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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보드카도 정치 희생양?

러시아 보드카도 정치 희생양?

지정학적 문제가 러시아산 보드카 기피 현상을 낳았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드카를 마시는 장면.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돈도 보드카처럼 사람을 괴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지금 러시아엔 보드카는 흘러넘치는데 돈은 부족하다. 러시아의 국민술이자 대표적인 증류주 보드카의 수출이 지난 10년 간 최저치로 떨어졌다.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보드카를 비롯한 러시아산 증류주의 수출은 지난해 40% 이상 줄었다. 2005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세관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산 보드카 수출은 2014년 1억8710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1190만 달러로 줄었다.

러시아의 최대 보드카 수출업체는 ‘루스키 스탄다르트’ 브랜드로 유명한 루스트다. 그러나 코메르산트는 그 회사의 보드카 수출도 29% 감소했다고 밝혔다.

코메르산트가 입수한 업계 자료에 따르면 보드카 수출이 크게 줄어든 주된 이유는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에 따른 전반적인 수요 감소다.

러시아는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크림반도 주민투표에서 합병 찬성률이 90%로 나왔다. 러시아는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크림반도를 합병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영토의 합병이 주민투표가 아닌 국민투표를 통해 시행돼야 한다면서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 자산 동결과 여행 제한 등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그 직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진 내전에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반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싸우면서 서방의 제재는 한층 더 강화됐다.

그에 따라 특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산 보드카 수입이 급락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붕괴되기 전만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산 보드카 수입에서 세계 1위였다(연간 약 3860만 달러어치). 그러나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지금은 거의 10분의 1 수준인 387만 달러어치로 줄었다.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도 서방과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테러단체만 표적으로 삼는다고 주장했지만 민간 표적도 공격했다는 비난이 크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최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 컨퍼런스에서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신냉전’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말했다.
그런 긴장 고조가 무역 전반에 영향을 미쳐 러시아산 보드카와 증류주 수출의 급감을 불렀다. 예를 들어 현재 러시아산 보드카의 최대 수입국인 영국도 수입이 35%나 줄었다. 라트비아·독일의 러시아산 보드카 수입도 지난해 상당히 감소했다.

러시아 연방주류시장연구센터(CIFRA)의 바딤 드로비즈 소장은 서방인의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 지정학적 문제가 러시아산 보드카 기피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로 인해 서방에서 러시아를 향한 반감이 커졌다. 바로 그것이 세계적으로 러시아산 보드카의 판매가 급락한 주된 이유다.”

그러나 러시아인도 이전만큼 보드카를 찾지 않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닐슨이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모든 증류주의 판매가 줄었다. 특히 테킬라와 진의 판매는 20% 이상 감소했다. 러시아 보건부 산하 정신의학·중독 연구센터의 타티아나 클리멘코 소장은 지난해 말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인의 1인당 술 소비량이 전년 대비 13.5ℓ에서 11.5ℓ로 2ℓ 정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 국민의 음주량이 감소한 것은 심야의 술 판매 금지 등 정부 정책이 실효를 거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연방통계청도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지난 1년간 러시아 전체의 술 소비량이 약 4.7% 감소했으며 도수가 낮은 술의 소비가 증가하는 등 음주 패턴에 변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드로비즈 소장은 “당국의 통계자료가 정부의 주류 규제로 활성화된 암시장의 상황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암시장을 포함한 1인당 술 소비량은 12.5~13ℓ에 이른다. 1990년과 대비해 늘어난 인구도 전체 알코올 소비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통계청 발표는 문제가 있다.”

세계적 술 소비국인 러시아는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대책 마련에 애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러시아의 전체 사망자 중 30.5%가 알코올 섭취로 사망했다. 세계 평균(5.9%)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당국은 술 소비를 줄일 목적으로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으나 오히려 암시장만 활성화되는 등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지난 1월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러시아자유민주당(LDPR) 소속인 미하일 데그탸레프 의원은 보드카가 러시아 국가 브랜드로 보호받아야 한다며 다른 나라가 러시아 정부의 허락 없이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도록 단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미엔 샤르코프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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