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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이상원 퀵소 대표] 기계와의 대화에도 남다른 급이 있죠

[창조가&혁신가 | 이상원 퀵소 대표] 기계와의 대화에도 남다른 급이 있죠

4월 1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이상원 대표가 손끝과 손가락 관절에 다르게 반응하는 ‘핑거 센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늘 누구와 가장 많은 대화를 했나.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대화를 큰 범주로 본다면 답은 아마 스마트폰일 것이다. 현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이상원(36) 퀵소 대표는 스마트폰과 사람 간 대화 방식을 연구하는데 푹 빠져 있다.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 있을 것이다. ‘왜 스마트폰에서는 마우스에 있는 오른쪽 버튼 기능을 쓸 수 없을까.’ 이 대표는 손끝을 왼쪽 버튼, 손가락 관절을 오른쪽 버튼처럼 사용하면 어떨까 상상했다. 그는 2012년 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크리스 해런 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와 퀵소를 공동창업하며 이 상상을 제품으로 만들어냈다.
 상상을 현실의 기술로
퀵소가 개발한 ‘핑거 센스’는 스마트폰이 손끝과 손가락 관절의 터치를 구분할 수 있게 한 기술이다. 가령 평상시처럼 손끝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다 화면을 캡쳐하고 싶으면 손을 뒤집어 손가락 관절로 두 번 두드리면 된다. 지도 앱에서 관절로 동그라미를 그리면 원하는 부분만 자를 수 있다. 이것을 바로 메시지로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러 앱을 동시에 사용하다가도 관절로 화면에 ‘C’라고 쓰면 카메라가, ‘W’라고 쓰면 모바일 메신저 위챗이 뜬다. 쉽게 말해 관절을 스크린에 대는 순간 반응하는 판이 하나 더 생겨 기존 화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제품 ‘터치 툴’은 손 모양을 인식해 사용자든 것처럼 양쪽 엄지, 검지로 네모를 만들어 화면에 대면 카메라가 나온다. 이 카메라에 있는 모양 그대로 줌, 촬영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뭔가 잡은 듯 한쪽 엄지, 검지를 대면 지우개가 튀어나온다. 양 엄지, 검지를 대고 붙였다 쭉 빼는듯한 시늉을 하면 줄자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기술은 모두 인간과 기기의 상호작용(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을 연구하는 분야로 퀵소는 HCI와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허공에 손을 대고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역시 HCI 분야의 기술이다. 최근 기존과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사용자의 의도를 기기에 전달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S펜’이나 애플 등이 선보인 누르는 압력에 따라 스크린이 다르게 반응하는 ‘포스 터치’ 같은 기능이 모두 새로운 차원의 입력 방식이다. 이 대표는 “여러 개의 터치 포인트를 인식하는 멀티 터치가 상용화된 지는 8, 9년 지났지만 아직 표준으로 인식되는 기술은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과 경쟁에서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는 것이 퀵소의 숙제다. 이 대표는 감각을 골고루 이용해 상호작용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 퀵소 기술의 경쟁력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CTO(최고기술책임자)인 해런 교수는 이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카네기 멜론 대학은 HCI 학과를 컴퓨터공학과 비슷한 규모로 운영할 만큼 이 분야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술은 머신러닝(기계학습)”이라고 설명했다. 머신러닝 엔진이 손끝으로, 관절로 화면을 터치할 때 디바이스 내 여러 기능의 센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데이터를 학습해 적절한 답을 내놓는 것이다.

퀵소는 지난해 5월 중국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 단말기에 핑거 센스를 탑재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8종의 화웨이 단말기에 핑거 센스 기능이 들어갔다. 같은 해 12월 알리바바가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OS) ‘윈OS’에도 핑거 센스를 탑재하기로 계약했다. 이 대표는 “올 하반기에 새로운 파트너들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치 툴 역시 올해 상용화할 계획이다. 개별 앱 개발 회사들과도 제휴를 준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매출이 나기 시작해 올해는 파트너사, 제품 라인, 직원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에게 처음 창업의 꿈을 심어준 이는 김종훈 키스위 모바일 회장이다. 중학생 때 김 회장의 성공 다큐멘터리를 보고 “부러웠다”고. 포항공대 전자공학과 신입생 시절 벤처사업가가 된 선배들을 보며 본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영업, 개발부서만 있으면 회사가 굴러간다고 생각할 만큼 아는 것이 없었던 그는 경험을 쌓기 위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삼성전자에서 상품기획, SK텔레콤에서 해외 협력사 제휴, HTC에서 사용자인터페이스(UI) 솔루션 기술 업무를 담당하며 10년 정도 일했다. 이 대표는 “모두 무선사업 분야였지만 각각 다른 역할이라 이때 경험이 창업의 초석이 됐다”고 말했다. 경영학을 공부하려고 미국 버클리대 경영대학원(MBA)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실리콘밸리 창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대표는 4월 12일 한국을 찾았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에 연사로 서기 위해서다. 많은 이들이 그의 경험담에 귀를 기울였다. 이 대표가 성공한 스타트업 CEO로 주목 받을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중요한 고비마다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드바이저(고문)’를 잘 선택해서다. 창업 전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할 때는 컨설턴트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막연한 아이디어를 꼼꼼한 사업계획서로 완성했다. HTC에서 일할 때 해런 CTO의 홈페이지를 알게 됐고 한 통의 e메일로 시작된 만남이 8개월 만에 창업으로 이어졌다. 해런 CTO의 기술과 이 대표의 상용화 노하우가 이룬 합이었다. 초창기 벤처캐피털(VC)에 투자를 받으러 다닐 때는 브라이언 강 노틸러스벤처파트너스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이 대표는 강 대표를 ‘고문’으로 영입해 실전 훈련을 받았다. 몇 주 동안 프레젠테이젼 연습을 한 뒤 강 대표는 퀵소에 절대 투자하지 않을 VC에게 이 대표를 소개했다. 그러기를 십 수 번, 그때서야 강 대표는 온갖 부정적 질문에 단련된 이 대표를 투자 가능성이 큰 VC에게 보냈다. 이런 노력 끝에 미국 시에라 벤처스 등 국내외 VC로부터 780만 달러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여러 부문에서 일하며 각 분야 전문가들과 인맥을 다져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어드바이저’에게 물어야 시행착오 줄어
“내가 부족한 걸 빨리 받아들이고, 그걸 잘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목표에 집중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으려다 보면 뭔가 자꾸 추가하게 돼요. 핵심은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이지 여러 기능으로 제품을 포장하는 게 아닌데 말이죠.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입니다.” 그는 핑거 센서 기술이 길어야 7, 8년 정도 쓰일 것이라 말했다. 그 이후에는 스마트폰 기기를 들고 다닐지조차 불투명하다는 것. “현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주력하지만 사용자 상호작용 플랫폼은 자동차나 냉장고, 테이블 등 모든 사물인터넷(IoT) 기기에 활용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을 넘어 다양한 기기에서 사람들의 사용 패턴을 바꾸는 것이 이 대표의 다음 목표다.

-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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