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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과 골프] 그들의 못 말리는 골프 사랑

[미국 대통령과 골프] 그들의 못 말리는 골프 사랑

2011년 9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골프 카트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오바마 대통령.
미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골프를 사랑했고, 그런 대통령에 미국 국민은 친근함을 느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4년 한 해 54번의 골프 라운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18명이었고, 그중 15명은 골프를 즐겼다. 유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도 골프와 밀접하다.

미국에 골프가 전파되고 미국골프협회(USGA)가 생겨나고, US오픈이 시작된 게 1895년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체로 그린과 페어웨이와 백악관을 수시로 오가면서 세계를 이끌었고 스트레스를 풀어왔다. 20세기 이후 골프를 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단 세 명이다.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그리고 지미 카터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이 아버지 부시와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의 한 골프 클럽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골프를 즐기는 후보는 그렇지 않은 후보를 거의 이겼다. 단 한 번의 예외는 지미 카터가 재임하려던 제럴드 포드를 이긴 1976년 선거였다. 하지만 4년 뒤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카터의 재선을 봉쇄했다. 월터 먼데일, 마이클 듀카키스, 밥 돌 등 골프를 하지 않았던 수많은 대통령 후보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2004년 11월 선거에서도 선거 유세 기간 중 한 번도 골프 라운드를 하지 않은 그냥 그런 골퍼인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는 뼈대 있는 골프 가문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패했다. 조지 부시 재선의 경쟁자였던 미트 롬니는 골프를 즐기지 않는 정도라 아니라 반대할 만큼 싫어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골프란 과도한 업무에서 벗어나고 여유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휴식 수단이었다. 골프를 많이 즐기고 스코어가 좋았던 대통령일수록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후하게 나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무소불위(?)의 대통령이기에 성격에 따라 플레이 룰과 스타일은 천차만별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탐사 기자였던 돈 반 나타 주니어는 이라는 책에서 그들을 열성파(Good)와 엉터리(Bad), 그리고 사기꾼(Ugly)으로 구분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케네디가 가족과 함께 라운드하고 있다.


열성파(Good) 루즈벨트, 아이젠하워, 케네디, 포드, 부시 부자, 오바마:
미국의 제 32대(재임 기간 1933년~45)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골프를 중단하기 전까지만 해도 뛰어난 골퍼였다. 고등학교 시절인 16세 때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사촌인 엘러노어와 결혼하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골프만 치는 남편 때문에 신부는 자신이 버림받은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나중에 장애 탓에 필드에 나가지 못했지만 골프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아서 자신 같은 신체 장애 환자를 위한 9홀 골프장을 직접 설계했다. 루즈벨트의 최대 업적인 뉴딜 정책을 실시하면서 정부 자금으로 250개 이상의 공립 골프장을 건설해 경기를 살리고 일반인들이 골프를 하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대중 골프장의 대거 건립도 분명히 들어간다.

34대(1952년~61)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8년 재임 기간 동안 골프 라운드 횟수가 800회에 달할 정도의 골프광이었다. 사나흘에 한 번씩 골프를 친 것이다.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18홀을 쳐 ‘1주일에 36홀’ 기록을 만들었다. 일상에서도 골프화를 신고 다녀 애칭인 ‘아이크’ 대신 ‘스파이크(Spike)’로 불리기도 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의 회원으로 8년 재임 중 그곳에서만 210번을 라운드했다. 그곳 17번 홀 페어웨이 왼쪽에는 아이젠하워 나무가 2년 전까지 위용을 자랑했다. 대통령이 라운드 할 때마다 빈번하게 그 나무에 볼이 걸리자 ‘제발 베어버리라’고 했지만 꿋꿋이 살아남았다고 이름 붙여졌지만 2년 전 폭풍우에 꺾였다. 그의 재임 시절은 미국 골프의 황금기였다. 국회의사당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골프장비 판매와 강습, 프라이빗 클럽 회원권 신청 접수 등이 이어졌고 전국에 골프 붐이 일었다.

35대(1961년~63)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전임자인 아이젠하워가 골프로 비난받았던 것을 감안해 ‘몰래 골프’를 즐겼던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골프를 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구경꾼이나 사진 기사가 접근할 수 없도록 전체 코스를 다 돌지 않고 3, 4번 홀에서 시작해 15, 16번 홀에서 끝내곤 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도 항상 80타대를 유지해서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꼽힌다.

38대(1974년~77)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는 80타대의 준수한 실력을 가졌으나 가끔씩 프로암 행사장에서 친 볼이 갤러리로 날아가 ‘포어~(볼)’를 외쳐야만 했다(그의 고향 사람들은 비슷한 발음의 ‘포드~’라고 외친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수많은 프로암에 초청받으면 거의 사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갤러리 타구 사고가 잦았다. 종종 함께 라운드하던 코미디언 밥 호프는 ‘포드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다닌 최초의 대통령인데 그건 바로 골프클럽이었다’라고 농담했다.

41대(1989년~93)와 43대(2001년~09)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부자는 미국 골프 역사에서는 성골이다. 41대 부시의 외할아버지인 조지 허버트 워커는 1920년에 미국골프협회(USGA) 회장을 지냈고, 영국과 미국의 국가 간 아마추어 팀 대항전인 워커컵을 기증했다(그 이름을 따서 워커컵이 됐다). 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 역시 1935년에 USGA회장을 지냈다.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재도 골프계의 가장 대표적인 자선단체이자 청소년들에게 골프와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퍼스트티프로그램의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미국과 국제연합팀의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의 대표적인 후원자다. 이들 부자는 플레이 속도가 워낙 빨라 한 라운드를 2시간에 마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들 포섬의 최저 라운드 기록은 1시간42분이다.

44대(2009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1997년 부인 미셸을 통해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지금은 핸디캡 15인 수준급 골퍼가 됐다. 오바마는 종종 골프 때문에 비난에 직면했다. 지난해 8월 이슬람 과격단체 IS에 의해 피살된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애도하는 성명을 낸 직후 골프장으로 향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타수를 속이지 않는 진중한 열성파 골퍼로 평가받는다.
하워드 태프트의 평균 타수는 몸무게만큼 많이 나왔다.


엉터리(Bad) 태프트, 윌슨, 쿨리지, 레이건:
27대(1909년~13)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도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골프를 무한정 즐겼다. 거구에 비만 체형의 태프트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나는 140㎏이 넘는 거구여서 야구나 테니스를 할 수 없다. 골프는 다리와 근육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스포츠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외국 대통령의 방문에도 라운드를 했으며,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 전 이틀 간을 골프장에서 보냈다. 애석하게도 그의 평균 타수는 체중만큼이나 많이 나왔다.

라운드 수로는 28대(1913년~21) 대통령 우드로 윌슨을 따를 사람이 없다. 8년 동안 1200라운드를 했다. 한겨울에는 눈 속에서도 공이 잘 보이도록 붉은 페인트를 손수 칠하는 열정을 보였다. 심지어 재혼을 위해 맞선 보러 나가는 날도 오전 라운드를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00타를 깨지는 못했다. 특히 그린에서 애를 먹어 한 홀에서 퍼팅을 15번 하기도 했다.

30대(1923년~28)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는 보비 존스, 월터 하겐 등의 최고 스타가 활동하고 골프장이 폭증하던 미국의 골프 황금기에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라운드는 했으나 실력이 형편없었다. 스타일리스트가 따로 없던 시절이라 그의 골프 패션은 그야말로 최악이어서 함께 라운드하던 사람들조차 키득키득 웃었다고 전해진다. 골프채를 들고 후려 패던 쿨리지는 한 홀에서 그린에 오르기까지 11타를 쳐야만 했다.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날 때 골프백이 캐비넷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던 억지춘향 골퍼였다.

40대(1981년~89)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임기 8년 동안 골프를 10번 정도 밖에 치지 않았다. 아마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오거스타내셔널에서 골프를 치다 만 게 집권 초기인 1983년 10월이다. 16번 홀에서 티샷을 했을 때 골프장에 정신병자인 무장 괴한이 나타나는 바람에 라운드를 그쳐야 했다. 이후 레이건은 필드에 자주 나가지 않았지만, 대통령 전용기와 집무실에서 퍼팅은 즐겼다. 백악관은 대통령이 각료들과 퍼팅하는 사진을 종종 내보낼 정도였으니 골프는 레이건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닉슨이 벨에어에서 홀인원 후 찍은 기념사진.


사기꾼(Ugly) 하딩, 존슨, 닉슨, 클린턴:
29대(1921년~23) 대통령인 워렌 하딩은 ‘내기 골프’를 너무나 사랑했다. 거의 한 홀마다 내기를 했고 대부분은 땄다. 그리고 자신이 서명한 수정헌법 18조의 금주령을 공공연하게 위반했다. 두세 홀 건너서 위스키를 마시곤 했다. 골프가 아니면 포커를 치느라 백악관의 불을 밝힌 적도 부지기수. 그중 백미는 1921년 7월 2일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선언문이었다. 그는 골프 라운드 중에 클럽하우스에서 서둘러 사인하고는 내기 골프를 하러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36대(1963년~69) 대통령 린든 존슨은 한 라운드에 평균 300~400타 정도를 쳤다. 그는 라운드 중에 타수를 계산하려고도, 실력을 줄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존슨은 골프를 어리석은 게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함께 라운드하는 동반자는 종종 멘붕에 빠지곤 했다. 그의 비서는 훗날 다음과 같이 존슨을 묘사했다. ‘그는 고릴라 같았다. 티에서 400야드를 치고 그린에서도 400야드를 쳤다.’ 대통령이기에 진정한 망나니 황제 골프를 했다.

37대(1969년~74)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플레이가 서툴렀고 볼을 옮기는 부정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건 강박증 때문으로 짐작된다. 부통령 시절 닉슨은 상관(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가 그토록 좋아하는 골프를 함께 하기 위해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라운드에 몰두했다.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못하는 실력을 감추려고 라운드할 때 종종 속임수를 썼고, 타수도 속였다. 하지만 1961년에 LA 벨에어에서 기록한 홀인원은 진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홀인원을 치하하는 아이젠하워에게 닉슨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홀인원을 했는데도 91타를 쳐서 아깝게 3달러를 잃었습니다.’ 어떤 것에서도 만족을 찾지 못하던 닉슨은 결국 워터게이트로 인해 대통령직을 불명예스럽게 내려놓고 만다.

42대(1993년~2001)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소문난 골프광이다. 12살에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를 접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꾸준히 골프를 즐겼다. 볼이 오비(Out of Bounds) 지역으로 날아가면 벌타 없이 다시 치는 멀리건을 남용해 ‘빌리건’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어느 날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와 라운드를 한 클린턴은 기자들에게 80타를 쳤다고 떠벌렸다. 조용히 있던 니클라우스는 다른 이에게 속삭였다. “멀리건을 50개쯤 쓴 80타였죠.”

유력 대선 후보 힐러리와 트럼프:
세계 골프장의 절반을 보유한 미국은 대통령의 골프에 너그럽고 후했다. 20세기 이후 골프를 했던 15명의 대통령 중 절반의 대통령이 엉터리이거나 속임수를 쓰는 형편없는 골퍼였음에도 말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골프는 골프라는 일상을 편하게 즐기고 있음을 알리고 소통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현재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오르기 전에 외동딸 첼시와의 가족 골프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수없이 멀리건을 남발하는 남편을 둔 탓에 스스로는 골프 활동을 자제했을 것이고 실력도 뛰어나지 않아 보인다.

이와 달리 공화당의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골프장을 18개 가진 골프 리조트와 부동산 재벌이다. 스스로 최저타 기록이 66타(확인된 바는 없다)라고 하며 공식 핸디캡은 3이다. 최근 그가 소유한 플로리다 팜비치의 트럼프내셔널도럴에서 WGC(세계골프챔피언십)캐딜락챔피언십이 열리자 선거 유세 일정을 쪼개 우승 트로피 시상식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선거 유세중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PGA투어와 어색했던 관계였던 트럼프는 팀 핀쳄 PGA투어 커미셔너와 서먹했던 감정을 푼 것으로 보인다. 우승자 아담 스콧을 격려한 뒤에 다음과 말했다. “어쨌거나 내가 당선되면 골프계는 앞으로 더 좋을 것이다.”

현재까지 골프를 하는 여유를 가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맥락을 살피면 트럼프가 유리할지 모른다. 그러나 골프장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골퍼는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 더욱이 이제는 미국 골프 업계에서도 여성의 역할과 입지가 넓어지고 있다. 올해 임기를 시작하는 미국골프협회(USGA) 수장은 여성으로는 두 번째인 다이애나 머피다. 금녀의 구역이던 오거스타내셔널도 몇 년 전부터 여자 회원을 받고 있다.

골프장이 미국에서는 유세장이 되기도 한다. 트럼프가 바쁜 시간을 쪼개 헬기를 타고 골프장을 찾은 데에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다. 이에 대한 힐러리의 대응은 딸 첼시와 함께 가족 라운드를 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의 남편은 현재 클린턴재단의 이사장으로 PGA투어 휴매나챌린지를 매년 주최하는 스폰서이기도 하다.

- 남화영 헤럴드스포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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