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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전문가 버나드 리테어의 경고

통화정책 전문가 버나드 리테어의 경고

벨기에 출신 금융전문가 버나드 리테어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 신용(빚) 수요가 크지 않다” 며 “고령화가 통화정책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42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금융전문가. 『돈의 미래』등 파격적인 통화정책과 화폐시스템을 주장한 책을 펴내 ‘대안의 통화이론가’로 불린다. 70년대 후반 남미 외채 위기를 정확하게 경고했다. 현재 독일에 머물며 고령화 시대 통화시스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 중앙포토
금융종말론을 언급한『달러의 위기』의 저자 리처드 덩컨은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달러와 유로, 엔화, 그리고 원화 모두 거대한 빚더미 위에 세워진 불안한 화폐시스템”이라며 “양적완화(QE) 등으로 가파르게 불어난 빚은 언젠가 인류를 엄습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의 말에 선 마치 노아의 홍수나 최후의 심판 등에서나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벨기에 출신 금융전문가 버나드 리테어(74)는 최근 저서『돈의 미래(The Future of Money)』 등에서 빚더미가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가 통화정책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의 종말을 경고하고 나섰다. 리테어는 벨기에 중앙은행에서 일하면서 유로화의 아버지인 ‘에큐(ECU·유럽 통화 단위)’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90년대엔 세계 정상급 외환 트레이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생을 돈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며, 금융계의 스타로 명성을 얻고 한때 ‘세계 최고의 머니 트레이더’로 선정되기 한 그가 통화정책의 종말을 주장한 것이다. 세간의 통념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그의 이론을 들어보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했다.
 노동 인구 줄면 빚 수요도 줄어
버나드 리테어가 저술한『돈의 미래』.


한국이 아주 빠르게 일본처럼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고령화가 빚과 무슨 관련이 있나.


내 나이가 일흔네 살이다. 이제 빚을 내 집이나 차를 사고 싶지 않다(웃음). 고령화 사회가 되면 신용(빚) 수요가 크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신용 수요 감소가 통화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주나.


요즘 저금리정책이 무엇인가. 중앙은행이 필사적으로 수요를 늘려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이다. 금리를 낮출 테니 돈을 빌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주식도 사라는 얘기다. 그런데 고령화 때문에 신용 수요가 줄어든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도 기대만큼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는다. 빚을 지렛대로 한 통화정책이 무력화된다.



고령화가 어느 정도 심각하기에 그런가.


고령화의 또 다른 의미는 노동 인구의 감소다. 한 독일 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2100년 중국의 노동 인구가 2015년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중국이 말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도 비슷한 패턴을 보일 전망이다.

리테어가 말한 한 독일 은행의 분석은 베렌베르그은행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은 14세기 흑사병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노동력 인구 감소를 겪을 전망이다. 노동력 감소에서 예외적인 나라가 있기는 하다. 미국이다. 2100년 노동 인구가 2015년보다 20% 많을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부채는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을 봐라. GDP 1달러를 늘리는 데 부채는 3~4달러씩 증가하고 있다.


맞다. 지금은 아주 빠르게 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2046년엔 글로벌 채무가 830조 달러(약 93경4829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금융 위기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 우려의 배후에 종교적 시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본다.

리테어에 따르면 중세까지만 해도 과도한 빚은 채권자 탐욕의 상징이었다. 이자는 죄악이었다. 채무자보다 채권자가 더 비난 받았다. 그런데 근대 들어 지나친 빚은 채무자의 부덕이다. 지나친 빚은 방만과 낭비와 같은 말이다. “영어에서 긴축을 뜻하는 ‘austerity’는 애초 물욕에 찌든 가톨릭을 개혁하기 위한 수도자의 금욕운동을 의미했는데, 이제는 방만한 개인이나 나라에 채권자가 처방한 재정긴축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리테어).”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된 나라에선 경제 성장과 부채 증가가 동시에 이뤄졌다. 성장과 부채 증가가 현대 경제의 필수 요소란 얘기다. 그런데 둘 사이 비례관계가 노동 인구 감소 때문에 깨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조짐이 마이너스 금리다. 채권자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내야 하는 시대다. 마이너스 금리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실제 올해 글로벌 부채 가운데 10분의 1 정도가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이 마이너스 금리가 왜 문제인가.


이자 대신 웃돈을 줄 테니 돈을 빌려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주식도 사라는 게 일부 국가의 통화정책 아닌가. 그런데 성장은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황이 노동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면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전통 통화정책의 부활이 쉽지 않다고 경고했나.


그렇다. 많은 전문가가 ‘지금 QE 등 비전통정책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조만간 정상화(전통정책의 부활)가 될 것이란 가정 아래 하는 말이다. 하지만 통화정책 정상화 이전에 노동인구 감소라는 심각한 문제가 엄습할 것 같다.
 금리 내려도 소비·투자 늘지 않아
리테어에 따르면 노동 인구 절벽 이후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절해도 원하는 만큼 소비나 투자가 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가운데 핵심인 신용(부채)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신용 증가가 둔화하는 시대에 성장률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길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이다. 이것 없이 고령층의 노동시간을 연장해 봐야 성장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생산성 향상은 기업이나 개인 등의 몫이었다. 중앙은행이 할 일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중앙은행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었다. 생산성은 사회 전체의 기술·지식 발전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한 세대 정도 꾸준한 투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라도 중앙은행가들이 생산성을 통화정책 개발에 반영해야 한다.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통화정책은 단기 자금시장을 겨냥한 것들이었다. 바로 부채시장이다. 하지만 노동 인구 감소 이후엔 단기 자금시장이 중앙은행가의 좋은 정책 파트너가 아니다. 대신 초장기 투자가 가능한 ‘자금 저수지(제3의 금융시장)’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아직 이런 금융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중앙은행가들이 통화 공급이나 돈줄을 조절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초장기 자금시장 조성자로 나서야 할 때다.

-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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