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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자유의 꿈을 싣고

휠체어에 자유의 꿈을 싣고

시리아 장애인 난민 소녀 누진 무스타파, 독일까지 험난한 탈출 여정 그린 책 펴내
언니, 조카들과 함께한 누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그녀는 가족과 함께 시리아를 탈출해 9개국을 거쳐 독일에 정착했다.
그때 난 바다를 처음 봤다. 알레포(시리아 북부 도시)에서는 아파트 5층 우리 집에서 나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날씨 좋은 여름 날에는 소형 모터 보트로 1시간 남짓이면 보스푸루스 해협을 건널 수 있다고 들었다. 약 13㎞의 이 뱃길은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최단경로다. 하지만 난민이 이용하는 보트는 모터가 낡아빠진 싸구려인 데다 승객을 50~60명씩 태우다 보니 속도를 제대로 못 내 보통 3~4시간 걸렸다. 파도가 3m까지 치솟는 비 오는 밤이면 보트가 장난감처럼 뒤집혀 승객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해안이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밭이어서 내 휠체어로는 지나가기 힘들었다. ‘소형 고무 보트, 중국산(최대 탑승인원: 15명)’이라는 문구가 인쇄된 찢어진 판지 상자와 해변에 버려진 난민들의 소지품이 우리가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걸 말해줬다.

난 4명의 언니 중 2명(나다와 나스린)과 함께 이 여정에 올랐다. 나다는 갓난 아기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왔다. 사촌 몇 명도 같이 왔다. 그들의 부모는 지난 6월 코바니(시리아 북부 도시)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IS 대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모두가 더위와 피로에 지쳤다. 휠체어가 내게 너무 커서 양쪽 팔걸이를 꼭 붙잡다 보니 팔이 몹시 아팠다. 덜컹거리는 휠체어 위에서 엉덩이는 멍 투성이가 됐다. 난 우리가 지나는 곳마다 떠나기 전 내가 그곳에 대해 찾아본 정보를 언니들에게 알려줬다.

터키 고대 도시 아소스 언덕 밑에 다다랐을 때 마음이 설렜다. 아테나 여신의 신전 유적이 있고 한때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니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난 언니들에게 그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알려주는 걸 포기하고 하늘 높이 나는 갈매기들을 바라봤다.

나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스린은 떠나기 전 오빠가 준 삼성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밀입국 알선업자가 알려준 구글 맵 좌표를 우리가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해변에 도착해보니 알선업자가 알려준 곳이 아니었다. 업자마다 정해 놓은 ‘지점’(난민들을 만나 배를 태워주기로 한 약속 장소)이 따로 있는데 우린 다른 지점에 도착했다.

우리는 또 다른 언덕으로 다시 올라갔다. 경사가 급해 몹시 힘들었다. 발이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죽은 목숨이었다. 게다가 바닥에 울퉁불퉁 솟은 바위 때문에 휠체어를 밀 수가 없어서 식구들이 나를 번쩍 들어서 옮겨야 했다. 사촌들은 “여왕 마마 납셨네, 누진 여왕 마마!”라며 나를 놀려댔다.
누진 / 누진 무스타파, 크리스티나 램 지음 / 윌리엄 콜린스 펴냄
알선업자와 약속한 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올리브 나무 숲에서 밤을 보냈다. 해가 지자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나스린이 우리가 갖고 온 옷을 몽땅 꺼내서 내 자리에 깔아줬지만 돌이 많은 땅바닥은 딱딱했다. 하지만 평생 밖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는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곯아떨어졌다.

아침은 각설탕과 누텔라(빵에 발라 먹는 초코 스프레드)로 때웠다. 단 걸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겐 환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먹을 게 그것뿐일 때는 끔찍하다. 밀입국 알선업자들이 이른 아침에 배를 태워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우린 동틀 무렵 구명조끼를 입고 해변에서 기다렸다. 휴대전화는 헬륨을 넣어 부풀린 풍선에 묶어뒀다. 배를 타고 갈 때 물에 젖지 않게 보호하는 방법으로 이즈미르(터키 서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 있을 때 배웠다.

업자들이 알선 비용으로 받는 돈은 1인당 1000달러지만 우리는 보트에 우리 가족만 탄다는 조건으로 1인당 1500달러를 지불했다. 하지만 보트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어른 27명, 어린이가 11명, 총 38명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간 마당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배를 타겠다고 해놓고 마음을 바꾸는 난민들에게 업자들이 칼과 소몰이 막대를 휘두른다는 소문도 들었다. 하지만 바다라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난 드디어 배를 타고 그 위를 달릴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멋진 모험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말이다.

난민 중엔 우리 같은 시리아인뿐 아니라 이라크, 모로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있어서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날이 밝자 첫 번째 보트가 출발했다. 보트에는 기관사가 따로 없었다. 알선업자들은 승선한 난민 중 1명에게 비용을 절반만 받거나 아예 받지 않고 보트를 조종하게 했다. 보트 조종 경험이 전혀 없어도 상관없다면서 “오토바이 모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간혹 보트를 너무 빨리 몰아 해협을 절반밖에 안 건넜을 때 연료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럴 때는 터키 해안경비대가 보트를 다시 터키로 끌고 온다.

오후가 되자 파도가 점점 높아져 해안에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난민 중에 밤에 배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제트스키를 탄 해적들이 배에 올라타 모터나 난민들의 귀중품을 훔쳐간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되자 업자들은 해안경비대의 교대 시간을 틈타 배를 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난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안개가 내려앉으면서 갈매기 울음소리가 더는 즐겁게 들리지 않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주변을 뒤덮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뱃길을 ‘죽음의 항로’라고 부른다. 그 길은 우리를 유럽까지 데려다 줄 수도 있지만 죽음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난 처음으로 덜컥 겁이 났다. 시리아에 있을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브레인 게임(Brain Games)’ 시리즈를 자주 봤는데 뇌가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난 거기서 말한 대로 숨을 깊게 쉬면서 ‘난 강하다’고 스스로를 수없이 타일렀다.

- 누진 무스타파, 크리스티나 램



[ 이 기사는 휠체어를 타고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 소녀 누진 무스타파(17)가 영국 언론인 겸 작가 크리스티나 램과 공동 집필한 ‘누진(Nujeen: One Girl’s Incredible Journey From War-Torn Syria in a Wheelchair)’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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