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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만성질환엔 원위취혈법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만성질환엔 원위취혈법

1888년, 윤기찬 선생은 ‘춘원당’의 침과 뜸 이론을 담은 <침구요람 (鍼灸要覽)]을 저술했다.
1842년(헌종8년), 평양 외곽의 어느 병영(兵營). 용양위 부호군(龍驤衛 副護軍)이 된 윤상신(尹尙信, 1792~1879)은 이제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의 나이 55세. 1817년에 무과에 급제해 벼슬길을 시작하고 한양과의 연락과 평안도 지역에서의 군사 동원을 관장하다가 종 4품까지 다다랐으니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셈입니다. 그런 그가 평양에서의 벼슬을 마다하고 왜 낙향하려 할까요?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윤상신 선생은 젊어서부터 약초와 병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벼슬을 살았던 평양은 관서지방의 중심지여서 온갖 약재와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면 몸이 아픈 이야기, 몸에 좋은 약재 이야기가 많아서 그에게는 이런저런 처방과 침술에 관한 지식이 차곡차곡 쌓였을 겁니다. 더구나 명의로 소문난 의원들이 평양에 들리게 되면 반드시 청해서 경험담도 듣고 의학지식과 비방도 얻곤 했습니다. 군(軍) 내에서 부상자나 응급환자들을 치료한 경험도 많이 생겼을 터이고요.
 무인의 길에서 유의의 길로
그러다 보니 명의로 소문이 나게 되고, 병을 봐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어 풍파가 많은 벼슬길보다는 낙향해서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고 의생(醫生)을 교육하는 유의(儒醫)의 길을 택한 겁니다.

윤상신 선생의 고향은 평안북도 박천(博川)입니다. 박천에는 해발 300여m인 청룡산 말고는 고지대가 드물고 너른 벌과 청천강이 흘러서 먹거리와 약초가 흔한 고을입니다. 이곳에서 의학책을 정리하고 아들과 함께 사람들의 병을 돌봐주던 윤상신 선생은 귀향 5년 만에 청룡산 자락에 있는 박골마을에 제대로 된 의원(醫院)을 엽니다. 헌종 13년, 1847년의 일입니다. 봄(春)의 뜰(園)처럼 만물을 소행시키는 집(堂)이라는 뜻을 가진 ‘춘원당(春園堂)’이라는 이름을 내건 의원이 평안북도 박천군 청룡면 위령리에 새로 생겨났습니다.

윤상신 선생은 고종16년(1879년) 별세할 때까지 32년 동안 고향에서 의술을 펼쳤습니다. ‘춘원당’은 박천 인근의 고을까지 명망 있는 의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윤상신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인 윤빙열(尹聘烈, 1812~1888) 선생이 의업을 이어 받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제식 교육과 함께 환자를 보면서 많은 임상경험을 쌓았기에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윤상신 선생이 낙향한 다음해인 1848년에 3대인 윤기찬(尹基燦, 1848~1912) 선생이, 1862년에는 4대인 윤단덕( 尹担德, 1862~1915)선생이 태어납니다. 1880년대 중반 ‘춘원당’에서는 2~4대가 함께 환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춘원당’의 의업은 3대를 넘어 확실한 가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1대인 윤상신 선생이 낙향해서 창업한지도 40년 가까이 된 참입니다.

윤기찬 선생은 이제야말로 ‘춘원당’ 의술의 학문적인 기틀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창업 당대에는 의업을 가업으로 삼아서 자식에게 전수시켜야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2대 때만 해도 아버지가 하는 일을 옆에서 돕고 따라 하다 보니 자연히 의술을 익히게 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도 환자가 계속 오게 되니 업으로 삼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3대째가 되니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약 처방이며 침 치료법에 많은 경험이 쌓이니 자기 집안만의 비방이 생기고 그것을 기록해 놓아야 하는 일을 누군가가 맡아야 했습니다. 한의(韓醫)라는 것이 구전으로만 이어져 내려가기에는 너무 방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2대 윤빙열 선생이 세상을 떠난 3년 후인 1888년, 윤기찬 선생은 ‘춘원당’의 침과 뜸 이론을 담은 [침구요람(鍼灸要覽)]을 저술합니다. ‘춘원당’에서 그간 시술해온 ‘유주침법(流注鍼法)과 그간의 경험 방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팔꿈치 아래와 무릎 아래에 있는 66개의 경혈(經穴)이 인체 내 기혈 흐름의 정해진 시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고 보고 이를 운용해서 치료하는 침법인데, 지금도 이 침법이 쓰이고 있습니다.

유주침법은 효과는 있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그리 많이 쓰이는 침법은 아닙니다. 급성질환에 잘 듣고 기초적인 침법은 아시혈(阿是穴)취혈법인데 아픈 부위와 가까운 혈자리에 침을 놓는 것입니다. 통증이 있거나 거북하면 본능적으로 그 부위를 두드리고 문지르는 것처럼 아픈 부위에 위치한 경혈을 침이나 뜸으로 자극해 주면 증세가 어느 정도 좋아집니다.

지압이나 추나도 이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만성병에는 원위취혈(遠位取穴)법을 많이 씁니다. 이는 왼쪽에 병이 있으면 오른쪽에 있는 경혈을 치료하고 팔에 병이 있으면 다리에 있는 경혈을 치료하는 등 아픈 부위와 먼 혈 자리에 자침하는 침법입니다. 침 치료를 받을 때에 아프지도 않은 엉뚱한 곳에 침을 맞은 적이 있으셨을 겁니다. 왼쪽 발목을 삐었는데 아픈 부위에는 침을 안 놓고 오른쪽 발목에 있는 경혈에 집중적으로 침과 뜸을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삐게 되면 인대가 손상되고 붓고 열이 나는데 여기에 침을 놓거나 피를 빼면 더 붓고 통증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쪽의 기(氣)를 병이 난 쪽으로 돌려서 치료하는 원위취혈법이 훨씬 효과가 좋을 수 있습니다. 왼쪽 무릎에 병이 있을 때 오른쪽 팔꿈치를 치료하는 대칭취혈(對稱取穴)법도 이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침·뜸 치료법 계속 진화
인체에 있는 경락은 마치 지하철의 노선과 같습니다. 인체에 12개의 경락이 있으니 노선이 12개가 있는 셈이죠. 각 경락에 있는 경혈은 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역의 한두 군데에 문제가 생겨서 전동차가 멎으면 모든 노선에 영향을 미치듯 경혈에 문제가 생기면 경락의 흐름에 장애가 되고 병이 납니다. 경혈을 눌렀을 때 통증이 있거나 색이 변하면 일단은 그쪽에 해당하는 경락에 병이 생겼다고 보기 때문에 침 치료 받을 때에는 가장 아픈 부위를 볼펜 등으로 미리 표시해서 한의사에게 보이는 편이 좋습니다.

양방에서와 달리 같은 피부병이라도 발생 부위와 증세에 따라 치료 경혈이 다릅니다. 통증도 위치와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과 침자리가 제각기 달라집니다. 1888년에 [침구요람]을 저술하며 유주침법을 주창한 윤기찬 선생 이후에도 침이나 뜸 치료법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의사가 선택하는 침 자리 하나하나에는 많은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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