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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푸틴과 사랑에 빠졌을까

그들은 왜 푸틴과 사랑에 빠졌을까

서방의 극우·극좌파, 반미주의 외치며 진보주의적 가치에 반대하는 투쟁에 공감대 형성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마초’ 전통주의 스타일로 서방의 일부 우파와 좌파 인사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일부 해외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다. 푸틴 같은 지도자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이유가 뭘까?

답의 일부는 그 질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완력으로 짓누르는 것을 제3자 입장에서 구경할 때 그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기가 더 쉽다. 말을 함부로 하는 허풍선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내부 반대자를 탄압하는 행위를 못 본 체하거나 심지어 격려한다. 어쩌면 헝가리 출신의 영국 소설가 아서 쾨슬러의 표현대로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 담장의 구멍 통해 다른 곳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더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지 모른다’.

좀 더 넓게 보자면 푸틴은 특정 부류의 보수주의자에게 호감을 산다. 푸틴은 현대 서구의 질척하고 복잡한 삶과 반대되는 ‘마초’ 전통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크렘린은 마치 서방에서 여성운동과 각종 사회운동이 절정을 이룬 1960년대가 없었던 듯 행동한다. 동성애자와 여성이 모든 것을 망쳤다고 벌컥 화내는 남성이 대접 받는 희한한 곳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가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이다. 그건 서방의 자본주의에 반대한 사람이 옛 소련에 호감을 가진 것과 다르지 않다. 푸틴은 진보적 가치에 반대하는 투쟁의 선봉에 섰다. 옛 소련이 자본주의 패권에 맞선 싸움을 주도할 때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통과를 주도한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 같은 정치인이 푸틴의 열렬한 팬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역설적인 것은 푸틴이 서방의 좌익 일각에서도 추앙 받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국영방송 RT에선 영국의 알만한 좌파 인물이 나와 자신의 조국을 욕한다. 적의 선전 방송에 스스로 나가서 조국을 비난하는 것이다.

RT에 출연하는 영국의 좌파 인물은 좋든 싫든 러시아의 보복주의 제국 세력을 위해 기꺼이 바보 역할을 한다. 그런 세력은 전통적인 ‘진보주의자’가 중시하는 명분에 일말의 관심도 갖지 않는 데도 말이다. 근년 들어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영국의 외교정책 모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많은 부분을 집어삼키고 시리아에서 전쟁범죄를 계속 저지른다.

RT를 오래 틀어 놓으면 미국 녹색당 대통령 후보 질 스타인도 볼 수 있다. 스타인 후보는 최근 모스크바의 RT 행사에 참석해 미국과 러시아가 케케묵은 냉전 사고방식을 떨쳐버리고 협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푸틴 대통령과 만찬을 즐기면서 인권 문제를 거론하긴 했지만 러시아의 상황을 비판한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인권 침해를 개탄하기만 했다.

극좌와 극우 사이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는 정치 이론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만찬 식탁의 스타인 후보 곁에는 트럼프 후보의 군사 보좌관인 마이크 플린 전 육군 중장이 자리했다. 그는 이슬람을 ‘암적 존재’라고 부른 인물이다.

영국에선 반전 단체 ‘전쟁 저지 연합’이 영국의 참전에만 반대할 뿐 러시아의 시리아 병원 공습을 비난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소련과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옹호한 셰이머스 밀느가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발탁되는 시대다. 더구나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지 줄리언 어산지는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숨어 지내면서 기꺼이 러시아의 지령을 따른다.

위키리크스의 자료 분석가로 활동한 적 있는 제임스 볼은 “어산지에겐 세계 무대에서 민주주의 실적이 의심 스런 푸틴 같은 독재자에 대한 이 본질적으로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자료를 분석한 뒤 ‘서방에 피해를 주고 러시아에 이득이 되는 내용이 많다’고 결론지었다.

푸틴의 마법에 걸린 인물이 영어권의 좌익에 국한된다면 현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그들의 천진난만함 때문이라고 봐줄 수 있다. 비밀경찰이 자기 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러시아의 폭정을 관대하게 봐주기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푸틴을 동경하는 고질병은 전체주의의 압제를 경험한 나라에 사는 좌익 인사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독일 보험사 베를린 디렉트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독일의 극좌, 극우 정당 둘 다의 당원 중 3분의 1은 자국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좌익 성향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받아들이라고 거듭 촉구한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에 강하게 반대했다.

왜 그토록 많은 좌익 인사들이 유독 푸틴에게 약할까? 그 답의 일부는 러시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영향력은 세계 전역에 미쳤다. 스탈린주의의 독이 아직도 세계 곳곳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스며들어 있다. 내년은 볼셰비키(소련공산당의 전신인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정통파)가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10월 혁명이 100주 년을 맞는 해다. 지금은 낡고 부적절해 보이지만 10월 혁명은 그 독성 유산을 좌익에게 남겼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아직도 그 독성을 제거하지 못했다.

옛 소련은 75년 동안 존재하면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도 서방 지식인 중 상당수는 소련을 ‘진보적인 국가’로 평가했다. 소련이 뿌린 피가 그토록 많았지만 최소한 경제를 국유화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소련 공산당 지도부가 노동운동을 금지하고 근로계층을 노예로 전락시켰지만 공산주의는 여전히 잘 먹혀들었다. 공산당 지도부가 부르주아 계급을 완전히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동조자들은 설명했다. 그들은 공산당 정권이 최고이며 국가 중심의 계획 경제를 해체하지만 않는다면 공산당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제학적 주장은 지금의 크렘린엔 적용되지 않는다. 푸틴의 러시아는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보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한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독트린이 더 신뢰 받는 ‘초자본주의’ 국가다. 갈수록 가난해지는 러시아 대중이 호사하는 부호들을 떠받치는 도둑 정치 체제다.

하지만 사실은 오래된 습관이 새로운 형태로 지속될 뿐이다. 서방의 지식인이 옛 소련을 잘 봐준 것은 공산당 지도부가 지구상의 모든 불쌍한 사람을 위한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크렘린도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겨냥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는다.

푸틴의 러시아를 흠모하는 좌익 인사들에겐 과거 공산주의 경제가 맡았던 역할을 반미주의가 대신한다. 그들은 반미주의의 기치 아래 러시아의 어떤 범죄, 어떤 침략행위, 어떤 만행도 무조건 허용한다.

- 제임스 블러드워스



[ 필자는 영국의 정치 블로그 편집자를 지냈으며 저서 ‘능력주의의 허구(The Myth of Meritocracy)’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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