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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게임도 인종 편견 “심각”

비디오 게임도 인종 편견 “심각”

주인공 캐릭터로 흑인이나 소수인종 찾아보기 힘들어…게임 개발자가 거의 백인이란 사실이 문제인 듯
최신 게임 ‘마피아3’의 주인공 링컨 클레이는 흑인이다. 흑인은 비디오 게임에선 보기 힘든 주연 캐릭터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게이머들은 10월 7일을 학수고대했다. ‘마피아(Mafia)3’가 출시된 날이었다. 장장 6년의 개발 끝에 탄생한 ‘마피아3’는 돌풍이 기대되는 올해의 작품 중 하나였다. 이 게임은 1968년 범죄가 들끓는 도시 뉴보르도에서 펼쳐진다. 늪지, 고출력 자동차, 프렌치쿼터식 발코니 등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연상시키는 허구적인 도시다. 게임 평가자들은 지적인 스토리텔링과 정교한 묘사, 신선한 ‘오픈월드’ 게임플레이(게이머가 가상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성 요소들을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의 한 유형)를 극찬했다. 그러나 일부는 다른 이유에서 그 게임의 출시를 기다렸다. 주인공 링컨 클레이가 흑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게임 세계에선 클레이 같은 흑인 주인공을 찾아보기 힘들다. 흑인이 등장할 때는 주로 주인공의 조수나 근육질 악당 또는 긴장을 풀어주는 코미디언 역할을 한다. 또 스포츠 선수나 힙합 가수, 갱 등 판에 박힌 역할을 맡는다. 미국 일리노이 주 소재 드브라이대학의 게임 디자이너 데렉 만스는 “걸핏하면 흑인 여자는 결손가정 출신이고 흑인 남자는 래퍼”라고 말했다. “그는 늘 가난하고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이며 아버지는 집 나간 지 오래다.”

그동안 비디오 게임에 흑인 주인공을 더 많이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인기 게임 ‘워킹데드(The Walking Dead)’의 리 에버렛과 ‘하프라이프(Half-Life)2’의 알릭스 밴스가 초기 사례다. 물론 백인 캐릭터도 어둡고 폭력적인 과거를 가진 경우가 더러 있지만 흑인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은 거의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워킹데드’는 수갑을 찬 에버렛이 경찰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프라이프2’의 밴스는 NPC(게임 안에서 이용자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인 주인공 단짝이다. ‘마피아3’의 클레이는 독자 조직을 만드는 범죄자다.

일각에선 인종의 다양성이 TV나 영화보다 비디오 게임에서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게이머는 다른 미디어에서보다 더 강렬하게 캐릭터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림빅 소프트웨어에서 책임 게임 디자이너로 일하는 20년 경력의 마커스 몽고메리는 “비디오 게임은 현실보다 더 촉감적이고 상호작용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몽고메리 같은 게임 디자이너들에 따르면 바로 그 때문에 게임 업계가 캐릭터에서 흑인의 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그런 게임을 하며 성장하는 어린 흑인 어린이들을 고려해야 한다. 가나 출신으로 광섬유를 공동 발명한 토머스 멘사는 “흑인 아이는 게임에서 흑인 엔지니어도 의사도 프로그래머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멘사는 소수인종 학생을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로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STEM 리치 2020’ 운동을 이끈다. 물론 백인 아이도 백인 엔지니어나 의사를 비디오 게임에선 거의 만날 수 없다.

이런 다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전문가는 어떤 사람이 게임을 만드는지, 더 중요하게는 어떤 사람이 게임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는 게임 개발자 중 흑인은 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겨우 0.5%포인트 늘었다. 그에 비해 백인은 게임 개발자의 76%를 차지한다. 게임 컨벤션 주최 전문업체 더블 익스포저의 애버넬 윙은 “비디오 게임 업계는 성차별보다 인종차별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인종과 관련한 목소리는 거의 듣기 힘들 정도로 대다수가 무관심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올바로 파악하기 힘든 문제다.”

흑인 게임 개발자들은 흑인의 비율이 그토록 낮은 건 재정적인 어려움과 훈련 미흡, 기회 결여 탓이라고 말한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게임 개발은 특히 편협하고 배타적이다. 만스는 잘 아는 사람과 인맥이 있어야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 ‘이봐, 이 일을 할 수 있는 내 친구가 있는데 아주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추천하면 바로 채용된다.”

그러나 팀원이 다양할수록 제품의 품질이 더 좋아진다고 만스는 덧붙였다. 몽고메리도 동의했다. “다양한 스토리텔러가 있으면 독자적인 관점을 도입해 이전에 탐구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소수인종 개발자가 없다고 좋은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다른 문화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액션 어드벤처 게임 ‘어쌔신 크리드3 리버레이션(Assassin’s Creed III: Liberation)’이 비근한 예다. 흑인이 아닌 작가 팀이 18세기 뉴올리언스에서 사는 프랑스-아이티 혼혈인 주인공 애벌린을 멋지게 창조해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몽고메리는 “특정 집단에 소속된 경우엔 이해하기 힘든 중요한 뉘앙스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난 이성애자 남성이다. 따라서 동성애자 여성의 심리와 생각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 아무리 연구하고 조사한다고 해도 내가 그걸 제대로 알지는 못할 것 같다.”

게임 ‘위 아 시카고(We Are Chicago)’가 범죄와 마약이 들끓는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어떤지 실감나게 묘사했다고 칭찬 받는 것도 바로 그런 내부자적인 관점 때문이다. 올해 초 출시된 그 게임은 시카고 잉글우드에서 성장한 젊은 흑인 남자 애런의 눈을 통해 진행되는 일인칭 모험이다. 작가 토니 손턴이 실제로 잉글우드에서 성장한 경험에다 주민 여러 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애런의 실감나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2014년 출시된 게임 ‘네버 얼론(Never Alone)’은 그려내려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게임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생생한 현실감을 만들어낸 또 다른 예다. “문화적 맥락을 절묘하게 포착했다”는 평을 들은 이 게임은 알래스카의 원로 원주민과 이누잇 부족원 40명의 참여로 개발됐다.

아울러 게임을 즐기는 계층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서도 흑인 게임 개발자를 늘려야 한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흑인 남성의 53%가 비디오 게임을 즐기며, 11%는 자칭 ‘게이머’였다. 백인 성인의 경우 그 수치는 각각 48%, 7%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게임 제작에 흑인 개발자를 더 많이 포함시키려는 단체가 여럿 생겨났다. 몽고메리는 흑인의 비디오 게임 제작을 돕는 ‘블랙스 인 게이밍’에서 활동한다. 멘사는 미국 최초의 흑인 소유 비디오 게임 개발회사 엔터테인먼트 아츠 리서치의 회장이다.

지금은 흑인 플레이어와 그들이 즐기는 게임의 개발자 사이에 격차가 매우 크다. 만스는 흑인 남성이라면 ‘NBA 2K’(농구)와 ‘FIFA’(축구) 같은 스포츠 게임을 좋아한다는 판에 박힌 생각이 옳을지 모르지만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게임을 좋아하는 흑인 게임광도 많다”고 말했다. 비디오 게임에서 흑인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서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흑인 게이머가 많아야 캐릭터도 흑인이 많이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샌디 옹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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