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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실리콘밸리로 돌아오라

여성들이여 실리콘밸리로 돌아오라

페이팔·인텔·IBM 등의 IT 대기업이 ‘경단녀’ 복직 지원 프로그램 실시해IT 업계에서 근무하던 킴 폴레티는 2005년 10개월 된 딸의 양육에 전념하기 위해 휴직했다. 당시 그녀는 IBM의 기술팀장으로 승승장구하는 프로젝트 관리자였다. 그러나 10년 뒤 복직을 시도했을 때 만나보자고 연락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댄 슐먼 CEO가 이끄는 페이팔은 ‘재충전’ 프로그램을 통해 IT 업계로 복귀하는 통로를 열어준다.
IT 기업의 복직 지원프로그램은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을 수용할 수 있는 근무시간 등의 융통성을 발휘한다.
폴레티는 “대부분 이력서에 10년 공백이 있는 사람에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돌이켰다. “실무 능력이 아직 있고 전업주부 경험이 업무 숙련도를 더 높였을 것이라고 채용 담당자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미국에서 전업주부 역할은 실상 그렇게 높이 평가되지 않는 느낌이다.”

대다수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중단한 여성은 복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채용 담당자가 경력 단절을 결함으로 간주해 당초 직장을 떠난 이유를 캐묻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IT 직종 중 여성 비율이 18%, IT 업계 전체 일자리 중 33%에 불과한 주된 이유다. 구직자의 지원기업 분석과 기업의 인재 물색을 돕는 신생 벤처 500마일스가 제공한 기업 보고서 분석 결과다.

실리콘밸리가 여성 종사자 비율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동안 페이팔·인텔·IBM 등 몇몇 IT 대기업이 이른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복직 지원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외면당한 이들을 활용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을 수용할 수 있는 탄력적이고 합리적인 근무시간 등 융통성을 발휘해 고용계약을 성사시킨다. 아마존 등 일부 IT 기업에 보편화된 가혹한 업무일정과는 다르다.

‘복직(returnship)’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은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IT 업계에 복귀하는 인적자원의 활용 교육도 실시한다. 관리자들은 공백기간이 있는 이력서에 더 관심을 기울이도록 교육받는다. 복직자에게는 직속 상사 외에도 회사 전반에 걸쳐 여러 명의 멘토가 배정돼 조언받을 수 있다.

복직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은 수습사원을 대상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취업 인터뷰를 하고, 자신을 홍보하는 법 등 광범위한 주제로 교육시켜 경력 개발을 지원한다. 아울러 이들 프로그램은 회사 안팎으로 다수의 네트워킹 기회를 여성에게 제공해 IT 업계 전반에 걸쳐 인맥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은 업무능력을 갖춘 유능한 여성이지만 단지 개인 사정으로 현업을 떠났을 뿐”이라고 애니타 보그 여성·기술 연구소 사무국장인 클라우디아 갤반은 말했다. “이 여성들은 복직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복귀한다 해도 자신의 경력이나 기존에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낮은 지위는 물론 연봉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도 복직 기회를 잡았을 경우다.”

예컨대 결제처리 업체 페이팔은 2월 중 ‘재충전(Recharge)’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8명의 여성을 20주 동안 유급 인턴사원으로 채용해 그들에게 IT 업계로 복귀하는 통로를 열어준다. 페이팔은 수습기간이 끝나면 그들을 채용할 생각이지만 다른 방안을 모색할 재량권도 줄 작정이다.“그 시범 프로그램이 성공적일 경우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페이팔의 선임 과학기술자인 M J 오스틴은 말했다. 그녀는 2001년 자녀 양육을 위해 휴직한 뒤 복직의 어려움을 겪었다. 3년 뒤 그녀의 능력을 보증해준 멘토 덕분에 이베이와 페이팔을 통해 현업에 복귀할 수 있었다. “‘뒤를 봐주겠다’고 말하는 후원자가 있으면 정말로 빛을 발할 기회가 생긴다.”

오스틴 과학기술자는 페이팔에서 자신의 경험이 재충전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여성들에게도 재현되기를 희망한다. 페이팔은 지난해 7월 이베이에서 떨어져 나온 뒤로 다양성 통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해 4월 이베이는 여성 직원 비율이 43%라고 밝혔다. 페이팔에는 또한 여성 고객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 여성 직원 비중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오스틴 과학기술자는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우수한 제품을 만들려면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킴 폴레티도 이 같은 프로그램의 혜택을 봤다. 두 아이 엄마인 그녀는 8개월 동안의 구직활동 끝에 리턴 패스(Return Path)의 콘텐트 마케팅 코디네이터 수습사원으로 채용됐다. 생산성 소프트웨어 업체인 리턴 패스는 지난해 자체 인력조달 목적으로 복직 프로그램(Return to Work Program)을 도입했다. 그 복직 프로그램은 경력상 1~23년의 공백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탄력적인 근무 일정을 제공한다. 일례로 폴레티는 일주일에 25시간 근무한다.

프로그램은 최근 시작됐지만 리턴 패스는 그것을 별도의 비영리 단체로 독립시켜 다른 IT 기업에서도 실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리턴 패스는 고객으로부터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유지비만 받는다.“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이 더 많이 늘어 한동안 현업을 떠났던 사람들의 채용에 여느 다른 직원 고용 이상의 위험은 수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리턴 패스 ‘복직 프로그램’의 태미 포먼 사무국장은 말했다.

이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금융계에서 먼저 테스트를 거쳤다. 금융계도 유능한 여성 인력이 입사 몇 년 뒤 회사를 떠나는 이른바 ‘파이프가 새는 문제(leaky pipeline problem)’를 안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선 이 같은 프로그램들이 엇갈린 결과를 나타냈다. 5개 금융 서비스 회사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풀타임으로 채용되는 복직자 비율은 한 무리의 참가자 중 50%에서 많게는 90%에 달했다. 여성기술자협회의 자료다.

완벽한 성과와는 거리가 멀지만 실리콘밸리도 그 영향을 받아 나름의 복직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리턴 패스와 페이팔 외에 ‘여성기술자협회도 인텔과 IBM 등 7개 업체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 기업은 올해 복직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약속했다.

IBM의 린지 레이 매킨타이어 다양성 담당 부장은 “우리가 업계에서 기술과 혁신의 선두를 지키는 데 IT 분야 여성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우리는 적극적인 인재 확보 노력을 꾸준히 한다”고 밝혔다.

IT 업계로선 고객과 이용자 기반의 성별 구성을 반영해 여직원 비율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성기술자 협회’의 캐런 호팅 대표는 말했다. 예컨대 소셜미디어 업체에선 남자 직원이 주를 이룬다. 페이스북의 남자 직원 비율은 68%, 핀터레스트(이미지 기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선 58%다. 하지만 이용자를 살펴보면 엄마들이 아빠들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다.페이스북의 경우 활동적인 온라인 대디가 66%인 반면 온라인 맘은 81%에 달한다. 이 같은 패턴은 핀터레스트에도 이어진다. 엄마들 중 40%가 활동적인 이용자인 반면 아빠의 경우엔 15%다. 이 같은 추세는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엄마들 중 30%가 활동적인 반면 아빠의 경우엔 19%에 지나지 않는다. “서비스 종사자 구성에 이용자 실태가 반영되면 더 혁신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호팅 대표는 말했다.

이 같은 복직 프로그램은 IT 업계로 여성들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취지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전문가가 많다.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IT 업계 전반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육아를 위해 IT 업계를 떠나는 여성이 많지만 차별을 느껴 떠나는 비율도 높다. 이는 경력발전 기회의 부재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까지 다양하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IT 업계에 10년 이상 종사한 여성 중 60%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했다. IT 업계 여성 중 56%가 회사를 떠나는 이유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조사에 따르면 IT 업계 남성 종사자의 2배에 달하는 자연감소율이다.

“IT 업체들이 이런 여성을 잡아두려면 우호적 환경, 탄력적 근무 시간, 남녀 모두 충분한 육아휴직, 사내 탁아시설, 후원자와 멘토 등 다양성 지원에 필요한 인프라의 제공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여성이 IT 업계에 남기 위해 택해야 하는 전략에 관한 논문 저술 목적으로 처음 휴직하는 갤반 사무국장의 말이다.

양성 문제에 초점을 맞춘 다양성 프로그램은 종종 유색인종 여성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업이 여성 복직 프로그램을 실시할 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다양성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다양성 전략 업체 패러다임의 알레아 워렌 컨설턴트는 “기업들이 이 같은 노력을 함께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기업이 ‘여성’의 비중 확대를 위해 택하는 전략이 소수인종 여성에게는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여성 전반의 비중을 높일 때 기존의 다양한 여성 그룹을 고려하고 이들 그룹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다양한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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