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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대지진으로 부활한 르위에탄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대지진으로 부활한 르위에탄

타이완의 대표 홍차 … 새로운 고급 품종 개발해 인기
타이완 8대 명승지 르위에탄 호수.
르위에탄(日月潭)홍차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10대 명차다. 반발효차인 청차(靑茶)가 대세인 타이완에서 청차가 아니면서도 10대 명차에 선정된 유일한 차가 르위에탄 홍차다. 타이완은 1590년 포르투갈 사람이 일하 포르모사(Ilha Formosa)라고 부르며 아름다운 섬으로 서양에 알려졌다. 그 후 동서양 열강의 끊임없는 침탈을 겪어온 타이완은 중국 공산당에게 패퇴한 장제스 총통이 1949년 12월 7일 국민당정부를 타이완으로 옮기면서 현재 공식 명칭이 ‘중화민국’이다.
 타이완 8대 명승지에서 생산
야자수에 둘러싸인 다원.
르위에탄 홍차의 주요 생산지는 타이완 중부 난터우푸리와 위츠샹 일대다. 해발 748m에 위치한 타이완 최대 담수호인 르위에탄을 중심으로 해발600~800m 산악지대에 산개한 야자수 아래 재배되는 대엽종 차 나무 잎을 채취해 생산된다. 르위에탄 홍차 맛은 인도와 스리랑카에 비해 깔끔하고 감미롭다. 연평균 기온 19.7°C를 유지하는 아열대성 기후와 연간 강우량 3000mm에 육박하는 르위에탄은 아삼(Assam) 대엽종 차나무 성장의 최적지다. 둘레 37㎞의 르위에탄은 타이완의 8대 명승지다. 르위에탄은 대만 원주민 샤오족이 살았던 라루도의 북쪽 지형과 반달처럼 생긴 남쪽을 기점으로 르탄(日潭)과 위에탄(月潭)으로 구분한다. 일본 식민지 시절 수력발전을 위한 15km가 넘는 지하수로를 만들어 르위에탄에 물이 유입되게 하는 바람에 라루도가 대부분 잠기면서 샤오족은 타지로 이주했다.

르위에탄 홍차가 생산되기 30년 전,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1895년 4월 17일부터 타이완을 식민지로 통치했던 일본은 타이완 남부에서 홍차를 만들어 러시아와 터키로 수출했다. 인도 아삼지방에서 소엽종을 가져와 만든 홍차는 영국 런던의 경매장에서 저급한 차로 평가받았다. 1910년 타이완 차 주식회사를 설립한 일본은 기계식 제다방법을 도입해 경영난을 극복하려 했지만 일본 자국에서도 타이완 홍차는 인기가 없었다. 1925년 12월 일본인이 인도 아삼 대엽종 묘목을 가져와 아삼지역과 재배환경이 비슷한 르위에탄 일대에 심기 시작하면서 르위에탄 홍차가 탄생했다. 타이완 토종과 접목해 개량종을 만들어 맛있는 홍차가 나오며 르위에탄 홍차의 주가도 올라갔다. 일본의 재벌기업 미쓰이합명회사가 타이완 차 주식회사를 합병해 고급 홍차 생산에 주력했다.

르위에탄 홍차는 일본 천황에게 진상하는 귀한 품목이 됐다. 생산지역이 확대된 1940년 수출량이 1000t을 넘어가며 일본이 수출한 타이완 최고의 품목으로 부상했다. 소엽종 대신 대엽종을 선택한 일본의 판단은 적중했지만 영국의 입김에 밀려 인도와 스리랑카 홍차에 국제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타이완 청차가 대내외적으로 인기가 높아지며 홍차산업은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르위에탄 홍차는 51년 동안 지속된 일본의 타이완 지배가 1945년 10월 24일 끝났어도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홍차 대신 관광지로서 르위에탄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1949년부터 장제스 총통은 르위에탄의 아름다움에 반해 라루도가 보이는 한삐루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했다. 원래 한삐루는 1916년 이또라는 일본인이 개인 별장으로 지은 것을 1919년 2층으로 증축하며 일본 총독부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975년 장제스가 사망한 이후 별장 옆에 들어선 호텔 한삐루의 사장은 장제스가 머물렀다는 후광을 입은 ‘한삐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중국의 대부호에게 2조700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2년 동안에 걸친 가격협상 속에서도 단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는 일화가 한동안 회자됐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한삐루’ 호텔이 그 결과물이다.
 주력이던 청차 생산은 줄어
르위에탄 홍차의 탕색(왼쪽)과 르위에탄 홍차.
르위에탄 홍차 만들기 체험관광으로 명맥을 겨우 유지해오던 홍차산업은 1999년 9월 21일 타이완 중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타이베이 남서쪽 150㎞, 화리엔 서남쪽 50㎞ 지점 난터우현을 진앙으로 1분쯤 계속된 리히터 규모 7.7도의 강진과 30여분 동안 200여 차례 이어진 여진으로 2415명이 사망했다. 건물 1만5000여동이 붕괴되거나 피해를 입었다. 연말까지 700여 차례의 여진과 6차례의 강진이 발생했다. 반도체와 PC를 생산하는 타이완의 실리콘밸리도 큰 피해를 입어 세계적으로 반도체 가격이 급상승했다. 진앙지인 난터우현의 차밭은 쑥대밭이 됐다. 국가 차원의 피해복구사업으로 타이완 행정원 다업개량장이 최고급 홍차 생산 전면에 나섰다. 엉망이 된 난터우현 위츠샹 차밭에 미얀마 아삼종과 타이완 토종을 접목한 ‘홍옥’ 품종을 개발해 르위에탄 홍차의 새 시대를 열었다. ‘홍옥’은 기존의 르위에탄 홍차와 다른 우아한 민트향이 매력 포인트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차농들이 손으로 채취해 차를 만들었다. 다업개량장은 연이어 신품종 ‘홍운’을 개발해 고품질 홍차 시장을 선도했다. 현재 난터우현 일대 차 생산지의 면적은 약 1815㏊에 달한다.

르위에탄 홍차의 약진에 힘입어 청차를 만들던 다른 지역도 홍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덖거나 찌는 열처리 과정 없이 저온 발효공법을 사용하는 홍차 제조법은 별 차이 없지만 청차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우롱(烏龍)’ 품종으로 만든 홍차와 르위에탄 홍차의 등급은 많이 다르다. 타이완 홍차 소비는 연 9000t이지만 타이완 홍차 생산량은 연 1000t에 불과하다. 밀크 티와 같은 홍차 혼합 음료용으로 스리랑카와 베트남에서 8000t 정도의 홍차를 수입한다. 타이완에서 생산하는 홍차는 우려 마시는 정통차로 사용된다. 그중 으뜸이 르위에탄 홍차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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