸으로 돌려 놓은 건 신(神)의 손이 아니라 미국의 한 제약전문 회사가 개발한 항암제 덕분이었다. 이 항암제는 종양세포의 특정 단백질에 반응하는 수용체를 억제해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킨 바이오 신약이었다.

카터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회복이 흔히 일어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암 세포만 골라 죽이는 킬러 약물, 위(胃)에서 살면서 소화를 돕는 미생물, 내 몸의 줄기세포에서 뽑아 만든 맞춤형 항암백신, 도장 찍듯 얇게 피부에 붙이면 전신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바이오 스탬프 등 셀 수 없이 많은 신약과 기기가 전 세계 바이오 연구소에서 진화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 60%가 벤처
국내 바이오 업체의 기술력은 분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줄기세포 및 유전자변형(GMO) 기술이 미국의 80%로 높은 편이다. 생명시스템 분석 기술 69%, 유전체 정보를 이용한 질병원인 규명 기술은 71.3%로 다소 처진다. 더 큰 문제는 기술 수준에 비해 바이오산업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 수는 2014년 현재 975개. 이 중 60%가 벤처기업이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생산 규모도 2014년 기준 7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스위스·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 등 신흥국도 바이오산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글로벌 제약 1위 업체인 스위스 노바티스는 지난해 11조1470억원을 R&D에 투자했다. 같은 기간 국내 10대 제약 업체의 투자액은 모두 합해 6720억원으로 노바티스 한 곳의 0.6%에 불과했다. 노바티스의 시가총액은 250조원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합친 것보다 많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고령화에 따라 ‘바이오 황금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다. 영국의 시장분석 전문기관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바이오시장은 2조61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연세대 생화학과 권영근 교수는 “40대와 65세 이상의 의료비 지출은 4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고령화로 인류의 3분의 1이 환자인 시대가 오고 있다”며 “국민 건강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바이오시장을 놓쳐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진 않다. 투자 규모에 비해 기술 수준이 높다. 한국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최근 발간한 기술 수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은 세계 1위 미국의 77% 수준이다. 미국·EU·일본에 이은 세계 4위다. 다만, 바이오 기업의 60%가 벤처기업일 정도로 기업들이 영세해 투자액과 생산량이 적다. 더구나 한국엔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같은 신약 물질도 연구·임상·제품화 단계별로 소관 부처가 바뀐다. 의료기술 개발과 뇌과학 원천기술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 생물화학과 바이오 의료기기는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연구는 보건복지부, 생명산업 기술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 생물자원발굴과 연구는 환경부가 맡는다. 일관된 지원을 하는 미국·일본 등과 다른 점이다.

바이오산업은 의약품·식품·헬스케어·환경 등 분야가 많다. 이 중 의약품과 식품의 비중이 60%에 달한다. 업계는 제약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7810억 달러다. 이 중 바이오 의약품은 1790억 달러(23%)를 차지했다. 바이오 분야만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825억 달러)의 2.2배 규모에 달한다. 특히 바이오 분야의 성장 속도는 합성신약보다 빨라 2020년엔 바이오의약품 시장만 278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장성 본부장은 “바이오 의약품은 화학물질 합성 의약품에 비해 약효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지만 분자구조가 복잡해 만들어내기 어려운 고부가가치 상품”이라고 말했다.
 지놈 분석 바탕의 개인 맞춤 치료 고성장 전망
우리나라는 제약 분야 중 바이오시밀러(복제품)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셀트리온은 2013년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유럽에서 바이오시밀러 세포치료제 ‘램시마’의 시판허가를 받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류마티스 치료제 ‘엔브렐’ 시판허가를 유럽의약청(EMA)에 신청한 상태다. 삼성은 송도에 건설 중인 바이오로직스 제3공장이 완료되는 2018년 바이오시밀러 세계 1위로 올라선다. 삼성은 바이오시밀러와 함께 바이오 신약 개발에 본격 뛰어들 계획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이오 사업을 직접 챙기면서 사업도 탄력을 얻고 있다. 이밖에 LG생명과학·슈넬생명과학·대웅제약·동아쏘시오홀딩스 등도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 시장은 수요가 줄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인류가 가진 질병은 밝혀진 것만 5000종가량 된다. 이 중 치료약이 개발된 건 500여 종에 불과하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기존 치료약도 특허기간이 만료되면 성능을 높인 바이오시밀러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유전자치료제만 27개 품목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라며 “당뇨병성 신경병증, 허혈성 지체질환,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등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약시장만큼이나 폭발적 성장이 주목되는 분야는 개인 맞춤 치료다. 맞춤 치료는 환자 개인의 유전자염기서열(Genome) 분석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불과 5~6년 전만 해도 3억원이나 들었던 인간 지놈 분석 비용이 100만원 대로 내려왔다. 분석 시간도 하루면 충분하다. 개인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큰 돈을 안들이고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면 내 몸이 미래에 암·당뇨병·비만·고혈압 등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큰지 사전에 알 수 있다. 바이오 의약품이 질병에 걸린 이를 치료하는 ‘애프터마켓(After Market)’을 겨냥한다면, 지놈 분석은 건강한 청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비포마켓(Before Market)’을 공략한다. 사실상 전 인류가 바이요 기술의 수요자가 된다.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부원장은 “1990년대 후반 컴퓨터 가격이 100만원 대로 내려오면서 정보기술(IT) 분야에 빅뱅이 일어난 것처럼 지놈 분석 비용이 100만원 대로 내려오면서 BT(바이오 기술) 분야에 빅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야 하는 의료기기 시장도 발전 가능성이 크다. 수술용 로봇, 진단과 동시에 치료를 하는 소프트웨어, 인공신장 시스템, ICT 융복합 의료기기,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등이 모두 인간의 생명 특성 연구를 바탕으로 제품화 된다. 의료기기는 개발 기간이 5~10년으로 바이오의약품(10~15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걸리고 비용도 적게 든다. 김장성 본부장은 “의료기기 분야는 IT 기술이 발전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생명공학(Biotechnology): 생물학(Bio)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 인간이나 동·식물 같은 생명체의 고유 기능, 생명 현상을 다루고 이를 통해 생명체의 기능을 높이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



바이오산업(Bio Industry):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인체에 유용한 물질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산업. 국제표준분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우리 정부는 2008년 8개 분야(바이오 의약·식품·화학·환경·전자 등)로 분류해 국가 표준으로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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