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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자금 대출 부실 터지나] 문제는 ‘스튜던트 론’(미국 학자금 대출)이야

[미국 학자금 대출 부실 터지나] 문제는 ‘스튜던트 론’(미국 학자금 대출)이야

2월 9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여기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22%포인트 차이로 압승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빚 없는 대학 등록금(debt-free tuition options)’이다. 샌더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학자금 대출 이자를 대폭 줄이겠다”면서 “학자금 빚을 덜기 위해 월가 투기꾼들에 연 750억 달러(약 9조4000억원)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힐러리 역시 정부가 대학에 주는 수업료 보조금을 늘려 등록금을 낮추고 학자금 대출 이자율을 낮추는 공약을 발표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 일부 공화당 후보들도 학자금 대출 부담을 낮추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들이 학자금 대출에 주목하는 것은 막대한 ‘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 대학 학부생의 43%는 평균 2만5000달러(약 3000만원) 이상의 대출을 안고 졸업한다. 또한 ‘대학 진학 및 성공연구소(TICAS)’에 따르면 2014년 대졸자 중 70%가 학자금 대출이 있고 평균 부채는 2만8950달러(약 3500만원)였다. 젊은층만의 문제도 아니다. 블룸버그는 65세 이상 노년층의 학자금 대출 총액이 2005년 28억 달러(약 3조3500억원)에서 2013년 182억 달러(약 21조8000억원)로 급증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학자금 대출자 역시 70만 명에서 220만 명으로 늘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연금 지급이 정지된 노령 인구는 16만 명에 이른다. 학자금 대출이 젊은층뿐 아니라 미국 노년층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 대선 후보들 “학자금 대출 부담 줄인다” 공약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학자금 대출 부담을 낮춰주는 파격적인 공약으로 젊은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미국 학자금 대출 쇼크가 세계 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학자금 대출 급증과 과도한 연체가 가계부채 부실로 이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미국 학자금 채무의 급증과 연체율 상승이 2008년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급증과 주택시장 붕괴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미국 학자금 대출 잔액은 1조2000억 달러(약 1437조원)에 달한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의 3.7배 규모다. 2008년(6393억 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고, 전분기 대비 130억 달러(약 15조 5000억원) 증가했다. 대출의 양도 문제지만 질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가 서민층의 고등교육을 위해 지원하는 학자금 대출은 미국 전체 학자금 대출의 약 93%를 차지한다. 심사는 ‘묻지마 대출’에 가깝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상환 능력과 상관없이 최대 5만7500달러(약 69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대학원생은 한도가 거의 없다.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이 없어도 대출을 해줘 ‘닌자(No Income, No Job or Asse) 대출’로 불렸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상환능력과 무관하게 대출을 해주다 보니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미국 학자금 대출 연체율(90일 이상 원리금 상환 연체)은 2003~2011년 6~9% 수준에서 지난해 3분기 말에는 11.6%로 상승했다. 원리금 상환을 미룰 수 있는 재학생을 제외하면 연체율은 25%로 치솟는다. 미국 교육부에 따르면 연방정부 학자금대출 채무자는 3000만 명에 달하고, 9개월 간 연속으로 대출을 상환하지 않은 채무불이행자는 700만 명을 넘는다. 학자금 대출 연체율 증가는 미국 내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연체율이 꺾인 모기지론이나 자동차대출, 신용카드대출과 달리 학자금 대출 연체율만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8년 주택시장 붕괴 당시 미국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9%를 넘지 않았다.
 노년층의 학자금 대출도 만만치 않아
심각한 것은 학자금 대출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학자금 대출 연체가 급증하면서 미국에서는 대출 자산을 증권화한 파생상품이 제2금융권 시장에서 아무 제약 없이 거래되고 있다. 지난 2013년 미국 최대 학자금 대출업체인 SLM이 11억 달러 규모의 관련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증권을 매각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이 증권을 사기 위해 판매 금액의 15배에 달하는 돈이 몰리기도 했다. 학자금 대출 연체가 급증하면서 투자자들이 고위험 고수익에 배팅한 것이다. 또한 학자금 전문 P2P(peer-to-peer) 대출 사업으로 급성장한 소피(SoFi) 역시 대출 자산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을 발행한 바 있다. 이렇게 발행된 채권 증서들이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묶여 거래되면 원채무자의 정보와 신용파악이 불가능해지고 연체가 더 급증할 경우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행과정이 그랬다. 미국 학자금 대출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학자금 대출 시장에도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학자금 대출 잔액은 9조9191억원이다. 여기에 저금리 전환대출과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 잔액을 합하면 12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통계가 잡히지 않는 민간 금융권의 학자금 대출은 제외한 수치다. 국내에서는 한국장학재단이 설립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27만여 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 중 신용유의자는 1만9800명으로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부가 잔여 대출금을 일부 감면해주고 상환을 미루는 채무조정을 한 결과다. 문제는 대출 원리금 상환 시기가 2014년부터 본격화되면서 향후 연체율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취업 후 상환을 하는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은 2011년 30만4000명, 2012년 51만 명에 달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이 악화된 고용 상황 탓에 취업을 하지 못할 경우 원리금 상환 시기가 뒤로 미뤄질 뿐 학자금 대출의 원리금 규모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며 “학자금 대출이 상당 기간 청년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와 소비 심리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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