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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도심을 밝힌 ‘똑똑한 투자’

암흑의 도심을 밝힌 ‘똑똑한 투자’

관광객이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를 걷고 있다. 이 지역은 한동안 매춘부와 좀도둑, 마약밀매상이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곳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관광객은 카지노와 터무니없이 비싼 레스토랑들이 몰려 있는 신도심 쪽을 피해 왔다. 그들은 또 구시가지에 가지 말라는 조언도 수없이 들었다. 구시가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어리언스 부근은 매춘부와 좀도둑, 마약상이 들끓는 지저분한 곳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1998년 제니퍼 콘스웨이트가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예술 관련 사업을 하겠다고 이곳에 왔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콘스웨이트는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에 매력을 느껴 그곳에 화랑을 열었다. 화랑 사업은 잘 되지 않았지만 3년 뒤 그녀는 지금의 남편 마이클과 결혼해 그 지역에 새로 문을 연 바 ‘다운타운 칵테일 룸’에 투자했다. 이 부부는 곧 그 지역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0년대 말쯤 라스베이거스 도심에 값비싼 아파트와 채식 전문 레스토랑, 기술 신생기업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상황이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마약과 매춘이 여전했지만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콘스웨이트는 말했다.

그러던 중 큰 변화가 일어났다. 2013년 세계 최대의 온라인 신발 업체로 꼽히는 자포가 1600명의 직원을 이끌고 구시가지에 있는 라스베이거스 시청 건물에 입주했다. 2009년 아마존에 회사를 매각해 현금 자본이 두둑했던 자포의 CEO 토니 셰이는 도심 개조사업에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도심 재개발은 보통 기업 CEO가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주도하며 그런 프로젝트에는 많은 규칙과 규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달랐다. 셰이 CEO는 투자금 중 1억5000만 달러를 부동산 프로젝트에 쓰고 1억5000만 달러는 도심 지역에 개업하려는 신생기업과 주택개발업체, 레스토랑, 예술가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줬다. 그 다음 2년 동안 약 300명의 사업주가 이 대출을 받아 도심에서 창업했다.

언론에서는 셰이 CEO의 프로젝트를 ‘라스베이거스를 제2의 실리콘밸리로 만들려는 노력’으로 묘사했다. 2014년 9월 테크놀로지 뉴스 웹사이트 Re/code는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미국의 위대한 테크토피아(The Great American Techtopia)’로 소개했다. 하지만 셰이 CEO가 정말 원했던 것은 멋지고 살기 좋은 미국의 도심을 만드는 일이었다. ‘심시티(SimCity)’와 비슷한 유형의 컴퓨터 게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서 영감을 얻었다.

셰이 CEO의 실험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가 제공한 자본으로 창업한 회사 중 다수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요즘 라스베이거스는 실리콘밸리로 흘러 들어갈 벤처 캐피털 수십억 달러를 가로챌 만한 소수의 미국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구글 검색창에 ‘제2의 실리콘밸리’라고 치면 디트로이트와 올랜도, 플로리다, 댈러스, 오스틴 등이 뜬다. 하지만 이들 도시 중 라스베이거스처럼 1명의 기업가가 사재를 털어 그런 변화를 이끌어낸 곳은 거의 없다.

“라이베이거스가 도심 개조사업의 모범 사례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고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의 부동산·도시계획 교수 크리스 레인버거는 말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가 늘 그렇게 형편없진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호황기에는 개발업자들이 프리몬트 거리에 호화 호텔을 지었고 주말이면 여행객이 몰려들었다. 그 시절엔 구시가지의 ‘미라지’ 같은 카지노들이 라스베이거스의 중심을 이뤘다. 하지만 1989년 스티브 윈이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최초의 카지노 리조트를 설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후 20년 동안 구시가지의 돈과 향락 사업이 이 지역으로 점차 빠져나가면서 신도심이 형성됐다.

20세기에 세워진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그 세기가 끝날 무렵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하지만 관광객은 라이베이거스 스트립으로만 몰렸고 구시가지는 텅 비어가면서 가난과 범죄가 들끓었다.

시 당국은 관광객을 구시가지로 다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1995년 유니언 퍼시픽 철도에서 24만7000㎡의 땅을 사들여 개발사업에 착수했다. 아파트와 사무실, 공연장과 어린이 미술관을 지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콘스웨이트와 몇몇 사람들은 시 당국이 스미스센터와 공연장 등 큰 프로젝트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좋은 출발이긴 했지만 교외에 사는 사람들을 도심으로 불러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쨌든 구시가지는 2000년대 중반까지 서서히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모든 시스템이 멈춰섰다”고 콘스웨이트는 말했다. “15~16개 고층건물의 건설이 승인됐지만 땅값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말엔 하루 손님이 1000명”
최근 라스베이거스 도심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술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벽을 장식하는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구시가지에 새로운 형태의 삶을 창조했다. 땅값이 비쌌을 때는 건물주들이 더 좋은 값을 받으려고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닥치자 어떤 제안이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콘스웨이트는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빌려주는 ‘이머전시 아츠(Emergency Arts)’ 사업을 위해 건물을 임대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건물주가 ‘이 건물에서 뭘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을 잔뜩 불러모으든 어쩌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변화였다. 그 즈음부터 사람들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자포가 시청 건물에 입주한 것만으로도 구시가지에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셰이 CEO가 지역 기업주들의 동료애에 감동 받아 구시가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금상첨화였다.

셰이 CEO의 프로젝트는 기술 분야에서처럼 중간중간 그 효과를 측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는 가끔씩 직원들에게 선적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몇몇 바와 레스토랑, 소매점 안에 유모차가 몇 대나 있는지 세어보게 한다. 부모들이 그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는 또 이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의 우연한 만남이 공동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추적해 그 건수를 측정한다. 셰이 CEO가 어니 로야를 만난 것도 그런 식이었다. 로야와 그의 부인 코니는 최근 라스베이거스 교외에서 도심의 고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 부부는 도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더 레이크스 지역의 수영장과 뒷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에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 로야는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

로야는 자포의 콜센터 직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비큐 식당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 틈틈이 살사 소스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자포에 살사 소스를 배달하러 가다가 셰이 CEO와 마주쳤다. “셰이는 내가 만든 바비큐를 먹어보고 싶어 했다”고 로야는 돌이켰다. 셰이 CEO는 로야의 바비큐 맛에 반해 그의 식당 사업에 자금을 댈 뿐 아니라 경영수업 수강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3년 11월 라스베이거스 컨테이너 파크에 로야의 식당 ‘빅 언스(Big Ern’s) 바비큐’가 문을 열었을 때 손님들이 문밖까지 줄을 섰다고 로야는 돌이켰다. “주말이면 하루에 손님이 1000명씩 온다.”
 탐욕과 리더십의 부재가 문제
토니 셰이 CEO가 지난해 9월 25일 한 음악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도심개조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셰이 CEO의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 프로젝트처럼 투자자 1명이 한 지역에 엄청난 현금을 투자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는 모기지 업체 퀴큰 론스의 창업자 댄 길버트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했다. 투자 규모도 더 컸고 결과도 더 인상적이었다. “디트로이트 도심에서 고층건물을 세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길버트는 말했다. “그래서 고층건물 9채를 샀다.” 부동산 전문가 레인버거는 길버트가 “고층건물 총 70채를 사들여 수리한 뒤 임대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와 디트로이트의 변화는 1명의 투자자에게서 시작됐다.”

미국의 도심 재활성화 프로젝트 대다수가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상업활동촉진지구(BID)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례적이다. 이런 경우 납세자가 낸 세금이 제일 먼저 투입되는 부문이 도시 문화 시설이다. 레인버거는 “도심에 야구장을 건설하면 20~30년 동안 시내에 나갈 일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곳을 찾게 되면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도시 지도자들이 그 다음으로 초점을 맞추는 문제는 임대 아파트 건설이다. 경제적으로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여력이 없는 젊은이들을 도심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그 다음 차례는 주택 시장이라고 레인버거는 말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산의 큰 몫을 도심에 투자할 용의가 있다.”

셰이 CEO와 길버트의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사무 공간과 고용에 투자했다는 사실이다. 길버트가 사들인 고층건물들과 자포 본부를 생각해 보라. 미국의 각 도시에서 교외로 일자리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도심에 남은 사업 부문은 은행과 전문 서비스 회사, 법정, 그리고 정부뿐이었다고 레인버거는 말했다. “하지만 길버트와 셰이 CEO는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듯 도심의 사업체 재확장을 활발히 추진했다.”

그러나 빨리 감기 버튼의 효력은 이쯤에서 멈춘 듯하다. 로야의 식당 창업을 가능하게 했던 실험은 이제 거의 막을 내렸다. 셰이 CEO의 투자금은 부동산 프로젝트와 수십 개 신생업체 지원에 다 쓰였다. 그들 업체 중 일부는 문을 닫았고 일부는 성업 중이다. 구시가지는 이제 빈 껍데기처럼 썰렁하던 옛 모습에선 벗어났지만 활기찬 대도시의 면모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라스베이거스 도심에 밀려들던 현금의 쓰나미가 모두 효과적으로 쓰이진 못했다. 이 프로젝트는 자동차 공유 프로그램에 1100만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도심의 주민 수가 많지 않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가까운 랜초 벨 에어에서 자란 크리스 라미레즈는 2010년 도심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 전 10년 동안 라스베이거스에 영화사를 차리려고 기회를 노리던 그는 마침내 셰이 CEO의 투자를 받게 됐다. 2011년 라미레즈는 셰이 CEO와 손잡고 다운타운 필름스라는 영화사를 설립했다. 개발회사와 제작사 하나씩을 자회사로 뒀다. 그는 고향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영화 산업을 일으키고 싶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 중심부의 유명한 카지노 엘 코르테즈.
라미레즈는 자신이 제시한 사업 계획의 경제 가치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셰이 CEO와 그 동업자들의 태도에 놀랐다. “그들은 내 사업 계획이나 배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라미레즈는 말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내가 시내에서 뭔가 일을 벌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라미레즈는 지난해 영화사를 팔았다. “유감스럽지만 실험은 이제 끝났다”고 그는 말했다. “그건 실험에 불과했을 뿐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투자를 받을 수도 없다.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2014년 9월 Re/code는 셰이 CEO가 도심 재활성화 프로젝트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보도했다(셰이 CEO는 자신이 공식적인 역할을 맡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후 셰이는 프로젝트 관련 직원 100명 중 3분의 1을 해고했다. 아이오와대학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 프로젝트의 ‘상상력 감독(director of imagination)’을 맡은 데이비드 굴드는 라스베이거스 위클리지에 보낸 공개서한에 ‘우리는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퇴폐와 탐욕, 리더십의 부재가 문제였다’고 썼다.

그해 이 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창업한 사업주 3명이 사업 실패를 비관해 자살하자 언론이 들끓었다. 라스베이거스 리뷰-저널의 존 스미스는 ‘선적 컨테이너에 문을 연 구멍가게들이 라스베이거스의 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지는 않다’고 썼다.

그 말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셰이 CEO는 도심 재활성화 프로젝트가 5년 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창업한 모든 사업체가 살아남거나 라스베이거스 도심이 마술처럼 파리 같은 도시로 둔갑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대출금을 갚고 진정한 투자를 통해 돈이 흘러 들어와 수지가 맞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그 목표보다 약간 앞서 간다고 셰이 CEO는 말했다. 이 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창업한 소기업 중 약 35개가 살아남았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도심이 아직 필요한 수준까지 활성화되진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합리적인 가격의 주택 제공이 큰 문제다. 이 프로젝트의 주거 부문 목표에는 주택 500세대가 포함됐지만 월세 900~1400달러의 주택이 아직 충분치 않다.

지난해 4월 프로젝트 본부는 아파트 315세대를 사들여 수리를 마쳤으며 월세는 650~85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주택은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셰이 CEO는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외곽 지역이 넓게 퍼져 있어 도심의 주택 문제 해결이 더 어렵다. 셰이 CEO는 도심에 고층 아파트 5채를 지어도 교외에 사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했다. 그들이 싼 값에 수영장 딸린 교외의 집과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스베이거스 시내와 주변 교통이 그다지 혼잡하지 않아 도심으로 이사할 경우 통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그다지 큰 이점으로 여겨지지도 않을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도심은 독특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 지역의 재활성화에는 특별한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그곳도 미국 도시 중 하나여서 현 추세로 볼 때 장기적으로는 결국 더 많은 사람이 도심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라고 레인버거는 말한다.

도심 지역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으려는 밀레니엄 세대와 더 단순하고 간편한 삶을 원하는 베이비붐 세대 모두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이제 교외의 시대는 가고 도심의 시대가 다가온다. 레인버그는 이런 추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전역의 대도시에서 이런 경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도심 이주와 관련된 억눌린 수요가 존재한다. 그것이 향후 30~40년 동안 주택 건설업과 부동산업의 활성화를 부추길 것이다.” 셰이 CEO와 라스베이거스 도심 재활성화 프로젝트에 동참한 사업주들은 어서 그런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 윈스턴 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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