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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미국 피노누아를 만나다

한식, 미국 피노누아를 만나다

여의도 ‘운산’은 한정식집 ‘용수산’ 창업주의 큰 딸로 태어난 김윤영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 레스토랑이다. 김 셰프는 평소 한식에 미국 피노누아를 즐겨 마신다. 풍미가 섬세한 한식과 맛과 향의 레이어가 복합적인 피노누아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고 했다.
네 가지 피노누아와 세 가지 한식 요리의 마리아주
수많은 포도품종 중에 극도로 예민한 축에 속하는 게 바로 피노누아(Pinot Noir)다. 껍질이 얇아서 조금만 압력이 가해져도 터져버리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라 날씨가 더워지면 본래의 맛을 잃어버린다. 피노누아는 본고장 프랑스 부르고뉴 말고도 독일, 칠레 등 세계 각국의 포도 산지에서 만든다. 산지마다 맛도 다르고 향도 다르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는 섬세하고 산도가 높은 편이다. 좋은 밭에서 만든 피노누아는 수십 년 숙성도 가능한 ‘괴물급’으로 성장한다. 독일 피노누아는 산도가 높고 과일 풍미가 강해서 개성 있는 맛이 난다. 칠레 피노누아는 서늘한 남쪽 포도밭에서 재배해도 맛이 좀 더 진하고 감미가 있다. 미국 피노누아는 입안에서 묵직하고 잘 익은 과일 향과 부드러운 듯 강렬한 타닌의 조화가 좋다. 좀 더 더운 나파밸리와 서늘한 소노마카운티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입안에서 ‘그저’ 맛있게 느껴지는 게 미국 피노누아의 특징이다.

한식과 와인 매칭을 위해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네 가지 타입의 미국 피노누아를 골랐다. 가볍고 향긋한 ‘카멜 로드 몬테레이 피노누아’, 자두와 체리 같은 붉은 과일 아로마가 압도적인 ‘하트포드 코트 러시안 리버밸리 피노누아’,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라 크레마 소노마 코스트 피노누아’, 묵직하고 남성적인 ‘잭슨에스 테이트 아웃랜드릿지 피노누아’까지 네 병의 선수를 준비했다. 김윤영 셰프는 피노누아가 가진 감미가 느껴지면서도 강건한 구조감에 잘 어울릴만한 세 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담백한 전복마늘볶음, 식감이 쫄깃하고 부드러운 소고기ㆍ버섯ㆍ떡 산적, 갖은 재료가 들어가 맛이 복합적인 궁중 갈비찜까지 세 가지 요리를 네 가지 와인에 자유자재로 매칭하는 마리아주가 시작됐다.
 카멜 로드 몬테레이 피노누아 2013
김윤영 셰프는 평소 한식에 미국 피노누아를 즐겨 마신다. 풍미가 섬세한 한식과 맛과 향의 레이어가 복합적인 피노누아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고 했다.
꽃 향기가 은은하고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산도가 혀를 치고 올라 오는 카멜 로드 몬테레이 피노누아는 SNS에서 더 유명한 술이다. 지난해 열린 소믈리에 베스트 초이스 대회에서 심사위원 최다 득표 와인으로 선정됐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개인 SNS 계정에 ‘가성비 최고의 와인’이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아로마가 화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맛에선 깔끔하고 우아한 산도가 느껴져 간이 세지 않은 한식과 잘 어울린다. 붉은 살 참치나 로브스터 살에 별다른 양념 없이 먹어도 잘 어울린다.

이날 김윤영 셰프가 준비한 음식 중에선 전복마늘볶음과 좋은 궁합을 이뤘다. 은은한 단 맛이 나는 간장 소스과 쫄깃한 전복 식감, 살짝 바삭하게 느껴지는 마늘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여러 가지 맛을 냈다. 양념이 강하지 않아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맛에 카멜 로드 몬테레이 피노누아가 더해지면서 입안에 산뜻한 끝 맛을 남겼다.

 하트포드 코트 러시안 리버밸리 피노누아 2013
블랙 베리, 블랙 체리, 잘 익은 자두까지 화려한 과실 풍미가 압도적인 와인이다. 이 와인은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서늘한 소노마 지역의 러시안 리버밸리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다. 과일 향만 느껴지면 지나치게 달아서 흑당이나 말린 과일 향이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서늘한 지역에서 만든 덕에 부드러운 타닌과 식욕을 자극할 정도로 날카롭고 강렬한 산도가 그 맛을 보완해준다.

이 와인은 “별다른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도 맛있다”는 평이 많았다. 담백한 소고기 산적이나 전복마늘볶음은 와인의 화려한 풍미 때문에 어딘가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오래 조려 고깃살이 부드럽고 소스 자체에 은은한 단 맛이 밴 궁중 갈비찜과는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와인 자체에서 풍기는 허브와 향신료 향이 개성 있게 느껴져 아주 살짝 부딪히는 느낌이 있었다.

이 경우 전문가들은 “맛이 강하지 않은 경성 치즈 한 두 조각만으로도 이 와인 맛을 음미하기에 충분하다”고 평한다. 굳이 음식과 매치했을 때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는다면 그 궁합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라 크레마 소노마 코스트 피노누아
미국 레스토랑에서 가장 잘 팔리는 피노누아다. 국내에도 수입돼 매니아가 많은 술이다. 잘 익은 붉은 과일 말고도 석류, 크랜베리 같은 상큼한 과실 향, 볶은 커피 원두부터 담뱃잎의 스모키한 향까지 여러 아로마가 복합적으로 피어 오른다. ‘천의 가면’을 쓴 듯한 개성이 있지만 타닌이 부드럽고 산도가 적당해 어떤 음식과 곁들여도 맛있는 와인이다. 오크통에서 7개월 넘게 숙성해 은은한 바닐라 향과 타닌이 느껴진다.

이 와인엔 재료 자체의 맛에 충실한 소고기 산적이 잘 어울렸다. 소고기와 버섯, 떡을 같은 크기로 잘라 꼬치에 꿴 형태로 재료 본연의 색이 그대로 드러나 딱 보기에도 깔끔하고 담백해 보이는 요리다. 살짝 짭쪼롬한 소금 맛이 얇게 코팅된 소스와 함께 어우러지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미네랄이 느껴지는 단단한 구조감의 라 크레마 소노마 코스트 피노누아와는 아주 잘 어울렸다.

 잭슨에스테이트 아웃랜드릿지 피노누아 2012
이날 등장한 와인 중에 가장 파워풀한 스타일이다. 캘리포니아주 멘도치노의 앤더슨 밸리에서 자란 포도로 만드는데 농축미와 화려한 아로마가 폭발적으로 피어오른다. 딸기 잼, 훈연 향, 블루베리나 라즈베리 케이크 같은 진득하고 달콤한 향은 순차적으로 올라온다. 타닌이 꽤 강한 편이지만 혀 양쪽을 툭 치고 올라오는 산도도 강렬해 오래 두고 숙성한 뒤 마셔도 좋을 와인이다.

이 와인이야말로 어울리는 음식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갈비찜과 좋은 궁합을 이뤘다. 소스의 달짝지근하고 짭짜름한 맛이 와인의 폭발적인 과실미와 타닌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맛있고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가니시(맛을 돋우기 위해 함께 나오는 장식용 재료)와 함께 나온 식감이 부드러운 버섯,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익힌 은행알과도 고루 잘 어울렸다. 고기를 씹을 때 빠져나오는 육즙 고유의 향도 와인이 깔끔하게 잡아줬다.

- 글·사진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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