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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러레이터가 뜬다] 될성 부른 스타트업에 ‘가속 페달’ 밟아준다

[엑셀러레이터가 뜬다] 될성 부른 스타트업에 ‘가속 페달’ 밟아준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했지만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스타트업일 뿐이다. 경영 경험과 자본은 일천할 수밖에 없다. 벤처 생태계에서 무럭무럭 자라려면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실전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는 기업이나 기관을 ‘엑셀러레이터’라고 부른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달리 국내에선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1세대 벤처 창업가를 중심으로 속속 고수 엑셀러레이터가 등장하고 있다.
남성태 집펀드 대표는 부동산에 핀테크를 접목한 스타트업을 운영한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운영하며 부동산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1년 전 뉴욕에서 사업을 구상했는데 가능성을 보고 한국에서 도전을 시작했다. 4월 내내 그는 국내 주요 엑셀러레이터를 만나고 다녔다. 남 대표는 “여러 엑셀러레이터를 만나며 기술 지원과 자금 투자를 넘어 후배가 잘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진심이 느껴졌다”며 “나중에 투자금을 회수한 다음엔 나도 엑셀러레이터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벤처 업계에선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창조경제 바람에다 모바일과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으로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창업 문은 넓어졌지만 성공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좁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스타트업 10곳 중 9곳이 2년 안에 문을 닫는다. 스타트업계에선 이 기간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열정만 가득한 창업팀이 죽음의 계곡을 넘도록 돕는 이들이 있다. 투자와 자문을 제공해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바로 ‘엑셀러레이터’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찾아 ‘가속 페달’을 밟아 준다는 의미다.
 엑셀러레이터 비용은 지분의 5~10%
엑셀러레이터들은 스타트업의 안착을 위해 투자·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사무실과 회의실 제공 등 물리적 지원부터 투자자 소개, 해외 네트워크 개척 등 스타트업이 사업을 일궈 나가기 위한 모든 토대를 마련해 준다. 물론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는 건 아니다. 통상적으로 스타트업의 지분 5~10%를 받아 스타트업이 상장하거나 매각되면 수익을 챙긴다.

엑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을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집 공고를 내거나,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행사를 연다. 깐깐한 심사위원 앞에서 사업 계획서를 발표하고 평가 받는다. 유명 엑셀러에이터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거나 찾아가는 일도 많다. 엑셀러레이터도 적극적이다. D캠프나 마루 180,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소프트웨어 마이에스트로 같은 스타트업 양성 기관 소속 창업자 프로필을 수시로 살핀다. 벤처 업계 후배들에게 수시로 추천받는다.

한국의 엑셀러레이터는 대부분 벤처 1세대다. 이들은 창업을 ‘맨땅에 헤딩’이라고 표현한다. 힘들게 쌓은 경험과 안목을 후배들과 나누기 원한 벤처인들이 엑셀러레이터로 나섰다. 한국에서 엑셀러레이터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 중순 이재웅·이택경 다음 공동창업자,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이니시스 창업자), 장병규 본엔젤스 고문(네오위즈 창업자) 등이 모여 식사를 했다. 주제는 싸이월드였다. 2003년 싸이월드는 SK커뮤니케이션스에 피흡수됐다. ‘왜 싸이월드는 여기까지 밖에 못 왔는가’ ‘미국이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한국 벤처 생태계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 등이 대화의 주제였다. 이들은 ‘스타트업이 흔히 범하는 실수 몇 가지만 줄여도 성공확률이 높아질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택경 매쉬업 엔젤스 대표는 “한번 산을 타본 사람은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안다”며 “후배들에게 나아갈 방향만 알려줘도 벤처 생태계 활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0년 권도균 대표는 프라이머를 설립한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도 프라이머 파트너로 합류했다. 장병규 전 네오위즈 창업자도 같은 해 자본금 50억원을 들여 본엔젤스를 창업한다. 이택경 대표는 5년 간 프라이머 파트너로 활동하다 2014년 엑셀러레이터 기관 매쉬업 엔젤스를 설립했다. 이들은 미국의 대표적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를 벤치마킹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스타트업 700개를 키워내며 2000명이 넘는 창업자를 지원해온 기관이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를 대상으로 85개 내외 스타트업을 선발해 소액을 투자한다. 드롭박스와 에어비엔비는 와이컴비네이터가 투자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엑셀러레이터 리더스 포럼(ALF) 측은 국내 엑셀러레이터 기업을 약 23곳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권도균 대표의 프라이머다. 한국 1호 엑셀러레이터로 지금까지 86개의 스타드업을 지원해왔다. 번개장터·트리플래닛·언니의 파우치·스타일 쉐어·마이리얼트립·데일리호텔 등이 그를 통해 자리 잡은 벤처들이다. 본엔젤스에선 지난 연말 설립자인 장병규 대표가 물러났다. 벤처 투자자로 활동해온 강석흔·송인애 대표가 조직을 이끈다. 컴투스 창업자인 박지영 대표도 본엔젤스 파트너로 합류했다. 장병규 대표는 파트너로 스타트업 발굴에 전념하고 있다. 2015년 가장 주목받은 엑셀러레이터는 스파크랩의 이한주 대표가 꼽힌다. 스파크랩 역시 미국 와이컴비네이터를 벤치마킹한 기관이다. 이 대표는 미국·유럽 등 해외 진출 가능한 업체를 중심으로 투자해 좋은 성과를 올렸다. 미미박스·노리·망고플레이트·스타일위키·스테이즈를 키워냈다.
 국내 엑셀러레이터 23개 활동 중
스타트업을 키워내지만 성격이 조금 다른 기업도 있다. 신현성 티켓몬스터 창업자가 설립한 ‘패스트트랙아시아’는 ‘회사를 만드는 회사’로 불린다. 단순한 투자 개념에서 벗어나 기업의 시작부터 함께 한다는 설명이다. 성인 창업 교육 기관 패스트캠퍼스, 창업 임대 공간 패스트파이브를 자회사 수준으로 키우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엑셀러레이터도 등장했다. 롯데는 사회환원의 한 방식으로 엑셀러레이터 재단을 설립했다.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과 각종 인프라,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투자법인인 ‘롯데 액셀러레이터’ 설립을 추진해 청년창업을 지원한다. 롯데는 엑셀러레이터 1호 기업으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 추천받은 천연벌꿀 생산·판매 스타트업인 ‘허니스푼’에 2000만원의 자금과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한다. 한화 또한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한화 드림플러스’를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트업 기업이 12주 간 한화와 사업전략을 공유하며 한화 계열사들이 지역별로 지원 사격에 나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엑셀러레이터 관계자는 “대기업들 또한 기존 엑셀러레이터 기업들에게 노하우를 듣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새롭게 각광받는 엑셀러레이터지만 고민도 있다. 국내에 창업 전문가 수가 부족하다. 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창업을 경험한 전문가가 많지 않아 스타트업이 양질의 조언을 받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악재도 생겼다. 업계 대표적 엑셀러레이터인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가 검찰에 구속됐다. 스타트업에서 제공해야 할 수십 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다. 더벤처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행대로 정부 자금을 투자했는데, 검찰이 벤처 업계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리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이번 사태로 성공한 벤처인들이 더 이상 후배 양성을 위해 뛰지 않을 수 있다”며 “후배 창업가들에게 성공 경험을 전수하며 제2, 3의 벤처 성공신화를 일구려 하는 벤처 1세대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엑셀러레이터: 스타트업의 안착을 위해 투자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업체 혹은 기관을 말한다. 사무실과 회의실 제공 등 물리적 지원부터 투자자 소개, 해외 네트워크 개척 등 스타트업이 사업을 일궈 나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 준다. 통상적으로 스타트업의 지분 5~10%를 인수해 스타트업이 상장되거나 매각되면 수익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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