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세계 홍차의 아버지 ‘정산샤오종’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세계 홍차의 아버지 ‘정산샤오종’

정산샤오종의 산지인 통무관은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된 우이산의 구곡계곡에 끝자락에 있다.
정산샤오종(正山小種)은 400여 년 전 중국 푸젠성 통무관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홍차다. 통무관은 1999년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된 우이산에 있는 구곡계곡의 맨 마지막에 자리한 산골마을이다. 버려져야 할 찻잎을 장작불 연기로 재생시켜 탄생한 정산샤오종은 녹차와 청차의 제조기법을 차용한 하이브리드 홍차다.

홍차는 전 세계 차 소비량의 75%에 달한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와 아프리카 케냐 등지에서 홍차가 대량 생산된다. 차(茶) 재배 국가가 아닌 영국이 전 세계 홍차 문화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배경은 뭘까. 차가 비록 영국의 천연자원은 아니지만 차로 세계를 제패하여 큰 돈을 벌겠다는 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영국 왕실이 허가한 칙허기업(勅許企業)이다. 회사의 이익 창출과 배타적 권리를 위한 사설군대를 보유하고 교전권(交戰權)이 있는 제국주의 첨병이었다. 청정 리조트 지역으로 개발한 인도의 고산지대 다르질링(평균 해발고도 2045m)에 대규모 다원 부지를 미리 준비한 영국 동인도회사는 전 세계 홍차시장을 석권하고 싶었지만 차를 만드는 기술과 차나무가 모두 없었다.

때마침 제1차 중·영전쟁(1840∼1842)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중국에서 차나무와 씨앗을 합법적으로 인도로 가져올 수 없게 됐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살아있는 해외 식물의 이식 경험이 많은 영국왕립정원협회 소속 식물학자 로버트 포춘(1812∼1880)을 산업스파이로 고용해 중국 최고의 홍차 생산지 우이산으로 밀파했다. 우이산의 정산샤오종은 그 무렵 영국에서 가장 비싼 홍차였다.
 정산샤오종 산지에 외국인은 무단출입 금지
검게 빛나는 정산샤오종 찻잎(왼쪽)과 스모키향이 나는 정산샤오종.
영국의 먹거리가 될 만한 식물 채집을 위해 이미 중국을 몇 차례 탐방한 경험이 있는 36세의 로버트 포춘은 주저 없이 푸젠성 우이산으로 향했다. 1848년 중국인으로 변장한 영국인 식물사냥꾼 로버트 포춘은 중국인 안내자와 함께 통무관을 지키는 청나라 군사의 눈을 속이고 차나무 묘목과 씨를 구해 상하이로 가져와 인도로 밀반출했다. 무려 2만 그루에 달하는 차나무 묘목과 가지를 삽목(揷木)한 무성생식은 모두 실패했다. 다행히 씨앗을 발아시킨 증식은 성공했다.

홍차의 샴페인으로 사랑받으며 세계 3대 홍차 중 하나인 다르질링 홍차의 탄생은 영국 산업스파이가 훔쳐온 중국의 차 씨앗으로 인도에서 시작됐다.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통무관 일대는 168년 전 일어난 차나무 유출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로 사전 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은 아직도 무단출입할 수 없다.

강렬한 스모키향으로 유명한 정산샤오종의 탄생은 우연이었다. 명나라를 중원에서 밀어내고 청나라가 일어설 때 일단의 청나라 군이 통무관에 나타났다. 대대로 명나라 황실에 바치던 공차를 만들었던 마을 주민들은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차 만드는 작업을 중지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았던 군인들은 차를 만들던 창고에 쌓여있던 찻잎을 깔고 잤다. 며칠 후 군인들이 이동하자 사람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군인들이 깔고 자는 바람에 짓이겨지고 붉게 변한 찻잎을 본 마을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유일한 생업인 차 농사를 망치게 됐다.

산화와 발효가 과도하게 진행되어 녹차와 청차로 만들 수 없어 쓸모없게 된 찻잎을 차마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소나무 장작으로 찻잎을 훈제하듯 건조시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차를 만들었다. 소나무향을 잔뜩 머금은 찻잎은 새까맣고 볼품없이 변해 우차(烏茶)라는 허접한 이름을 얻었다. 녹차를 편애하는 중국시장에서 무시당한 우차는 영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최고의 차로 순식간에 올라섰다.

선금을 받고 만들어줄 정도로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진 우차는 중국에서는 샤오종 또는 우이샤오종으로 불렀다. ‘우이’의 푸젠성 방언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던 영국에서는 랍상 소우총(Lapsang souchong)으로 지금까지 부른다. 1662년 영국 황실에 입성한 랍상 소우총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통무관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소나무훈연향을 입힌 홍차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대량 유통시켰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통무관 사람들은 타지에서 만든 차와 구별하고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산(正山)이란 글자를 더해 정산샤오종으로 이름 붙여 특화시켰다.
 정산샤오종 자매차 진준메이도 고가에 팔려
정산샤오종 산지인 통무관에 외국인은 무단으로 출입할 수 없다. 통무관 검문소.
비 발효차인 녹차의 대척점에 있는 홍차는 완전 발효차다. 정산샤오종을 현대적 의미의 홍차보다는 반 발효차인 청차(靑茶)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 홍차에 대한 기준으로 보면 녹차를 만드는 송라법(松蘿法)이라는 초청(炒靑) 과정을 거친 정산샤오종은 완전 발효에 못 미치는 강하게 발효된 청차로 분류할 수도 있다. 초창기에 만들어진 정산샤오종은 규격화된 제조법이 정립되지 않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방법도 조금씩 달랐지만 발효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했다.

영국이 주도해 1860년부터 생산된 다르질링 홍차의 원천 기술은 정산샤오종을 만들던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제다기법을 전수받아 개발했다. 1875년 처음 출시된 치먼홍차(祁門紅茶)도 정산샤오종의 제조기법을 모태로 한다. 정산샤오종이 홍차 제조 기술의 단초(端初)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20세기에 정한 홍차의 기준에 다소 어긋난다고 16세기 말부터 만들어진 정산샤오종을 홍차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통무관에서 24대째 정산샤오종을 만들어온 장위안쉰과 15세부터 정산샤오종을 만들어온 량준더는 정통 정산샤오종의 강한 훈연향을 과일향과 군고구마 향으로 부드럽게 순화시킨 진준메이(金駿眉)를 2005년 소량 출시했다. 새로운 공법과 어린잎으로만 가공한 진준메이는 100g에 40만원이 넘었지만 순식간에 전량 완판 됐다. 준메이홍차는 어린잎 함유량에 따라 금, 은, 동으로 등급을 나눈다. 진품 진준메이를 시중에서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진품 진준메이보다 훨씬 더 구하기 어려운 것이 3등급인 통준메이(銅駿眉)다. 상당수 상인들은 3등급을 순진하게 3등급으로 팔지 않고 1등급 진준메이로 둔갑시켜 고가에 팔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2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3‘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4“적자 낸 사업부는 0원”...LG화학, 성과급 제도 손질

5“말만 잘해도 인생이 바뀝니다”…한석준이 말하는 대화의 스킬

6 비트코인 반감기 완료...가격 0.47%↓

7공연이 만들어지기까지...제작자의 끝없는 고민

8‘순천의 꿈’으로 채워진 국가정원… 캐릭터가 뛰노는 만화경으로

91분기 암호화폐 원화 거래, 달러 제치고 1위 차지

실시간 뉴스

1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2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3‘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4“적자 낸 사업부는 0원”...LG화학, 성과급 제도 손질

5“말만 잘해도 인생이 바뀝니다”…한석준이 말하는 대화의 스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