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스노든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노든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미국 정부의 민간인 감시 폭로로 정보기관에 경각심 높였지만 정당한 외국정보 수집활동까지 까발려 사면 받기는 어려울 듯
인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스노든의 사면을 촉구했다. 화면은 지난 9월 14일 스노든이 모스크바에서 비디오 링크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
약 반세기 전 미국 국방부에서 분석가로 일하던 대니얼 엘스버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진 미국을 보고 좌절했다. 젊고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베트남전의 진실을 미국 국민에게 알리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엘스버그는 사무실 금고에 보관하던 극비문서 뭉치를 꺼내 언론에 넘겼다.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였다. 그 문서는 1940년대 초부터 1968년까지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은밀하게 개입한 ‘떳떳치 못한’ 역사를 담고 있었다.

엘스버그의 극비문서 유출은 흔히 미국 정보당국의 계약직원이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국가안보국(NSA) 기밀문서 절도 사건에 견줘진다. 스노든은 NSA의 민간인 감시 프로그램 등을 언론에 폭로한 뒤 당국의 체포를 피해 지난 3년 동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냈다. 그도 엘스버그처럼 미국의 논란 많은 방첩법에 의거해 극비정보 절도에 관한 여러 건의 혐의로 기소됐다(1917년 제정된 방첩법은 원래 간첩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지만 기밀정보 유출한 내부고발자와 반정부 인사의 기소에 자주 사용됐다). 하지만 엘스버그와 공모자 앤서니 루소는 스노든과 달리 115년 징역형에 직면해 몇 주 동안 숨어 지내다가 재판을 받겠다며 법무부에 자수했다. 엘스버그는 자수하면서 “유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한 행동이었다”며 “나의 결정에 따른 모든 결과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노든의 경우는 그와 다르다. 그와 엘스버그는 훔친 문서의 성격에서도 차이가 난다. ‘펜타곤 페이퍼’는 적법한 기밀을 담은 문서라기보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서 행한 범죄와 어리석은 행동이 기록된 부도덕한 내용이었다. 특히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군사 개입을 강화하는 구실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미국 국방부와 린든 존슨 대통령의 조작이었다는 ‘중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미국은 북베트남 어뢰정이 통킹만에서 미 해군 구축함을 선제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미국의 자작극이었다). 엘스버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관해 적이 이미 아는 내용을 미국 국민도 알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스노든 지지자들은 미국 국민이라면 그가 폭로한 NSA의 무차별 민간인 이메일·통화 감시에 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노든은 NSA가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러시아·중국 등 적대 세력만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독일 같은 동맹국의 통신도 감청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국가 전복이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회가 승인한 외국 정보수집 활동에 관해서까지 과연 미국 국민이 알 필요가 있을까? 사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지난 9월 스노든 지지자들은 미국 정부에 그의 사면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들은 내부고발자에게 불리한 시스템의 잘못을 지적하며 스노든의 사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일리 있는 얘기다. 미국 국방부 감찰관 글렌 파인은 내부 비리를 신고한 뒤 보복당했다고 신고한 국방부 직원이 지난 12년 동안 4배 이상 늘었다고 최근 하원 청문회에서 밝혔다. 올해 말(회계연도 기준)까지 그 수가 전부 16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민간단체인 정부감시프로젝트(POGO)의 맨디 스미스버거는 같은 청문회에서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감사관실(OIG) 직원의 45%가 상부의 정 직성을 의심한다는 조사 결과에 관해 증언했다.

미국 국가정보국(ODNI)은 제2의 스노든이 되려는 정보기관 직원이 정부 기밀문서가 가득한 USB를 갖고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그들을 막으려고 애쓴다. 지난 9월 백악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ODNI는 ‘조직원으로서 정직성의 모범이 되거나 합당한 경로를 통해 비리를 보고함으로써 상부에 진실을 고하는 직원을 포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발표는 미국 과학자연맹이 발행하는 시크러시 뉴스의 스티븐 애프터굿 기자가 처음 보도했다. 애프터굿 기자는 “조직원으로서의 정직성은 어디서든 환영 받겠지만 ‘상부에 진실을 고하는 것’은 상부의 환영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비리를 파헤쳐 보도하는 기자는 곤경에 처하기 쉽다.”

워싱턴의 내부고발자 지원단체인 정부책임성확보프로젝트(GAP)의 법률 담당 국장 톰 드바인은 “범죄와 비리를 신고 받는 사무실을 설치해도 효과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대개 그런 조직은 오히려 내부폭로자를 색출해 비리를 은폐하려는 상부에 그 증거를 넘겨주는 함정으로 사용된다.” 그는 내부 비리를 폭로하는 공무원, 특히 정보기관이나 국방부의 그런 직원을 보호하려면 방첩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첩법 개정은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 텍사스대학 법학대학원의 헌법학자 스티븐 블라덱 교수는 “행정부 내부에서 방첩법을 손보려는 의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방첩법이 제정된 지 1세기가 지났지만 지금도 판사와 배심원단은 그 법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재직 중 기밀정보를 언론에 유출한 죄로 복역 중인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제프리 스털링의 변호인단은 “시대에 뒤진 그 법이 극단적인 양형 선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판사는 CIA의 실패한 대이란 첩보 작전을 폭로한 스털링에게 방첩법이 제시하는 19~24년 대신 42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스노든은 그처럼 운이 좋진 않을 것이다. 또 그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미국 국민의 성원을 한몸에 받았던 엘스버그와 달리 대중적인 인기도 별로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부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의 정보위원회, 워싱턴포스트 신문(스노든의 기밀 유출로 많은 이득을 본 신문 중 하나)까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스노든의 사면에 반대한다. 현재의 분위기로 볼 때 스노든은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수 차례 더 지내야할 가능성이 크다.

블라덱 교수는 “스노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스노든이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집행 유예와 보호관찰 등 형량을 경감 받는 사법 거래다. 정부가 먼저 제안하고 스노든이 받아들이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블라덱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 아래선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사법 거래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들 모두 스노든의 사면이 아니라 처벌을 원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지만 결국 어느 쪽이든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노든이 법을 어긴 덕분에 우리 모두의 프라이버시가 더 잘 지켜진다는 게 역설이다.”

- 제프 스타인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미국투자이민 공공 프로젝트가 답∙∙∙국민이주㈜, 27일 해외 유학이민박람회 참가

2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 올해 상반기 19개 스타트업 선발

3CJ ENM, 빌보드와 MOU 체결…“K-POP 글로벌 영향력 확대 기대”

4LG유플러스, 1020대 겨냥한 실속형 스마트폰 ‘갤럭시 버디3’ 단독 출시

5中, 1분기 경제성장률 5.3%… 예상치 상회

6대구은행, 중소·사회적기업 대상 퇴직연금 수수료 감면 확대

7스마트폰처럼 맘대로 바꾼다...기아, ‘NBA 디스플레이 테마’ 공개

8‘이스라엘의 對이란 보복 공격’ 쇼크…증권가 “금융시장 불안 확산”

9한국토요타, 車 인재양성 위해 13개 대학·고교와 산학협력

실시간 뉴스

1미국투자이민 공공 프로젝트가 답∙∙∙국민이주㈜, 27일 해외 유학이민박람회 참가

2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 올해 상반기 19개 스타트업 선발

3CJ ENM, 빌보드와 MOU 체결…“K-POP 글로벌 영향력 확대 기대”

4LG유플러스, 1020대 겨냥한 실속형 스마트폰 ‘갤럭시 버디3’ 단독 출시

5中, 1분기 경제성장률 5.3%… 예상치 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