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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연구도 성차별하나

암 연구도 성차별하나

남녀의 암은 달리 나타나고 진행 과정 고려하지 않은 연구 많아… 항암제 개발과 임상시험에서도 성별격차 커
항암제의 개발과 임상시험 등 암 연구 전반은 남녀의 차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암은 종류와 환자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모든 환자에게 효과 있는 항암제도 거의 없다. 이처럼 암 치료가 갈수록 개인 맞춤형으로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간과되던 사실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치료 결과를 환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인 요인인 성별이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암 전문의는 치료가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가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면서 숱하게 좌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항암제에 관한 연구가 그 약이 표적으로 하는 환자 집단을 정확히 반영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문제다. 이런 사실은 거의 모든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여성이 불평등한 임상시험으로 부당하게 피해를 본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미국 텍사스대학 MD 앤더슨 암센터의 페이 존슨 박사는 “환자가 전부 남성인 전립선암이나 환자가 대부분 여성인 유방암처럼 남녀 환자의 구분이 확실한 암을 제외하고는 환자의 성별에 따른 차이가 치료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의학계가 그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암에서 성별의 차이에 신경 써야 한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임상시험 참여 환자의 성비가 고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암에 관한 연구가 대중의 어느 집단에서 특정 암이 많이 나타나는지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임상시험 참여 환자의 성비는 실제 해당 암에 걸리는 환자의 성비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학술지 ‘암’에 발표된 논문 수백 편(수백만 명의 환자가 포함됐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논문 4편 중 3편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 등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암과 관련된 연구는 100%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암의 경우 성별 편향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의 45%는 여성이지만 연구 대상이 되는 폐암 환자 중 여성의 비율은 약 31%다.

더구나 이런 불평등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실시되기 훨씬 전부터 나타난다. 성차별이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임상에서만이 아니라 치료제가 개발되는 실험실 배양접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새로 개발한 항암제를 실제 환자에게 임상시험하기 전에 먼저 실험실에서 평가한다. 보통 이런 개발 초기 단계의 평가에 사용되는 암 세포 라인은 주로 암의 종류에 따라서만 분류된다. 표본을 제공한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 인종 같은 다른 주요 요인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생식계에 관여하는 세포만이 아니라 모든 세포가 성별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정되는 순간부터 남성과 여성은 성염색체에 의해 구분된다. 성염색체는 여자는 X염색체 2개, 남자는 X염색체와 Y염색체 각각 1개씩으로 구성된다. 이런 성염색체는 인간 유전체를 구성하는 약 2만 개 유전자 중 5% 정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모든 세포가 성별에 따라 그 정도 차이를 보인다. 암 세포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세포 차원의 성별 차이는 우리 몸의 생리조절 기능만이 아니라 암을 포함해 많은 질병의 발병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 치료 결과도 거기서 좌우될 수 있다. 미국 텍사스 심장연구소의 재생의학 연구부장 도리스 테일러는 “부상이나 외부 물질, 또는 염증에 대한 여성의 반응은 남성과 완전히 다른 화학적 경로를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험실에서나 임상에서 연구하거나 결과를 분석할 때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암 전문의가 환자의 성별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건 한참 됐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계는 그 문제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중요한 암 연구는 대부분 성별에 따른 차이를 무시하고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한다.

2006년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와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HGRI)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 ‘암유전체지도(TCGA)’라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만 명 이상의 환자에게서 얻은 조직 샘플을 바탕으로 33개 암 종류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목표는 특정 암 종류를 규정하는 공통의 유전적 요인을 확인하고 그 유전자 프로필에 맞는 치료제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프로필은 암의 종류마다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성별(그리고 나이와 인종, 암 진행 단계)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TCGA가 암 치료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목표를 진전시킨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 문제가 있다. 이 프로젝트에 사용된 조직 샘플의 전반적인 성비는 거의 균등했지만 특정 암세포 라인의 성비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비소세포폐암의 DNA 분석에 사용된 조직 샘플의 경우 남성의 샘플이 여성에게서 채취한 샘플보다 훨씬 많았다(373개 대 131개).

TCGA를 이끄는 진 젠클루센 박사는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급선무는 조직 샘플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암 종류마다 환자 500∼1000명 또는 그 이상에게서 표본을 채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수집 목표량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니 TCGA는 ‘편의의 샘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젠클루센 박사는 말했다. 여성이나 인종 요인을 대부분 배제하고 동질의 환자 집단에서 조직을 채취했다는 뜻이다.얄궂게도 TCGA의 데이터 분석은 암세포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줬다. 그에 따라 더 효과적인 개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지만 연구자들이 성별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그 기회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강해졌다. 텍사스대학 MD 앤더슨 암센터의 생물정보학자 한량 박사는 최근 13개 종류의 암에 관한 TCGA 데이터를 분석했다. 남녀 조직 샘플의 서로 다른 유전적 속성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그의 팀은 암 치료에서 중요하다고 알려진 특정 유전자에 초점을 맞췄다.

환자의 성별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 유전자의 53%가 성별에 근거한 표시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암의 생체지표는 암 전문의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매우 유용하다. 아울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했고 암 전문의가 흔히 처방하는 86개 항암제가 성별에 근거한 표시자와 관련 있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모든 종류의 암이 성별에 근거한 표시자를 많이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한량 박사팀은 갑상선·목·폐·간·신장·방광에 생기는 암의 유전자가 성별과 관련된 생체지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발견은 암을 치료하는 많은 의사들이 일화적으로 관찰한 증거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처방되는 특정 항암제는 ‘EGFR’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다. 많은 암 전문의는 그 약을 투여 받는 여성 환자의 치료 효과가 남성보다 낫다는 사실을 종종 목격한다. ‘EGFR’ 유전자의 성별에 근거한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젠클루센 박사에 따르면 지난 5월 이런 결과가 학술지 ‘암 세포’에 발표됐을 때 암전문의들은 한목소리로 “그걸 몰랐다면 바보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는 것만으론 절대 충분치 않다는 사실에도 동의했다. 젠클루센 박사는 “이 연구는 목격된 차이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을 밝히는 데는 아직 미흡하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암유전체학과 정밀의학이 대세인 요즘 과학자들은 ‘특정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 확인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암세포 증식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의 ‘표시 오류’를 찾는다. 그러나 유전자의 탈락, 중복, 서열 뒤집기 등 질병 병리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임상시험이 공평하게 균형을 맞출 때만이 환자의 치료 결과가 나아질 수 있다. 1993년 미국 연방의회는 국립보건원(NIH) 활성화법을 통과시켰다. 연구 대상 집단의 다양화를 촉구하는 지침을 마련한 법이다. 그에 따르면 연구에 필요한 미국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확보하려는 연구 대상 집단을 명시해야 한다. 또 여성과 소수 민족, 어린이가 포함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연구자들은 다양한 대상 집단을 동원하면 오히려 해당 연구에 혼란을 일으키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런 정책이 효과를 내는 듯하다. 임상시험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강화되는 조짐이 많다. 미국 암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 보조금을 받은 임상시험은 민간 부문의 재정 지원을 받은 시험보다 여성 표본이 더 많았다(41.3% 대 36.9%).

젠클루센 박사도 NCI도 TCGA에서 여성과 소수민족 환자의 조직 샘플이 더 많이 확보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와 연구자들은 조직 샘플의 다양화를 위해 현지 교회에서 참여자를 모집한다. 젠클루센 박사는 “TCGA가 미국의 인구 구성 비율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여성과 소수민족 참여자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 제시카 퍼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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