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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은 자연에 돌려주세요

야생동물은 자연에 돌려주세요

일부 영화와 TV 프로그램이 잘못 묘사한 동물을 일반인이 호기심에 키우다 버리는 사례 많아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페넥 여우 캐릭터 ‘피닉’
영화와 TV 프로그램 대다수가 야생동물을 재미있고 친근하며 인간의 성격을 닮은 캐릭터로 묘사한다. 물론 그들을 사악한 괴물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때때로 야생동물을 애완용으로 인식하고 마구 사들이는 잘못된 유행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최근의 예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Zootropolis)’의 페넥 여우다. 고양이 만한 크기로 사하라 사막에서 서식하며 커다란 귀를 이용해 적정 체온을 유지한다. 이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페넥 여우 ‘피닉(Finnick)’은 중심 캐릭터인 빨간 여우 ‘닉 와일드(Nick Wilde)’의 보조 역할로 몇 장면밖에 안 나오지만 귀여운 생김새로 눈길을 끈다.

지난 3월 초 중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된 뒤 애완용 페넥 여우의 수요가 치솟았다고 알려졌다. 반려동물로는 적합하지 않은 데도 말이다. 페넥 여우는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관심필요종(least concern)으로 분류돼 아직 위험 범주에 들진 않았지만 수요 급증이 판도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 현재 북아프리카에서 페넥 여우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관광객 대상 판매나 전시를 목적으로 한 포획이다. 하지만 중국의 애완용 수요가 여기에 보태지면 야생 상태의 개체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돈다.이런 추측에는 일리가 있다. 의인화된 동물을 내세운 블록버스터 영화나 인기 TV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애완동물 키우기 붐이 일어난 적이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영화에서는 집에서 키우기 어려운 대형견이 애완용으로 둔갑했다. ‘베토벤’의 세인트 버나드종과 ‘터너와 후치’의 도그 드 보르도종, ‘해리 포터’ 시리즈의 네오폴리탄 마스티프종이 그렇다.

지난 3월 초 중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된 후 애완용 페넥 여우의 수요가 치솟았다고 알려졌다.
‘101 달마시안’에서는 달마시안이 귀엽고 장난을 좋아하는 애완견으로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이 종은 의지가 강하고 고강도 운동이 필요하며 파괴적인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개봉된 지 1년 후인 1997년 미국의 동물구호기관들은 보호소에 넘겨지는 달마시안의 숫자가 2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보고했다.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늑대와 노던 이누이트 견이 등장한 뒤 알래스카 맬러뮤트와 시베리아 허스키 등 늑대와 닮은 개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영국 최대의 반려견 보호단체 ‘독스 트러스트(Dogs Trust)’에 맡겨지는 늑대와 유사한 개의 숫자가 4년 동안 3배로 늘었다. 개 주인들이 크고 힘센 개를 기를 준비가 안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영화 ‘닌자터틀’ 시리즈가 나온 이후 바다거북과 육지거북의 매출이 급증했다. 미 육지거북구조대(ATR)에 따르면 그렇게 팔린 거북이 대다수가 죽임을 당하거나 변기에 흘려 보내지거나 버려진다.

2003년 영화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된 뒤 미국 각지의 애완동물 상점에는 흰동가리(clown fish)를 구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열대 암초 어류를 제대로 키우려면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말이다. 또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부엉이 헤드위그가 등장한 이후 애완용으로 팔려갔다가 보호소로 오는 부엉이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침팬지도 그릇된 묘사로 수십 년 동안 고통받아 왔다.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침팬지를 위협하는 주요인 중 하나가 애완용 불법 거래다. 야생 침팬지를 포획할 때 쓰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암컷 침팬지를 죽인 뒤 그 새끼를 잡는 것이다.

침팬지는 수많은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 인간을 닮은 귀여운 동물로 묘사되지만 반려동물로는 적합하지 않다. 야생 상태에서 5세 정도까지 습득하는 공격적인 행동이 인간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다. 애완용으로 키우던 침팬지 대다수가 실험실에 연구용으로 넘겨지며 운이 좋은 극소수만 전문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보호소로 보내진다.

영화와 TV 프로그램이 불러일으킨 애완동물 키우기 붐은 많은 동물들에게 슬프고도 놀라운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계는 동물을 묘사할 때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스크린에 허구의 캐릭터로 묘사된 동물의 실제 특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책임이 영화계에만 있지는 않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한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동물들이 종마다 특유의 관심사와 욕구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이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클레어 몰로이



[ 필자는 영국 에지힐대학의 영화·TV·디지털미디어학 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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