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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펴는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

날개 펴는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

우크라이나 개입과 시리아 공습 등 하드 파워 과시하지만 문화적 영향력 막강해 올해 처음 27위에 올라…한국은 22위
러시아의 어마어마한 문화 유산은 자타가 공인한다. 사진은 러시아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중국 공연.
최근 들어 러시아와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급부상하는 가운데 터키의 소프트 파워는 시들해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홍보·컨설팅 전문업체 포틀랜드의 연례 조사 결과다.

소프트 파워란 한 나라의 평판에 따른 국제적 지위를 가리킨다.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같은 물리적이고 강압적인 수단(하드 파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보과학이나 문화·예술·스포츠·무역 등으로 행사하는 영향력이다. 하드 파워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이라면 소프트 파워는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예를 들어 외교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 같은 전통적인 도구 대신 긍정적인 매력과 설득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드 파워보다 소프트 파워를 중심으로 한 ‘연성국가 시대’를 강조하는 의미로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조셉 나이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의 원천으로 정치적 가치·문화·외교정책이라는 3가지 요소를 꼽았다).

포틀랜드는 매년 세계 주요 50개국을 대상으로 정부·교육·문화·기업활동·외교·디지털 등 6개 부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해당 국가의 요리·특산품·미술이 다른 나라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소프트 파워 순위를 매기고 이 중 상위 30개국만 발표한다.

이번에 발표된 ‘2016 소프트 파워 강국 톱30’을 보면 최상위 5개국은 미국·영국·독일·캐나다·프랑스 순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대로다. 하지만 톱30 중 하위권에서 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톱50에도 턱걸이를 했고 한 해 내내 하드 파워를 휘둘렀지만 올해 27위로 뛰어올랐다. 또 중국은 30위에서 28위로 진전했다.

‘2016 소프트 파워 강국 톱30’ 보고서 작성자들은 “서방의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가 톱30권에 진입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년 들어 러시아는 소프트 파워보다는 보란 듯이 하드 파워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 속하던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했으며,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반군에 공습을 가했다. “그러나 그런 보복주의적인 외교정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문화적 소프트 파워가 막강하다. 아무튼 러시아는 에르미타주 미술관, 볼쇼이 발레,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말레비치, 차이코프스키, 불가코프의 고향이 아닌가?”‘2016 소프트 파워 강국 톱30’ 보고서는 또 러시아를 보는 서방의 시각이 세계 전체의 견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위기는 서방 외 세계의 다른 지역에선 그처럼 중요한 이슈가 아니며, 서방이 문제 삼는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도 “세계인의 러시아 인식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권 국가의 미디어와 무역에 큰 영향을 준다. 과거 소련에 의존했던 그 작은 나라들에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미디어와 러시아 상품이 고급품 시장을 지배한다. 더구나 소련과 러시아 제국의 역사는 끊임없이 영화와 TV에서 다뤄진다. 역사 스릴러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차일드 44’와 톨스토이 작품을 BBC가 드라마 시리즈로 만든 ‘전쟁과 평화’가 대표적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슬라브·동유럽 문제를 연구하는 얀 쿠비크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의 문화유산은 세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어떤 항목에서 높이 평가되고 어떤 항목에서 떨어지는지 알아보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쿠빅 교수는 “러시아는 ‘외교’ 항목에서만 톱10 국가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 부문에서 그처럼 점수가 잘 나온 것은 두 가지 요인 덕분이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미디어 파워(러시아 정부의 매우 효과적인 선전도구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와 최근의 외교적인 모험(특히 공습에 의한 시리아 내전 개입)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기업활동’ ‘정부’ ‘여론조사 결과’ 항목에선 훨씬 뒤진다(각각 27위, 30위, 30위).

쿠빅 교수는 “러시아가 중요하고 힘이 강한 나라로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부각되는 것은 문학이나 음악, 연극, 영화 같은 출중한 문화 등 긍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독재, 호전적인 ‘최고 지도자’ 같은 부정적인 면 때문이기도 하다. 포틀랜드는 ‘문화’ 항목에서 러시아를 14위로 매겼는데 나 같으면 그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주겠다. 하지만 정부 시스템은 분명히 30위에도 못 든다고 본다.”

한편 터키의 소프트 파워는 톱30 밖으로 밀려났다(32위). 포틀랜드에 따르면 러시아와의 갈등, 언론 탄압, 그리고 ‘난민 위기를 이용해 유럽에서 자국민의 비자 면제 특혜를 받는다는 의혹’ 등이 터키의 평판에 흠집을 냈다.

이스라엘도 지난해 26위에서 올해 30위 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편 헝가리는 올해 처음 톱30에 진출했다(2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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