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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기자가 만난 ‘판교밸리언’(4)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바이오 기업들 더욱 저돌적이어야”

[최은경 기자가 만난 ‘판교밸리언’(4)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바이오 기업들 더욱 저돌적이어야”

제대혈 저장소 앞에 선 양윤선 대표. 제대혈은 영하 196도의 질소 탱크에 냉동 보관하고 이식이 필요하면 해동한다.
137개.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바이오 기업 수다. 이 가운데 21개 회사가 3개 동으로 이뤄진 코리아바이오파크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도보 15분 거리에는 제대혈(출산 후 탯줄에서 나온 혈액) 1위 기업인 메디포스트가 있다. 2014년에 서울 서초동에서 판교로 사옥을 옮긴 이곳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약품 허가 규제 완화로 주목받고 있다.

5월 18일 식약처는 희귀질환·암 같은 일부 질환 치료 신약에만 허용하던 조건부 허가제를 알츠하이머·뇌경색 등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보통 신약 임상시험은 3상까지 하는데 2상 시험 자료로도 허가를 내주겠다는 얘기다. 메디포스트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뉴로스템’의 임상시험(1상, 2상 전기)을 하고 있다.

5월 24일 메디포스트 본사에서 만난 양윤선(52) 메디포스트 대표는 “꼭 필요한 약이 개발될 때까지 10~15년 걸려 안타까웠는데 이번 규제 완화는 잘한 일”이라며 “앞으로 바이오 기업의 개발 의지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건부 허가가 난립하면 안전성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정상적으로 심사하고 규정을 지키면 괜찮을 것”이라며 “다만 제도를 잘 운용하려면 정부 조직이 수평적·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혈 보관 시장 독보적 1위
메디포스트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제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이 분야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2012년 한국에서 허가를 받은 ‘카티스템’은 퇴행성 혹은 외상으로 손상된 무릎 연골을 재생시키는 치료제다. 양 대표는 “세계에서 유일한 퇴행성 관절염 분야 줄기세포 치료제”라며 “개발하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 약은 이제까지 전국 300곳의 병원에서 3000여 명의 환자에게 투여됐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환자 중 한 명이다. 미국에서 역시 1상, 2상 전기 시험을 진행 중이고 내년에 임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013년에는 호주·인도·홍콩 기업과 계약해 외국에도 판로를 열었다.

뉴로스템 역시 임상에 성공하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치매 치료제가 된다. 폐 질환 치료제 ‘뉴모스템’은 한국에서 2상 시험을 끝내고 미국에서 1·2상 임상시험 중이다. 이 외에 뇌졸중·급성호흡부전증후군·루게릭병에 대한 전(前)임상 연구도 하고 있다.

현재 메디포스트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신생아의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보관하는 제대혈 은행 ‘셀트리’다. 지난해 매출 375억원 가운데 68%가 여기서 나왔다. 양 대표는 “한국 가족 제대혈 보관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며 “현재 제대혈 21만 개를 보관 중이고 540여 건의 제대혈 이식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대혈에 있는 조혈 모세포(혈액을 만드는 세포)와 간엽줄기세포(연골·뼈·근육·신경 등으로 자라는 세포)가 손상된 조직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때문에 제대혈을 보관하면 백혈병, 소아암, 재생불량성 빈혈 등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디포스트는 2005년 재생불량성 빈혈인 4세 아동에게 한국 최초로 자가(自家) 제대혈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최근 화장품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여름 ‘셀피움’ 브랜드를 내고 온라인 시장, 면세점 등에서 줄기세포 배양액이 함유된 기능성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직 성과는 크지 않다. 양 대표는 “줄기세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소비자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양 대표가 메디포스트를 설립한 것은 2000년이다. 서울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업을 하기 전에는 서울대학교병원·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병리과 전문의로 일하며 제대혈 보관 업무를 했다. “백혈병·소아암 환자들이 골수 기증자가 없어 이식을 못 받는 상황을 보면서 제대혈 보관과 난치성 질환 치료 연구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처음엔 경영자로 나설 생각이 아니었다. 기술 임원으로 참여했다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 양 대표는 전국의 산부인과를 다니며 산모와 의사에게 제대혈 보관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서울의 작은 임대 사무실에서 직원 10명과 함께 연구·영업을 병행했다. “늘 힘든 일이 생기지만 포기하고 싶던 적은 없었어요. 의사일 때는 정해진 대로 살았지만 사업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잖아요.”

그는 매사 긍정적이다. 고민하는 대신 ‘정리정돈’을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후회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거죠.” 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지난 16년 동안 앞을 보며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10명이던 직원은 210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매출 375억원을 기록했다. 또 미국·유럽의 국제 특허 38건을 포함해 59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임직원 중 연구 인력이 절반 이상으로 매년 매출의 30~50%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조인트 벤처로 중국·일본 진출 계획
양 대표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바이오 업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세금 혜택, 바이오 업종에 맞는 인수합병 제도를 원해요. 중소·벤처기업은 인력 수급과 투자금 확보가 가장 큰 어려움이고요.” 메디포스트 역시 사업 초기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1년 국책연구사업에 선정되면서 신약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연구 인력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산학연 협력으로 인재 풀(pool)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줄기세포 연구를 하려면 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명확한 제도가 없고 반기업 정서 때문에 기증자도 많지 않아요. 바이오 기업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환경입니다.”

위험도가 높은 사업 분야지만 양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겠다고 말했다. “한국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말도 못하게 부족하지만 의료 시스템이 표준화된 것은 강점입니다.” 조인트 벤처(공동 사업체) 형태로 중국과 일본에 진출할 계획도 밝혔다. “미국의 암젠은 수십 년 동안 실적이 나지 않는데도 꾸준히 연구개발에 몰두해 대형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더 과감한 도전정신과 저돌성이 필요합니다. 판교는 그런 에너지를 얻기 좋은 곳이지요.”

-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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