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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패션이 싸고 좋다고?

패스트 패션이 싸고 좋다고?

“사람들은 판매가가 낮으면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은 금방 해어지기 때문에 새 옷을 사야 한다.”
리비아 퍼스는 20세 때 맥스 마라 코트를 사려고 1년간 돈을 모았다. 큰 돈이 들었다. 그 고급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의 코트는 보통 2000달러 선을 호가한다.

그녀는 “패스트 패션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성장했다”며 “같은 드레스를 액세서리만 바꿔가며 입었다”고 말했다. “요즘 같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른바 패스트 패션이 소비자의 의류 쇼핑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면서 수년 전부터 패션 업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유행하는 최신 패션을 아주 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요즘엔 패스트 패션 매장에 가면 세련된 코트를 100달러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패션 매장에 저가의 최신 유행 의류를 납품하는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에서 최근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패스트 패션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우려가 커졌다. 그 뒤로 초기비용보다는 품질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반 패스트패션 운동이 부상한다. 그들은 윤리적인 의류 쇼핑이 초기비용은 더 들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튼튼하게 만든 옷은 길게 보면 1회 착용 당 비용이 더 낮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콜린 퍼스의 부인이기도 한 리비아 퍼스는 에코-에이지의 설립자이자 미술 책임자로 패션 산업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 코스트(The True Cost)’의 제작 책임자다. 2014년 그린 카펫 챌린지 캠페인을 창설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칸 영화제 같은 유명 행사에서 지속가능한 대안 패션을 부각시켰다. 최근에는 최소한 30번은 입을 옷을 구입하도록 권하는 ‘#30웨어즈’ 캠페인에 착수했다.

그러나 리비아 퍼스가 원래부터 패스트 패션을 반대한 건 아니었다. “패스트 패션이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린 거의 중독되다시피 했다. 너무 가격이 낮아 옷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었다. 한 시즌에 청색 코트, 검정 코트, 트렌치 코트, 그리고 심지어 모조 털 코트까지 장만할 수 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친구가 갖가지 옷을 바꿔 입으며 뿌듯해 하던 기억이 난다.”

일견 패스트 패션 운동은 소비자의 승리인 듯하다. 그러나 저가 의류에 수반되는 비용은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섬유재활용협회에 따르면 미국인이 배출하는 섬유 폐기물은 연간 95만여t에 달한다. 구입품 중 85%를 버린다. 1년 쇼핑 예산이 평균 1700달러니까 매년 1445달러 상당의 의류를 새로 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판매가가 낮으면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은 금방 해어져 새 옷을 또 사야 한다”고 제이디의 공동창업자인 맥신 베다트 CEO는 말했다. 패스트 패션에 대한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취지의 온라인 소매업체다.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부터 로드 스튜어트까지 스타들의 의상을 담당했던 영국의 디자이너 톰 크리들랜드(25)는 최근 ‘30년(30 Year)’ 컬렉션을 출범시켰다. 스웨트셔츠 한 벌이 94달러인 만큼 가격대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보다 단연 높다. 하지만 오래 가는 고급 옷을 사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따져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10달러짜리 셔츠를 5회 입을 경우 회당 가격(10 나누기 5)은 2달러다. 그러나 35달러짜리 셔츠를 30회 입으면 회당 가격이 1.17달러로 더 경제적이다. 초기 비용을 좀 더 들이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베다트 CEO는 “누구든 예산과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1회 착용시의 비용 측면에서 옷장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며 “좋아하는 옷은 두어 번이 아니라 오랫동안 입는다”고 말한다. “그것부터가 큰 발전이다.”

베다트 CEO는 구입하는 옷의 가지 수를 줄이고 면·울·리넨 같은 천연소재 제품을 사도록 권한다. 또 구입 전에 옷을 뒤집어 솔기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옷이 어디서 생산됐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공장 환경은 어떤지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베다트 CEO에 따르면 근로자가 제품을 빨리 생산하도록 강요받으면 옷의 품질에 그 영향이 나타난다. 대다수 의류는 아직도 수작업으로 생산되며 가격은 제품 생산에 드는 인건비에 대체로 비례한다. 의류공장이 많이 자리 잡은 방글라데시에선 최저임금이 하루 2달러 남짓, 한 달 68달러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부터 재고 보충 압력을 받는 해외 하청 의류 공장에선 근로환경이 위험한 경우가 많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 공장 건물이 붕괴돼 근로자 1127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했다. 패션 업계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세계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2월 초에도 방글라데시의 스웨터 공장에서 또 다른 화재가 발생해 환경이 정말 개선됐는지 의문을 자아냈다.

“라나 플라자 사고는 안전 측면에서 분명 경종을 울렸다”고 신간 ‘소비자·기업·공중보건(Consumers, Corporations and Public Health)’의 저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존 퀠치 교수는 말했다. “규제는 마련됐을지 몰라도 현장 상황은 다소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 배후세력의 부는 계속 커져간다. 자라의 소유주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700억 달러 가까운 재산을 축적했으며, 아버지가 창업한 H&M의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스테판 페르손의 순자산은 200억 달러를 웃돈다.

“이들은 노예노동과 이 같은 의류 쇼핑 사이클에 중독된 사람들을 발판 삼아 억만장자가 됐다”고 퍼스는 말했다. “그들이 수익의 10%나 5%만이라도 양보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리비아 퍼스는 최근 최소한 30번은 입을 옷을 구입하도록 권하는 ‘#30웨어즈’ 캠페인에 착수했다. 가죽 원료 조달을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리비아 퍼스(오른쪽).
실제로 퀠치 교수에 따르면 근로환경 개선에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추가 지출은 옷값에 얹을 수 있다.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는 추가 비용은 아마도 소매가가 2~3% 인상되는 정도로 미미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10달러짜리 셔츠의 경우 추가로 20~30센트만 더 내면 라나 플라자 건물 붕괴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비자가 돈을 더 주고 더 품질 좋은 옷을 구입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브랜드들이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8~34세 밀레니엄 청년 세대의 구매력이 계속 커지면서 브랜드들로 하여금 지속가능성을 수용하도록 이끄는 세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퍼스는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는 의류를 한번 구입할 때마다 한 표를 던진다. 우리가 구입하면 그 옷에 대한 지지 표시다. 따라서 이 표를 이롭게 사용하자.”

바로 그것이 퍼스가 #30웨어스 캠페인으로 달성하려는 목표다. “구매 직전에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 6개월 뒤에 이 옷을 입을까? 내년에도 이걸 착용할까? 최소 30번은 걸칠까? 그렇다는 확신이 들면 브랜드를 따지지 말고 구입하라”며 퍼스는 덧붙인다. “나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맥스 마라 코트를 갖고 있다.”

- 로렌 라이온스 콜 IBTIME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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