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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작은 영웅들

제2차 세계대전의 작은 영웅들

첩보 소설가 앨런 퍼스트의 신저 ‘프랑스의 영웅’, 독일군에 대항하는 프랑스 중상층 사람들 그려
앨런 퍼스트의 신저 ‘프랑스의 영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과 스파이들에 관한 그의 14번째 소설이다
첩보 소설가 앨런 퍼스트(75)는 미슐랭 스타 요리사나 클래식 음악 작곡가처럼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변주곡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하다. 그의 주제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도덕적인 질문이다. 퍼스트의 새 소설 ‘프랑스의 영웅(A Hero of France)’에서 주인공 마티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독일 침략군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나치의 압제 아래 수동적으로 살기보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은 당시 독일군에 대항하기로 결심한 프랑스 중상층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퍼스트가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택에서 말했다. “그들은 잠자코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상이 잘못돼 가는 걸 보면 뭔가 해야 되겠다고 느끼는 도덕적 충동을 지닌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영웅’은 전시의 유럽과 스파이들에 관한 퍼스트의 14번째 소설이다. 일부 조연 캐릭터들은 여러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모든 작품이 퍼스트의 주요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 소설들은 모두 반파시즘 서적”이라고 퍼스트는 말했다. “독재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압제 하에 사는 걸 싫어하며 반격을 시도한다.”

퍼스트는 1941년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기엔 너무 젊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이 많이 사는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자랐다. 그들은 선과 악의 투쟁에 관한 집단적 기억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대항할 것인가’ 혹은 ‘협조할 것인가’ 사이의 선택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투쟁이다.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맞설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18개국어로 번역된 퍼스트의 책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이나 초기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은 유럽인에게 온갖 비극과 고통스런 도덕적 결정을 강요했지만 작가에겐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찾아내 전달할 기막힌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가두 시위를 벌였고 신문들은 노골적으로 정치색을 띠었다”고 퍼스트는 말했다. “당시 유럽은 여러 방면에서 불타올랐다. 매우 낭만적이고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소설의 배경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뿐 아니라 다양한 플롯을 제공한다. 난 역사만큼 좋은 글을 쓰진 못한다. 역사는 최고의 소설가다.”

퍼스트의 주인공들은 그 역사 속에서 투쟁하는 보통사람이다. 그들은 전문 스파이나 군인이 아니며 ‘프랑스의 영웅’의 주인공 마티외처럼 똑똑하고 용감하며 능력 있다(그들은 또 모두 남자다. 퍼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거의 다 조연이다). 그 주인공들은 어쩌다가 영웅이 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책에 첩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묘사된다. 따라서 그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독자도 그들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소설가가 되기 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퍼스트는 1984년 처음으로 소설의 세계를 발견했다.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의 의뢰로 여행기사를 쓸 때였다. 그는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크림 반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소련을 거쳐 흑해를 건넌 다음 루마니아의 다뉴브강 삼각주로 갔다. 그곳에서 강을 거슬러 발칸반도와 중앙 유럽을 여행했다.

그 여행에서 퍼스트는 소설 ‘밤의 군인들(Night Soldiers)’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1988년 출판된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1934년 불가리아의 강촌 비딘의 진창 길에서 크리스토프 스토이아네프는 자신의 형이 파시스트 민병대의 발길에 차여 죽는 걸 봤다.” 이 한 문장으로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그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우리는 두 번째 문장을 채 읽기도 전에 주인공 대신 원수를 갚고 싶어진다. 주인공이 자신의 바람을 표현하기도 전에.

이 첫 문장이 시사하듯이 퍼스트의 소설에는 당시의 폭력과 그에 따른 분노가 자주 묘사된다. 하지만 퍼스트의 애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는 걸 안다. “난 오락 소설가”라고 그는 말한다. “독자들을 차에 태워 그들이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 다음 거기서 돌아다니도록 놔둔다.”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퍼스트의 스타일은 에릭 앰블러 같은 훌륭한 첩보 소설가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앰블러는 현대 첩보 소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앰블러의 주인공들도 퍼스트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이 전쟁에 빠져들면서 위험과 음모의 세계로 이끌린다.

퍼스트는 ‘밤의 군인들’의 첫 단락을 비행기 여행 도중 앰블러의 소설 ‘디미트리오스의 관’(1939)의 표지 안쪽에 손으로 썼다. “앰블러는 내게 신 같은 존재”라고 퍼스트는 말했다. “그는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간파해 글로 옮겼다. 그의 책은 너무도 흥미진진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마치 내가 등장인물들과 함께 그곳에 있는 듯이 말이다.”

퍼스트는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Goodreads.com과 Amazon.com의 안티팬들은 그의 책들이 똑같은 이야기와 주제를 반복한다고 불만을 표한다. 터프하면서도 예민하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40대의 한 지식인 남성이 서서히 행동파로 바뀌는 이야기다. 퍼스트는 서슴없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 “맞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다 비슷하다. 난 40세라는 나이를 좋아한다. 세련미와 교양을 갖추게 되는 동시에 여전히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나이다.”

이제 75세가 된 퍼스트가 자신에게 그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를 준 시대와 장소에서 갑자기 벗어나기는 힘들 듯하다. 그는 세상과 끊임없이 연결되고 뉴스가 24시간 보도되는 현대 세계와는 거리를 둔다. 퍼스트는 목조 주택의 창고를 개조한 작은 작업실에서 전기 타자기로 글을 쓴다. “난 구식 작가”라고 그는 말했다. “1940년대식의 서사산문으로 1940년대에 관한 책을 쓴다.”

퍼스트의 소설은 대체로 유럽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는 조사 단계에서도 자신의 작업실을 떠나는 경우가 드물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에 직접 찾아가기보다는 책을 바탕으로 조사 작업을 한다. 특히 1952년판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그에게 매우 소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 백과사전은 1940년대와 가까운 시기에 제작됐을 뿐 아니라 집필자들의 감성이 반영됐다”고 그는 말했다.요즘 작가들은 작품의 배경으로 정한 장소에 직접 가지 않을 경우 구글 어스를 통한 간접 체험에 의존한다. 하지만 퍼스트는 그런 방식을 피한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거리와 건물들은 그가 묘사하고자 하는 예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파리... 이들 도시의 현재 모습은 과거와는 딴판”이라고 그는 말했다. “난 요즘의 파리가 아니라 1930년대의 파리에 더 관심이 있다. 내 소설 중 하나는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했지만 난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그 책은 2003년 출판된 ‘승리의 피(Blood of Victory)’다. “상상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퍼스트는 말했다. “1936년 이스탄불에 관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온갖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럴 때는 나 자신에서 벗어나 시간여행자가 된 느낌이다.”

프랑스의 영웅 / 앨런 퍼스트 지음 / 랜덤하우스 펴냄
난 (마음 속에서) 과거의 특정 시기와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한번 떠나면 두어 시간씩 그곳에 머문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는 그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갑자기 ‘내가 누구지?’ ‘난 어디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퍼스트의 책을 읽는 독자도 그의 시간여행에 동행한다.

- 애덤 르보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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