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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냐 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쌀이냐 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중국 지방마다 혼전 성관계, 혼외 정사, 동성애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주요 재배 작물에 따른 문화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어
중국에서 좀 더 서양화된 지방의 주민이라고 해서 성에 관해 진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근년 들어 중국에 ‘전국적인 성혁명’이 진행 중이며 ‘그 혁명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 각지 주민의 성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런 단정은 너무 앞서갔다.

우선 성적 행동에 관한 통계를 보자. 혼전 성경험이 있는 중국인은 1989년 전체 인구의 15%였다. 그러나 1994년 그 비율이 40%로 뛰더니 2012년엔 71%로 치솟았다. 또 2012년 조사에서 중국 유부녀의 4.5%와 유부남의 16.5%가 배우자 외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고 인정했다. 또 중국 인구의 3∼5%가 동성애자이며 미혼 남성의 약 11%와 기혼 남성의 5.8%가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적 행동과 성적 태도는 별개의 문제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중국 사회에 스며든 서양적 가치와 경제 발전이 중국인의 성적 태도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2010년 중국종합사회조사의 통계 수치를 분석한 결과는 그와 사뭇 다른 면을 보여준다. 중국 30개 성에서 1만1000여 명이 혼전 성관계와 혼외 정사, 동성 성관계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지 묻는 설문에 답한 자료였다.

그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의 성적 태도에선 각 지방에서 재배하는 주요 작물이 주요 변수로 나타났다. 벼냐 밀이냐의 차이다.

중국 전체로 볼 때 혼전 성관계와 혼외 정사, 동성애는 여전히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게다가 ‘전국적인 성혁명’은커녕 성적 태도 역시 지방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신장성의 경우 혼전 성관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주민은 7%, 동성애를 용납해야 한다는 주민은 2%로 나타났다. 그와 대조적으로 광둥성에선 혼전 성관계를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민이 54%, 동성애를 용인할 수 있다는 비율이 24%였다. 혼외 정사에 대한 태도에서도 지리적으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였다.

중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영양 개선으로 사춘기와 성적 성숙 연령이 낮아질수록 진보적인 성적 태도가 나타난다는 설도 있다. 이른바 ‘현대화 이론’이다.

그러나 나의 분석 결과는 일인당 국내총생산(GDP), 가계 소득, 도시화 수준이 중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린성 같은 지방의 주민이 구이저우·쓰촨성처럼 비교적 현대화가 덜 된 지방의 주민보다 성적 태도가 더 진보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중국의 성해방이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이뤄진다는 ‘서양화 이론’도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중국이 1978년 개방정책에 따라 개인주의와 자유라는 서양의 가치와 이상에 노출되면서 중국인의 성적 태도가 변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을 뿐이다. 나는 서양과의 무역·문화 교류 수준이 비교적 낮은 쓰촨성 같은 지방의 주민이 푸젠·장쑤성처럼 상대적으로 ‘서양화된’ 지방의 주민보다 혼외 정사와 동성애에 관해 좀 더 진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혼전 성관계에선 서양화된 지방의 주민이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른 연구자들은 1978년 중국의 경제개혁이 중국인의 성적 태도 변화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개방·개혁 정책에 따라 국유기업이 민영화되고 집단근로 체제가 해체되면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중대한 이념적 변화가 이뤄졌다.

동시에 집단 탈산업화로 서비스 부문이 부상했다. 거기엔 섹스 관련 서비스도 포함된다. 탈집단주의와 탈산업화가 더 많이 진척된 장쑤성과 상하이 같은 곳은 혼외 정사엔 좀 더 관대하지만 혼전 성관계나 동성애는 엄격히 배격한다.

중국의 면적은 약 960만㎢다. 그처럼 넓은 땅에선 현대화와 서양화 같은 사회적 추세의 영향이 각각 달라 지방마다 성적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고 가정하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중국의 각 성 사이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차이에 주목했다.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각 지방의 주민이 먹고 재배하는 주된 식량이다. 다시 말해 쌀과 밀의 차이다. 수세기 동안 중국의 일부 지방에선 벼농사가 지배적이었고 그 외 지방에선 밀농사가 주를 이뤘다. 벼농사를 짓는 사람과 밀농사를 짓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가설이 있다. 잘 알려진 ‘벼농사 이론(rice theory)’이다. 물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아시아인과 밀을 주식으로 하는 나머지 사람들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중국 안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나는 구이저우·푸젠·쓰촨성처럼 벼농사가 주를 이뤄 농토의 대부분이 논인 지방의 주민이 지린·산시성 등 밀농사가 위주인 지방의 주민에 비해 혼전 성관계와 혼외 정사, 동성애에 훨씬 더 포용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벼농사와 밀농사의 큰 차이점은 각 작물의 재배에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벼를 재배하는 논엔 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밀밭은 그렇지 않다. 현대식 기계가 개발되기 전 수세기 동안 벼농사를 짓는 농민은 논에 물을 충분히 끌어대기 위해 대규모 관개시설이 필요하고 이웃과 긴밀하게 협력해 물을 나눠 써야 했다. 반면 물이 많이 필요 없는 밀농사는 이웃과 협력할 필요 없이 혼자서 짓는 경향이 있었다. 또 벼농사는 잡초를 뽑는 작업 등 밀농사에 비해 두 배 이상 손이 많이 간다. 그 결과 벼농사권에서는 상부상조하는 관습이 이어져왔고 ‘나보다는 우리’를 앞에 뒀다.

다시 말해 벼농사를 주로 하는 지방의 주민은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상호 협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협력의 필요성으로 인해 주민 사이의 상호의존과 상호이해·관용이 장려됐다. 따라서 그런 지방에선 사회적 소외가 적고 관계지향적이고 통합적 사고가 이뤄진다. 반면 밀농사가 지배적인 지방에선 생계를 위해 서로 기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상호의존과 이해가 덜 소중하게 여겨져 개인주의이고 분석적 사고를 하게 된다.

나의 분석에 따르면 벼농사가 지배적인 지방에선 상호의존의 필요성에 따라 비관습적 성적 행동에 대한 관용성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성적 태도의 자유화로 나타났다.

물론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와 서양의 영향이 ‘성혁명’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벼농사와 밀농사의 차이가 오래 지속되면서 그에 따른 각각의 사고방식이 중국 각 지방 주민의 성적 태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 성적 관행에 대한 관용의 수준이 중국의 지방마다 다른 이유를 정확히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각 지방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교육만이 아니라 개인이 용납할 수 있다고 느끼는 행동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양 후



[ 필자는 영국 에섹스대학 사회학과의 선임 연구원이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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