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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북정책 지형도 바뀌나] 정밀 타격 vs 햄버거 협상

[美 대북정책 지형도 바뀌나] 정밀 타격 vs 햄버거 협상

달라진 트럼프 “한국과 100% 함께”... 北, 핵보유국 지위 확보 의욕
‘미국 국민이 선택해야 할 후보는 우둔한 힐러리가 아닌 현명한 트럼프’. 미 대선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지난 6월 초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한 선전용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트럼프는 ‘막말 후보’나 ‘괴짜 후보’가 아닌 현명한 정치인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대통령 후보감’이란 주장에는 북한의 강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입장 표명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 트럼프가 과거 김정은을 “미치광이 같다”고 비난하며 “빨리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언급까지 내놓았었다는 점에서다.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피해가는 게 절박한 문제였다. 결국 자신들이 ‘최고 존엄’이라고 떠받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판한 트럼프 쪽으로 북한은 줄을 섰다.

미 대선 결과는 김정은과 북한 당국의 뜻대로 결론 난 셈이 됐다. 이변이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국가들과 달리 평양은 자신들의 희망대로 결과가 나왔다면서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외무성의 미국통들은 향후 전개될 대미 현안을 점검하고 새 전략을 짜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이 펼쳐온 대북 압박책이 지속될 것을 우려했던 김정은도 내심 안도할 수 있다.

한껏 고무된 북한 권력 내부의 분위기는 노동신문 행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당선 확정 이튿날인 11월 10일자 노동신문 논평은 ‘미국이 바라는 조선(북한)의 핵 포기는 흘러간 옛 시대의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바마 정부의 대북 노선인 ‘전략적 인내’를 거론한 후 ‘내년 집권할 새 행정부에 주체의 핵 강국과 상대해야 할 더 어려운 부담을 들씌워 놓은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를 상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해보겠다는 의욕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동안 번번이 미국 측에 무시당하고 압박을 받았던 한을 풀겠다는 기세다.
 北, 힐리러보다 트럼프가 낫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북한의 숙원처럼 여겨온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될 수 있으리란 기대에 부풀어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한국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지난 5월 주한미군 주둔 비용과 관련해 트럼프는 CNN에 “100%는 왜 안돼냐”는 언급을 했다. 현재 한국이 50% 수준을 내는 것으로 알려진 분담금 비율이 자신의 뜻대로 관철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까지 빼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트럼프는 앞서 3월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럴 의향도 있다”고 철군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는 건 북한에 성급한 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다가올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거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당선자로서의 그는 말과 행동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낼 공산이 크다. 주목되는 건 트럼프의 대북인식이다. 물론 대선기간 중 트럼프가 쏟아낸 북한 관련 발언은 오마바 정부의 대북제재 드라이브와 궤를 달리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지난 6월 조지아주 애틀란타 유세 때 트럼프는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날 것”이라며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더 나은 핵 협상을 할 것”이란 말도 했다. 북한으로서는 솔깃할 수 있는 얘기다.

중요한 건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언술이 아닌 트럼프의 진짜 속내다. 그가 정치인으로 걸어온 궤적을 되짚어가면 꽤나 강경한 대북입장을 갖고 있는 대목과 마주친다. 트럼프는 지난 2000년 개혁당 후보 출마 때 펴낸 책 [우리에게 걸맞는 미국(The America We Deserve)]에서 북한의 원자로를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핵 전쟁을 원치 않지만 협상이 실패한다면 북한이 (미국에) 실질적 위협을 주기 전에 무법자들을 겨냥한 정밀 타격을 하는 걸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민에게 피해를 가하려 한다면 대북 선제타격도 선택 가능한 옵션이란 얘기다.

북한은 트럼프 유세기간 중 미국에 대한 핵 위협 공세에 어느 때보다 목청을 높였다. 김정은이 직접 나서 미군기지가 있는 괌을 지도상에서 없애버리겠다거나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공갈을 퍼부었다. 정부 당국자는 “시도 때도 없이 계속돼온 ‘서울 불바다’ 등 대남위협에 무덤덤한 우리와 달리 미국의 경우 핵 타격 같은 북한의 위협을 실제적이고 임박한 것으로 받아들여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당선 직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이나 대북관도 관심을 끈다. 트럼프는 “미국은 한국과 100% 함께 할 것”이라며 “북한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과의 전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후보 때와는 확 달라진 분위기다.

북한 김정은은 당선인 트럼프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탐색전을 벌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6차 핵 실험 같은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헛발질로 트럼프의 눈 밖에 나는 건 전략상 손해일 수 있다는 판단 정도는 섰을 것이란 얘기다. 대신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적절한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 트럼프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들고 나올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강도 높은 도발 행보를 이어갈 것이란 견해도 제시한다. 김정은이 자신이 구상해온 핵 무기 보유와 미사일 개발 로드맵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대미 협상에 써먹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란 주장이다.
 김정은의 대미접근 전략 조언할 인물 마땅찮아
문제는 북한 권력 내부에 김정은의 대미접근 전략을 짜고 조언해 줄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1994년 10월)를 포함해 김일성·김정일 시기부터의 대미외교 틀을 짜온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지난 5월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온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와병 중이라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첩보다. 김정은의 스위스 조기유학 시절 후견인이던 이수용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유럽통으로 분류된다. 최근 외무성 미국국장이던 한성렬을 부상(차관)에 앉히고, 후임에 최선희 부국장을 임명했지만 대미라인의 무게는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다. 집권 5년차에 걸쳐 공포정치를 지속해온 김정은 앞에서 노동당과 내각의 엘리트들이 이런저런 훈수를 두기 꺼린다는 점도 문제다. 절묘한 수위조절을 통한 ‘트럼프 다루기’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좌충우돌하는 듯한 성격이나 거침없는 언사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어 보인다.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할 경우 햄버거를 먹으며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반면에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행보가 되돌아 갈 수 없는 수준까지 너무 멀리 왔다는 지적이다. 평생 사업가로 살아온 트럼프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김정은에게 실망한다면 언제든지 부도처리 해버릴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에 김칫국부터 들이키기엔 김정은이 넘어야 할 산이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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