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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의 사생활 폭로

내부고발자의 사생활 폭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새 영화 ‘스노든’,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개인 생활 많이 다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스노든’에서 에드워드 스노든 역을 맡은 조셉 고든-레빗(오른쪽).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과는 데이트하지 말라. 이것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스노든’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교훈인지도 모른다. 일본 도쿄나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에드워드 스노든(조셉 고든-레빗)은 오랫동안 사귀어 온 여자친구 린지 밀스(셰일린 우들리)와 말다툼을 한다. 그녀는 불만에 차 있다. 남자친구가 매우 예민하고 냉담한 데다 툭하면 사무실에서 며칠씩 밤샘 근무를 하니 당연한 일이다. 밀스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자신의 누드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자 스노든은 “지워버려”라고 말한다. 이에 밀스는 “왜, 난 내 가슴이 국가안보 상의 중요한 문제로 관심을 끌면 좋겠는데”라고 비아냥거린다.

스톤 감독의 최신 역사 드라마 스릴러인 이 작품에서 개인적인 문제는 곧 정치적인 문제다. 미국인이 사생활 보호에 관심이 없었다면 민간인의 통신 정보를 수집해온 NSA의 관행이 국가적 분노를 일으키진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스노든의 사생활을 많이 다룬다. 그를 NSA의 민간인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로만 알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낯선 이야기다. 미군 특수부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다리 부상으로 제대한 후 중앙정보국(CIA)의 컴퓨터 보안 기술자로 취직해 ‘컴퓨터 마법사’로 불리던 일화 등이 소개된다. 간질 투병과 외향적인 성격의 댄서인 여자친구 밀스와의 관계도 조명된다. 그녀는 정치적으로나 성격적으로 스노든과 정반대로 묘사된다. 스톤 감독은 밀스에게 무척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스노든은 올리버 스톤 영화의 주인공으로 전형적인 캐릭터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애국심이 서서히 편집증 수준으로 발전한다. ‘스노든’은 9·11 관련 사건이나 그 여파를 다룬 스톤의 세 번째 영화다[첫 번째는 9·11 당시 인명구조 작업 중 건물 잔해 속에 갇혔다 구조된 경찰관 두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월드 트레이드센터’(2006), 두 번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W’(2008)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톤 감독이 베트남전 이야기를 다룬 ‘7월 4일생’(1989)에서 개발한 오래 된 공식을 따른다. 한 젊은 남자가 나라에 충성한다는 높은 이상을 품고 정부 기관이나 군대에 들어가지만 체제에 만연한 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이야기다.영화는 스노든이 미국 정부에 환멸을 느끼게 된 과정과 그가 홍콩의 호텔 방에서 탐사보도 기자들에게 기밀 정보를 넘기는 장면을 오락가락한다. 기자들은 스노든이 잡히기 전에 특종을 터뜨리려고 정신없이 기사를 작성한다. 재커리 퀸토와 톰 윌킨슨이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월드와 이웬 매카스킬로 나온다. 또 멜리사 레오가 ‘시티즌포’(스노든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를 연기한다.

영화 ‘스노든’은 스노든이 미국 정부에 환멸을 느끼게 된 과정과 그가 홍콩의 한 호텔 방에서 기자들에게 국가 기밀 정보를 넘기는 장면을 오락가락한다.
정적인 장면들 간간이 액션을 끼워 넣으려는 시도가 어색해 보인다. 스톤 감독은 기본적으로 ‘시티즌포’의 장면들을 재현하면서 박진감 있는 음악과 할리우드식 긴장감을 가미했다. ‘7월 4일생’은 치열한 전투 장면으로 관객을 사로잡지만 ‘스노든’에는 데이터와 컴퓨터, 감시 관련 장면이 많다. 웬만해선 눈길을 사로잡기 어려운 소재들인 만큼 요란한 테크노 음악과 데이터를 주제로 한 현란한 시각 효과가 동원됐다. 스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JFK’(1991)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진짜 뉴스 화면들을 이용해 현대의 정보 과부하 현상을 묘사했다. ‘스노든’에는 2015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스노든 관련 토론을 녹음한 오디오 클립도 삽입됐다. 스톤 감독의 영화에서는 진정한 로맨스를 찾아볼 수 없다. 드물게 나오는 섹스 장면에서도 그는 카메라의 초점을 스노든에게서 돌려 랩톱 컴퓨터의 웹캠 렌즈에 맞춘다.

고든-레빗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스노든의 상황을 잘 묘사하지만 조용한 말투와 과장되지 않은 행동 탓에 그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놓치기 쉽다. 그는 스노든과 매우 흡사한 낮고 지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NSA의 감시 체계에 대한 스노든의 공포를 자신이 하는 일에 몸서리 치는 작은 제스처로 전달한다. 정부 고위 관리로 나오는 리스 이반스는 “대다수 미국인이 자유가 아니라 안보를 원한다”고 말해 빅 브라더 같은 인상을 풍긴다. ‘월드트레이드 센터’의 주인공을 맡았던 니컬러스 케이지도 CIA 멘토로 깜짝 출연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스노든’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당파적이라고 비난한다. 스톤 감독은 부시의 일대기를 다룬 ‘W’에서 대디 이슈(daddy issues, 성장기에 아버지의 부재나 아버지와의 부적응적 관계가 성인이 된 후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이 영화는 스노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급급해 그의 기소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복잡하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조명하는 데는 성공했다. 또 NSA가 전례 없는 글로벌 감시 네트워크를 개발했으며 29세의 컴퓨터 기술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실을 폭로했다는 기본적인 정치적 요지는 유지했다.

지난 9월 11일 뉴욕 브루클린 공공도서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스노든’을 봤다. 시사회장은 기자와 브루클린 주민들로 붐볐고 스톤 감독과 스노든의 변호사 벤 위즈너가 무대에 나와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영화 내용이 사실이냐?”고 한 관객이 질문했다.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스톤 감독의 영화들이 하나같이 극화된 것임을 생각할 때 교묘한 질문이다. 스톤 감독은 실제 사건을 음모와 이데올로기라는 렌즈를 통해 조명한다. ‘JFK’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 ‘X’(도널드 서덜랜드)가 뜬금없이 나타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설명해주고 사라지는 공원 벤치 장면이다. ‘스노든’에서는 스노든이 정부 기밀 서류가 담긴 칩을 루빅스큐브 안에 숨겨 건물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장면(스노든이 검색대 밖에 서 있는 보안요원에게 장난 삼아 큐브를 던지고 나서 검색대를 통과한 후 돌려받는다)이 그런 대목이다. 영화 속 이 장면의 아이디어는 스노든이 내놓았지만 실제로 어떤 방법을 이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뭘까? 영화 내용이 과연 사실일까? 스톤 감독은 싱긋 웃으며 “NSA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고 말했다.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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