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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3)] 퇴직 무렵 부채는 가급적 남기지 말라

[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3)] 퇴직 무렵 부채는 가급적 남기지 말라

빚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잘 쓰면 약이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좋은 약도 사람의 체질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12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딱 이런 경우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대출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누군가에겐 약이 되기도, 다른 이에게는 독이 되기도 했을 터다. 특히 인생 전반을 돌아선 50대 직장인의 과도한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30~40대 때는 자산 형성을 위해 쓴 빚이 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퇴직을 앞두게 되면 빚은 줄이고 자기자본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기나긴 노후에 비해 소득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50세만 넘기면 눈 깜짝할 사이 퇴직이 다가온다. 따라서 인생 중반을 돌아선 시점에선 철저한 부채 관리가 필요하다.
 ‘부채 다이어트’ 서둘러야
앞으로도 저성장·저금리 기조의 틀이 유지되겠지만 지난해 12월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로금리 탈출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그 충격파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은행에 빚이 있다면 최소 규모로 축소해 갑작스런 금리 인상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관리 대상은 주택담보대출이다. 한국에서는 재산 형성의 중심이 주택이다. 그 결과 주택 시장은 언제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 더 큰 집, 더 환경이 좋은 집으로 끊임없이 옮기려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수억원의 대출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은행과 보험사가 앞다퉈 빚을 권한다. 이들 금융회사는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값의 70%까지 대출해 주겠다고 앞다퉈 경쟁한다. 집값에 따라 경우가 다르겠지만 2억~3억원만 있으면 6억~7억원을 대출받아 10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 사는 건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다. 이런 ‘극단’은 드물다고 치자. 그래도 주택 구입을 위해 2억~3억원을 대출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 만큼 대출하면 자기자본 4억~5억원을 토대로 7억~8억원에 이르는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요즘처럼 금리가 낮으면 큰 문제가 없다. 매달 조금씩 값아 나가면 되고 30년 만기로 넉넉히 상환하면 이자 부담은 못 느낄 정도가 된다.

하지만 노후가 길어지면서 이런 방식의 대출은 안정적인 노후생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퇴직할 때 대출 잔금이 1억원 정도 남아 있다고 가정해보자. 퇴직 이후 근로소득이 없어 월급이 없는 상황에서 대출 잔금에 대해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값는다면 노후생활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연금을 받아도 그중 일부를 빚 값는 데 쓴다면 생활에는 주름이 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후가 긴 장수시대에는 각별한 부채 관리가 필요하다. 현업에 있을 때 소득이 있어 대출을 냈다면 치밀한 계획을 세워 퇴직 전까지 상환하는 게 좋다는 의미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자녀가 성장하고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인생 중기에는 의욕에 앞서 과감하게 대출을 받아 주택 구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저질러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고, 그러다 보면 집값이 조금이라도 상승해 재산이 불어나는 게 중산층의 전형적인 자산 증식 패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채비율은 얼마까지 안정적일까. 일반적으로 부채상환액은 가계 가처분소득의 20% 이내여야 한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권고다. 주택대출을 포함한 부채상환액이 가계 가처분소득의 40%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또한 부채가 자산의 50% 이상이면 위험수준이라고 판단한다. 예컨대 세금과 사회보장비를 제외하고 손에 쥔 월수입이 100만원이라면 원리금을 포함해 일반적으로 20만원, 많아도 40만원 이내라야 과도한 부채로 인한 가계부도 위험에서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시적으로 부채상환액이 많은 것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무리하게 대출을 얻어 지속적으로 부채 상환에 수입의 40%를 이상을 써야 한다면 금리 인상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젊어선 빚을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되, 퇴직 시점을 목표로 제로(0)로 만드는 재무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퇴직 무렵 빚이 없어졌다면 연금을 비롯한 노후소득은 온전히 노후생활자금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연준의 금리 인상 충격파가 본격화하면 현재 2%대 중·후반인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3~4%대로 올라서는 건 시간문제다. 그간 가계의 현금흐름이 좋고 자산 대비 부채 비중이 감당할 수준이었다면 적절한 빚은 자산 증식의 지렛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퇴직을 앞뒀음에도 저금리에 힘입어 활용한 빚이 과도했다면 ‘부채 다이어트’를 서두를 시점이다. 이는 비만 판정을 받아 체중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 식사를 조절하고 운동으로 체질을 강화해 성인병을 예방하는 이치와 다름없다.
 고금리 대출 먼저 갚고 신용관리도 신경 써야
더 실질적으로 빚을 관리하려면 ‘빚테크(빚+재테크)’ 5계명만 기억해둬도 좋다. 우선 재무제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자. 자산과 부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내게 빚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빚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빚 관리의 첫걸음은 빚 규모 파악이라는 얘기다. 둘째는 양성 빚과 악성 빚의 구분이다. 생애에 걸친 재무적 과정에서 주택을 마련할 때는 어느 정도 빚을 짊어질 수 있다. 규모가 과도하지 않고 현금흐름이 좋다면 일시적으로 쓰는 빚은 재산을 불리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자산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적정한 규모의 부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위해 빚을 내는 것은 십중팔구 쪽박을 찰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신용대출처럼 대출 문턱이 낮은 빚은 이런 경우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부채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우선 순위에 따라 상환하자. 순서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금리→소액→만기가 임박한 빚부터 갚아나가자. 넷째로 주의해야 할 포인트는 신용관리다. 연체가 발생한 대출은 개인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신용 등급이 낮아지면 주택 마련 등을 위해 대출을 받을 때 금리가 불리하게 적용되고 신용카드 발급이 제한되는 것을 비롯해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간혹 배우자나 가족 모르게 빚을 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배우자 몰래 빚이 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계 차원에서 상환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혼자 빚을 갚겠다고 숨기고 있으면 오히려 부채 상환이 지연되거나 빚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부채는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과용하면 독이 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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