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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⑤] 아름드리 노송에서 비룡의 기품 포착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⑤] 아름드리 노송에서 비룡의 기품 포착

만항재 2015.
산수화에는 추상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추상’이란 ‘애매모호하고 어렵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입니다. 곁가지를 다 쳐낸 어떤 대상의 핵심만을 묘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산수화에서 바위를 그리는 회화이론인 ‘준법(峻法)’이라는 것도 추상적인 표현방법입니다. 암석의 구조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패턴을 파악한 후 그 특징을 간략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피마준’의 ‘피마’는 ‘삼나무의 껍질’로 삼베 실을 뜻합니다. 삼베 실은 뻣뻣해서 구불구불합니다. 바위의 윤곽과 금이 간 모습을 삼베 실이 늘어지듯이 그리는 방법입니다. 또 ‘부벽준’의 ‘부(斧)’는 ‘도끼 부’ 자입니다. 바위의 질감이 마치 도끼로 쪼갠 듯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지층 활동이 왕성했던 바위를 보면 각이 져 있습니다. ‘미점준’이라는 준법도 있습니다. ‘쌀 미’ 자를 씁니다. 바위의 윤곽선을 그린 다음 붓을 옆으로 눕혀 마치 쌀알처럼 툭툭 찍는 기법입니다. 낮은 것은 먹이 짙게, 높은 것은 엷게 찍습니다. 바위 절벽에 듬성듬성 있는 나무의 모습이 그럴 듯하게 나타납니다.
 바위 그리는 회화이론인 ‘준법’
나무도 칩엽수·낙엽수·고목 등 수종에 따라 특징을 포착해 서로 다른 붓질을 구사합니다. 나무를 그리는 방법을 ‘수지법(樹枝法)’이라고 합니다. 그중에는 ‘해조묘(蟹爪描)’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나무나 죽은 고목을 그릴 때 즐겨 쓰는 방법입니다. 한자어 그대로 ‘게의 발’처럼 다소 거칠고 날카롭게 나뭇가지를 묘사합니다.

피마준의 ‘삼베 실’이나 부벽준의 ‘도끼 자국’, 미점준의 ‘쌀’, 해조묘의 ‘게의 발’은 자연계에서 따온 일종의 패턴입니다. 바위의 모양은 지형과 지세에 따라서 각기 다르지만 공통분모를 가진 어떤 특징, 즉 패턴이 있습니다. 준법이라는 것은 결국 패턴을 활용한 회화이론입니다.

산수화에서 추상적인 표현이 발달한 것은 문자의 영향도 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한자는 상형문자로 사물을 본 떠 만든 회화문자에서 출발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자 자체가 ‘추상’의 개념과 통합니다. 그래서 사물의 특징을 포착하는 패턴인식이 남다릅니다.

산수화 이론의 대부분은 어떤 대상에 대한 관찰의 결과를 기록한 겁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화가인 형호(荊浩)는 그의 화론인 ‘필법기(筆法記)’에서 소나무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름드리 큰 노송은 껍질이 묵어 푸른 이끼가 끼어있는데다, 넓적한 비늘을 번득이며 공중으로 치솟아 있는 것이 마치 서리어 있던 ‘규룡(뿔이 있는 어린 용)’이 은하수를 향해 올라가는 기세였다. 숲을 이룬 것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의기가 양양한 듯이 보이며, 그렇지 못해 외따로 서 있는 것은 마치 절개를 지키는 고사(高士)가 짐짓 구부리고 있는 듯했다. 또 어떤 것은 뿌리가 구불구불 땅을 뚫고 나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크게 흐르는 물 위로 비스듬히 누워있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언덕에 걸려 있는 것, 시내에 구부러져 있는 것, 이끼를 헤치고 나온 것, 바위를 찢고 서 있는 것 등 그 기이한 절경에 나는 경탄하면서 두루 그것을 관상하였다.’

소나무 껍질을 ‘용의 비늘’에 비유합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소나무를 ‘고사(高士)’가 구부리고 있는 듯하다며 의인법을 사용합니다. 산수화가 선 위주로 대충대충 그린 것 같지만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입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는 거의 소나무가 등장합니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 찬 숲을 그릴 때는 지그재그로 대충대충 그린 듯합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소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았습니다.

송나라 곽희(郭熙, 1001~1090년)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산과 물의 형상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산은 큰 물체이다. 그 형상이 솟아 빼어난 듯, 거만한 듯, 조망이 널찍하여 툭 터져 있는 듯,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듯, 다리를 펴고 앉아 있는 듯, 둥그스럼하게 큰 듯, 웅장하고 호방한 듯, 정신을 전일하게 한 듯, 엄중한 듯, 눈이 예쁘게 뒤돌아 보는 듯, 조회에서 읍하고 있는 듯, 위에 덮개가 있는 듯, 아래에 무엇을 타고 있는 듯, 앞에 의거할 것이 있는 듯, 뒤에 기댈 것이 있는 듯 해야 한다. 또 아래로 조감하면서 마치 무엇에 임해서 보는 듯 하게 해야 하고 아래에서 노닐면서 마치 무엇을 지휘하는 듯하게 해야 이것이 곧 산의 대체적인 모습이다. 물은 활동하는 사물이다. 그 형상이 깊고 고요한 듯, 부드럽고 매끄러운 듯, 살찌고 기름진 듯, 넓고 넓은 듯, 빙빙 돌아 흐르는 듯, 살찌고 기름진 듯, 용솟음치며 다가오는 듯, 격렬하게 쏘는 듯, 샘이 많은 듯, 끝없이 멀리 흘러가는 듯하게 해야 하고, 또 폭포는 하늘에서 꽂히듯 하고, 급히 흘러 부딪히며 떨어져 땅 속으로 들어가는 듯, 안개와 구름이 끼어 빼어나게 고은 듯, 계곡에 햇빛이 비치어 찬란한 듯하면, 이것이 곧 물의 활동하는 모습이다.’

 산수화의 놀라운 사실성
세심한 관찰과 패턴인식이 비유적인 표현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그림에 반영됩니다. 패턴인식이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연상작용은 이미지의 레토릭으로 이어집니다. 그림이건 사진이건 풍성한 비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미지에 한풀 가려진 이야기를 담습니다.

무릎을 치게 하는 비유는 사실성을 담보합니다. 풍경사진을 찍다 보면 우리의 산수화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감탄하게 됩니다. 사진은 속성상 산수화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연계의 특정 대상의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면 추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빛의 활용, 피사계 심도, 렌즈의 선택과 활용 등 사진적인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세심한 관찰력입니다.

사진은 함백산에서 바라 본 만항재 일대의 모습입니다. 곽희는 산이 높게 보이려면 허리 춤에 운해가 드리워져 있어야 하고, 강이 길어 보이려면 끊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산 봉우리를 에워싸듯 드리워진 운해가 산의 높이와 깊이감을 더해 줍니다.

-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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