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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취업보다 ‘창업’

프랑스도 취업보다 ‘창업’

기업가정신 진흥을 위한 정부 프로그램 ‘라 프렌치 테크’ 등으로 스타트업 적극 지원한다
지난 1월 패션전문 전자상거래업체 방트 프리베의 본사 준공식에 참여한 에마뉴엘 마크롱 장관(왼쪽)과 방트 프리베 CEO 자크-앙투안 그랑종.
미국은 프랑스식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면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는 실패를 받아들이고 성공을 기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사회주의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니 좀 놀랍다.

정부 장관이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펑크처럼 팬들에게 둘러싸인 모습 또한 생소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CES)가 주최한 ‘프랑스 IT의 밤’에서 38세의 마크롱 장관이 무대를 내려가자마자 TV 취재진과 셀카를 찍으려는 팬이 그를 에워쌌다. “어딜 가든 이렇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그의 보좌진이 말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기업가’란 단어가 필요한 나라”라고 말했던 프랑스가 달라졌다. 마크롱 장관의 라스베이거스 방문은 이런 변화를 암시하는 움직임 중 하나다.

“지난해 1500개의 스타트업이 설립됐다”고 마크롱 장관은 밝혔다. 경제산업부 추산으로 프랑스에는 5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신생 벤처)이 있다. 올해 CES 스타트업 전시회장 유레카 파크에 새로 참가한 기업 중 30%는 프랑스 회사였다. CES에서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의 뒤를 이어 스타트업 참여국 3위 자리에 올랐다.

스타트업 분야에서 프랑스가 급부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태도의 변화다. 자동차 계기판의 플러그에 꽂으면 주행을 최적화해주는 드러스트(Drust) 창업자이자 CEO인 마이클 페르난데즈는 프랑스 기성세대 사이에선 위험 회피가 일반적이지만 이는 변화했으며, 현재 스타트업 기업가들은 정부로부터 실질적 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수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통령을 만났다”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의 많은 기업가는 기업가정신 진흥을 위한 프랑스 정부 프로그램 ‘라 프렌치 테크’를 통해 CES에 참가했다. 라 프렌치 테크는 영세기업을 프랑스 대기업과 연결해 키워주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프로그램 중 대부분은 프리젠테이션과 홍보 기술 숙달이다. 특히 미국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라고 프랑스 무역진흥청 비즈니스 프랑스 CEO이자 대외투자 대사인 뮤리엘 페니코는 말했다.

“4~5년 전만 해도 최고 인재는 대기업에 쏠렸다”고 수년간 민간기업 중역으로 일했던 페니코 CEO는 말했다. “10년 전에는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타트업이다.” 프랑스에는 공과대학 학생이 8만 명, 박사 학위 학생이 7만 명 있다. “프랑스는 매년 1만7000명의 박사를 배출한다. 이들 3명 중 1명은 창업을 원한다”고 페니코 CEO는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스타트업 창업 이후 8년간 감세 혜택을 제공하고, 이들이 킥스타터 등의 웹사이트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프랑스의 과거 금융시스템은 기존 산업을 뒤흔드는 혁신적 기업 탄생을 위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페니코 CEO는 말했다. 2012년 프랑스는 중소기업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공공투자은행(Public Investment Bank)을 설립했다.

“우리는 투자과정을 가속화하고 이들 사업가들이 매우 기민하고 신속하게 자금을 모집하도록 해야 한다”고 마크롱 장관은 말했다.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요즘에는 첫날 바로 혁신을 일으키고 다음 날 1억 유로를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너무 나서서 다 결정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프랑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양질의 대학, 리스크를 감수하는 IT 기업, 벤처 투자자,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볼 수 있는 스타트업 정신이다.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뭔지 개념을 먼저 정립했다. 꽤 독특한 모델이지만 이스라엘이 비슷한 생태계를 만들었고, 중국과 프랑스에서도 같은 걸 만드는 중”이라고 페니코 CEO는 말했다.

도움을 받은 기업가 중에는 클레모 기요가 있다. 프랑스 주요 방송국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홍보를 담당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날씨 및 데이터 서비스 기업 위주(Wezzoo)를 설립했다. CES에 참여한 그는 수집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가 사는 지역에서 10분 후 비가 온다’ 등의 특정 지역 날씨를 바로 알려주는 개인 맞춤형 기상청 움브렐라(Oombrella) 서비스를 선보였다. CES에서 그는 새벽 방송에 출연해 회사가 개발한 첨단 기술을 선보인 뒤 호텔로 돌아와 몇 시간 단잠을 잔 후 유레카 파크에 설치된 부스를 지키며 유통업자, 벤처 사업가, 홍보 에이전시 등과 하루 종일 회의를 가졌다. 기요는 엔지니어 1명, 박사 졸업자 1명을 고용해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정부의 고용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인건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확실히 진전을 이룬 건 사실이다. 지난 6개월간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인텔 등의 회사가 프랑스 기술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세율이 높아서 투자자에 부담을 준다는 의견이 많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프랑스는 기업하기 좋은 국가 순위에서 27위를 차지했다.

플룸 랩스(대기오염 정도를 측정해 조깅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를 추천) 창업자이자 CEO인 로만 랑코브는 유럽 경기침체 때문에 청년이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수학 및 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문대 졸업생은 과거라면 쉬운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창업만이 자신의 커리어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그랜트 버닝햄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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