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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건강한 삶의 염원 담은 ‘약수저’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건강한 삶의 염원 담은 ‘약수저’

은으로 만든 독약 검사 수저.
예전에는 백일이나 돌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선물로 ‘무얼 가져가지?’ 하는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아기 금반지 한 돈이나 어린이용 은수저 한 벌이면 되었으니까요. 그러던 풍습이 요즈음에는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금값이 크게 오르면서 플라스틱 수저나 포크를 쓰는 빈도가 많아진 것도 이유겠지요. 은수저를 선물했던 마음에는 평생을 먹는 걱정 없이 살라는, 그리고 은이 독을 감별해내듯이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하고 건강히 지내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은(銀)은 열전도율이 가장 높은 금속이어서 뜨거운 음식을 쉽게 감지할 수 있고 독극물이나 유해 물질에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은수저로 밥을 먹는다는 것에는 이러한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크면 좀 더 큰 은수저로 바꾸어주고, 요즈음에도 혼수로 부부의 은수저를 준비해 가는 것이 풍습으로 남아있는 겁니다.
 독성 약재 감별하는 데도 사용
은수저는 독성 감별에 일차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항생제가 없었던 시절에 피부병에 바르는 한약 중에는 석웅황(石雄黃)이나 비상(砒霜) 같은 독한 성분의 약이 있었습니다. 이들 약을 가루로 내어서 극소량을 복용하면 성병도 치료되는 효능이 있습니다. 이들 약은 냄새나 맛이 없기 때문에 복수나 범죄의 목적으로 음식이나 탕약에 다량 섞어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모르고 먹게 되면 피를 토하면서 죽게 됩니다. 임금이 사약(賜藥)을 내릴 때에 더운 물에 타서 먹게 한 것이 바로 이러한 비상이나 석웅황입니다. 은수저에 이들 약이 조금이라도 묻으면 색이 뿌옇게 변하고 양의 정도에 따라 시꺼멓게 변하기 때문에 사약을 내릴 때에는 은수저로 치사량을 가늠했습니다. 춘원당한방박물관 소장의 은수저는 가운데 부분에 순도가 아주 높은 은을 넣어서 특별히 만든 것이기 때문에 독성 약재를 감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독(毒)도 잘만 쓰면 병을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일벌의 침에서 뽑아내는 봉독을 아주 묽게 희석해서 약침 요법에 사용하면 관절염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임상으로나 실험논문으로 입증됐습니다. 서양에서도 뱀의 독(蛇毒)에서 성분을 추출해서 아토피 피부염이나 버거씨병에 투여하는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독성 성분은 체내에 쌓이면 자연치유력을 감소시키고 피로 증세를 야기합니다. 이는 운동량 감소와 식욕 감퇴를 유발해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만성병이 생기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만성병의 치료는 몸 안의 독소가 빨리 배출되게 하는 겁니다. 이를 해독 또는 디톡스 요법이라고 합니다.

몸 안에 독소를 일으키는 원인은 많이 있습니다. 화학약품, 황사, 미세먼지, 안 좋은 음식, 스트레스 등이 몸 안에 독소를 쌓이게 해서 병을 일으킵니다. 이런 요인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한방에서는 어혈(瘀血)·수독(水毒)·담음(痰飮)·식적(食積)으로 구분합니다.

어혈은 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 할 때에 스트레스나 외상을 입어서 피부에 독성 성분이 생긴 것으로 멍, 피부발진, 통증으로 나타나고 당귀나 홍화 같은 약으로 제거합니다. 수독은 대소변의 배출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생기는 것인데, 몸이 붓고 냉기를 느끼며 예민해집니다. 몸이 쉽게 무겁고 팔다리를 움직이기가 싫어집니다. 율무나 차전자로 독을 뺄 수 있습니다. 담음은 깨끗하지 못한 체액이 정체되어 몸 안의 어느 부위에만 몰려 있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복부지방이 증가되고 몸이 무거워져서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생기게 됩니다. 조금만 많이 먹거나 물만 마셔도 금방 살이 찌거나 배가 나오게 됩니다. 반하나 복령으로 치료합니다. 식적은 과음·과식으로 인해 몸 안에 과다한 음식 찌꺼기가 축적된 것인데 이것이 배출이 안 되고 남아서 독성 물질이 됩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산사와 청피를 씁니다. 한의학에서는 해독 치료를 이러한 네 가지 원인과 개개인의 체질을 감안해서 하고 있습니다.

 중용의 미덕 담은 은수저
해독 치료는 한약과 침, 뜸으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스스로 하는 자가 치료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아래의 다섯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첫째로는 해독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간의 기능이 좋아지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가급적이면 화학 성분의 약을 적게 먹고 과음과 과로를 피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할 일입니다. 몸이 찬 소음인이거나 대장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해독주스나 생식을 장기간 먹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도리어 간 기능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독소의 유입을 막는 것입니다. 일단은 유해 음식을 되도록 먹지 않아야 합니다. 트랜스지방이 많이 함유돼 있는 인스턴트 음식, 기름기가 많은 육류, 합성보존제가 함유돼 있는 가공음식이나 식품첨가물, 유전자변형식품은 피해야 합니다.

셋째로 기왕에 들어온 독을 빨리 배출해야 합니다. 모든 독소는 대변이나 소변, 호흡, 땀으로 빠져나가는데 이를 위해서는 신장·대장·폐가 튼튼해야 합니다. 뜸, 족욕, 호흡법이나 명상 등이 도움이 됩니다. 땀의 배출은 운동으로 해야 합니다. 사우나 등으로 강제 발한시키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넷째로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좋습니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매일 적당히 땀을 흘리는 것이 생리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면역력을 키워서 독소의 유입을 막는 지름길입니다.

다섯째로는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화가 쌓이면 심장의 열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기운이 허해지고 독소가 쌓이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낙천적으로 사는 것이 해독의 근본 치료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화제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던 이들 사이에서 중용의 미덕을 담고 있는 ‘은수저’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길일 듯싶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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