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기술업계도 받은 만큼 이제 베풀어야

기술업계도 받은 만큼 이제 베풀어야

디지털화와 소프트웨어로 일자리 수백만 개 사라지면서 실리콘밸리도 마침내 사회적 책임 느끼는 듯
자율주행 택시와 트럭을 운영한다는 우버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많은 운전 기사의 생계 수단을 빼앗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기술 전문가들이 가상현실(VR)을 개발하려고 그토록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를 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현실이 아닌 VR의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다. 기술업계가 트럼피즘(Trumpism, 트럼프의 극단적인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에 기여한 데 대해 확실히 책임지는 것이다. 만약 기술이 일으킨 모든 와해를 우리 사회가 극복할 수 있도록 기술업계가 더 잘 도왔다면 트럼프의 팬은 그처럼 많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고양이가 목욕을 싫어하듯이 기술업계의 리더들은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갑자기 미국 대선의 아수라장에 뛰어들어 트럼프에 반대하는 연대전선을 구축했다.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링크드인의 창업자 레이드 호프먼은 누군가 나서서 트럼프의 소득세 신고 내역을 공개하면 500만 달러를 참전군인 단체들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오래 전 아이튠스보다 10년이나 앞서 리얼네트웍스를 창업한 롭 글레이저는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계를 세세히 파헤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기술업계 리더 약 150명이 서명한 공개 서한은 “우린 미국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반대하며 미국의 기술산업을 일으킨 이상을 포용할 수 있는 후보를 원한다”고 선언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거꾸로 가는 사람이 있었다. 예를 들어 페이팔 공동창업자 겸 페이스북 이사인 억만장자 벤처 투자가 피터 틸은 트럼프에게 후원금 125만 달러를 건네 실리콘밸리에서 공분을 샀다.

기술은 언제나 효율성과 자동화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은 기술이 ‘와해’를 최상의 가치로 추구했다. 뭔가를 더 낫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방식을 무너뜨린 뒤 완전히 다르고 디지털화된 것으로 대체한다는 뜻에서 ‘와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가이자 넷스케이프를 창업한 마크 앤드리슨이 말했듯이 지금은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집어삼키는 세상이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소프트웨어는 기술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의 생계도 먹어치운다. 트럼프 후보의 유세 중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기술업계 리더들이 와해성을 치열하게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체적인 사회의 그림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목재 회사는 벌목한 수 만큼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나 구글이나 아마존은 자신이 파괴한 수 만큼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율 주행 택시와 트럭을 운영하는 것이다. 운전 기사 수백만 명의 생계 수단을 빼앗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기술업계는 다른 생각 없이 와해성 기술 개발에만 줄기차게 매달리면서 사회가 자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사회가 와해성 기술에 따른 일자리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면 실리콘밸리는 근로자들에게서 일자리가 없다는 불평이 나오지 않도록 기본 소득을 보장해 보조금을 지불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기술혁신은 우리 모두에게 무수한 혜택을 안겼다. 반이민·반무역·반진보를 목청 높여 외치는 트럼프 지지자도 자신의 아이폰이나 페이스북 계정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것이다. 또 그들은 뉴욕 주 로체스터에 있는 필름 공장의 일자리 수천 개를 보존하기 위해 코닥 인스타매틱 카메라로 옛날식 사진을 찍으려 하진 않는다. 역사는 혁신과 자동화가 언제나 더 나은 생활수준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는 발전과 진보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 사회 구성원 중 일부는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낙오되기도 한다. 기술 전문가는 그런 부작용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트럼프가 그것을 그들의 문제로 만들고 있다.

기술은 이번 대선의 저질스런 분위기와 분열상에 책임이 크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기술은 미국인이 오랫동안 정치를 두고 서로 대화해온 방식을 와해시켰다. 아니 없애버렸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지 모른다. 과거 거의 모두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매체를 읽거나 듣거나 봤을 땐 그 매체는 공정성을 유지할 책임을 느꼈다. 시민적인 이유 외에 기업적인 이유도 있었다(정치적 견해가 다른 고객이 절반을 차지하는데 그들을 기분 상하게 만들면 사업에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좋아하든 싫어하든 양쪽의 이야기를 전부 접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줄 뉴스를 더 많이 선택해줄수록 우리의 편향된 선호에 맞는 뉴스만 더 많이 보게 된다. 사진은 북극 근처에 있는 페이스북의 데이터센터.
그러나 기술이 미디어를 와해시키고 훨씬 더 좁은 조각으로 나눴다. 그런 시장에서 틈새 매체는 자신만의 고객에게 호소력을 갖는 게 더 이익이다. 요즘은 그런 틈새 매체가 장사가 잘 된다. 따라서 모두 자신만의 정보에 파묻혀 국론 분열을 악화시킨다. 페이스북은 자신의 목소리를 메아리로 듣는 개인용 반향실로 우리를 몰아넣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SNS의 알고리즘은 공정성이나 동등한 시간 또는 예의바름이 아니라 오로지 ‘페이지 뷰’(돈을 번다는 뜻이다)에 최적화돼 있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줄 뉴스를 더 많이 선택할수록 우리의 편향된 선호에 맞는 뉴스를 더 많이 보게 된다.

그 결과가 어떠냐고?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는 “199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모두에서 대다수가 상대 당에 관해 아주 비우호적인 견해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에서 81%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지지자들이 정책만이 아니라 ‘기본 사실’을 두고서도 정반대로 갈린다고 말했다. 기술이 그처럼 오염된 주장을 만들어내는 수단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사상 최초로 입증 가능한 사실마저 파당적인 믿음으로 전락했다.

기술업계가 만약 트럼프의 패배에 도움을 줬다고 해도 그가 유발한 기본적인 정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술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더 디지털화하고, 온라인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소프트웨어의 노예가 되면서 전체 상황은 더욱 추악해질 것이다. 근로자들은 인공지능(AI)의 헤드라이트를 빤히 쳐다보며 자신이 거기에 곧 치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별도의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고졸 이하 학력을 가진 미국인 5명 중 1명은 소프트웨어에 일자리를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고 믿는다. 그건 불안이 아니라 공포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 기술업계가 그런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는 조짐이 있다. IBM·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페이스북은 최근 공동으로 책임감과 의무감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AI 파트너십’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 기구의 공동의장을 맡은 구글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앞으로 우리는 사려 깊고 긍정적이며 윤리적인 방식으로 이 분야에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관련 업체들이 그 약속을 이행하기를 기대한다.

기술업계의 일부는 페이스북 등의 기업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변화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업투자회사 제너럴 캐털리스트 파트너스의 헤만트 타네자는 “기술업체가 개발한 알고리즘은 대개 올바른 일을 하거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에는 최적화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관행을 고쳐야 한다. 그런 기업들이 앞장 서서 자사 서비스에서 알고리즘의 책임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10월 중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열린 백악관 프론티어 컨퍼런스의 개막 연설에서 이 문제를 비중 있게 짚었다. 그는 기술과 과학계 인사들에게 기술이 제기하는 문제를 기술업계가 적극 해결해야 하며, 그것이 장기적으로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러분이 전문 분야에서 모든 일이 더 빨리 더 유연하게 이뤄지는 데 익숙해져 행여나 정부의 일에 낙담하고 ‘정부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적극 뛰어들어 이 문제와 씨름할 생각이 없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논쟁하거나 완벽하진 않지만 더 나은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지속할 공간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술업계가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거나 능력이 안 된다면 반기술을 부르짖는 트럼피즘을 계속 만들어낼 뿐이다. 따라서 기술업계는 적극 나서서 문제 해결에 매달려야 한다. 그게 싫다면 VR 개발에 한층 더 노력해 앞으로 가상 세계에서 사는 게 나을 것이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하나은행, 은행권 최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금 지급

2행안부 “전국 18개 투·개표소 불법카메라 의심 장치 발견”

3 "전국 18곳 사전투표소 등지서 '몰카' 의심 장치 발견"

4토스뱅크, 2개 분기 연속 흑자 달성…‘1000만 고객’ 목전

5전동화 시대에도 인정받는 볼보...EX30, ‘세계 올해의 도심형 자동차’ 선정

6‘따뜻한 자본주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14년 연속 배당금 전액 기부

7‘바람의나라’부터 ‘데이브’까지 30주년 맞은 넥슨…그간 기록들 살펴보니

8미국투자이민, 미국 유학생들에게 기회 되나∙∙∙국민이주, 13일 미국영주권 설명회

9KT, 파트너사와 소통·협업으로 AICT 기업 도약 나선다

실시간 뉴스

1하나은행, 은행권 최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금 지급

2행안부 “전국 18개 투·개표소 불법카메라 의심 장치 발견”

3 "전국 18곳 사전투표소 등지서 '몰카' 의심 장치 발견"

4토스뱅크, 2개 분기 연속 흑자 달성…‘1000만 고객’ 목전

5전동화 시대에도 인정받는 볼보...EX30, ‘세계 올해의 도심형 자동차’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