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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남자만 썼던 그 시절을 고발한다

기사는 남자만 썼던 그 시절을 고발한다

1960년대 뉴스위크의 직장 내 성차별 다룬 아마존 방송의 드라마 ‘굿 걸스 리볼트’… 시대극이지만 요즘 상황과 동떨어지지 않아
‘굿 걸스 리볼트’는 1970년 뉴스위크를 상대로 성차별 소송을 제기한 여성 46명 중 1명인 린 포비치의 책을 바탕으로 했다.
50년 전이라면 지금 이 기사는 남자 기자가 썼을 것이다. 나 같은 여기자는 조사 작업을 하거나 기사 작성을 보조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남자들이 자기 이름으로 기사를 내고 저널리스트로 입지를 다져나갈 때 여자들은 기사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당시 뉴스위크는 여자에게 기사를 맡기지 않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이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1970년 46명의 여직원이 뉴스위크를 성차별로 고소할 때까지.

당시 뉴스위크의 일부 여직원이 신여권주의의 기치 아래 행동에 나섰다.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소송을 제기한 여직원 중 한 명인 린 포비치는 “그들은 여성이 그런 식으로 취급당해서는 안 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마존 방송의 드라마 시리즈 ‘굿 걸스 리볼트’는 포비치의 2012년 저서(‘The Good Girls Revolt: How the Women of Newsweek Sued Their Bosses and Changed the Workplace’)를 바탕으로 했다.

1960년대 뉴스위크 여직원 대다수가 우편 심부름을 하거나 조사원 또는 취재보조원으로 일했다. 기사 작성은 거의 모두 남자 기자가 맡았다. 포비치는 당시 수습기자로 승진한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다른 수십 명의 동료 여직원은 낮은 직급에 머물렀다. 1969년 조사원 주디 진골드가 친구의 친구인 변호사로부터 이런 상황이 불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964년 제정된 연방 민권법 제7조에 위배된다는 설명이었다. 뉴스위크의 일부 여직원은 비밀리에 조직을 결성해 당시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의 법률 부책임자 엘리너 홈스 노튼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즈음 미국 사회에서 여성해방 운동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뉴스위크 편집 간부들은 이 이야기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적어도 ‘이 기사는 여자가 써야 한다’는 걸 알 만큼은 깨어 있었다. 그래서 뉴욕포스트의 헬렌 듀더에게 기사를 의뢰했다.

뉴스위크는 듀더의 기사를 1970년 3월 16일자 커버 스토리로 실었다. 밝은 노란색 바탕에 붉은 기 도는 나체 여성의 실루엣이 표지 이미지로 쓰였다. 그녀는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푸른 색)의 동그라미 속으로 주먹을 꽉 쥔 한쪽 팔을 높이 쳐들고 있다. 뉴스위크 여직원들은 그날 아침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행동은 진보 언론을 자처하는 뉴스위크에 큰 타격을 줬다. 그 후 회사와 여직원들 사이에 수개월 동안 협상이 진행됐지만 1972년 2차 EEOC 소송이 제기된 후에야 진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굿 걸스 리볼트’는 처음부터 회사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혁명적인 여직원들의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뉴스 오브 더 위크’(뉴스위크를 빗댄 이름)라는 잡지에서 기사 취재에 열을 올리는 여기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주인공 3명은 각자 직장생활에서 좌절을 겪으며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시대극이다. 철컥거리는 타자기와 쉴 새 없이 따르릉거리는 전화기 소리로 요란한 편집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과 그렇게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이 드라마의 책임 프로듀서인 데이나 캘보는 “트럼프의 녹음 파일을 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빌리 부시와 대화 중에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액세스 할리우드’의 녹음 테이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성희롱 혐의로 사임한 폭스 뉴스 CEO 로저 에일스에 관한 이야기 또한 언론계에 얼마나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한가를 상기시킨다.
1970년 3월 16일자 뉴스위크 영문판 표지. 1970년 미국 사회에서 여성해방 운동이 맹위를 떨치자 아이러니컬하게도 뉴스위크는 그 이야기를 커버 스토리로 실었다.
올해 초 한 노조 분석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과 마켓워치, 배런스 등 다우존스 그룹의 매체에서 일하는 풀타임 여성 근로자는 풀타임 남성 근로자가 1달러를 벌 때 약 87센트를 번다. 또 보도 부문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30명 중 여성은 7명뿐이다. 인디애나대학의 연구를 보면 다우존스만 그런 게 아니다. 2012년 미국 언론계의 여성 근로자 중간소득은 남성의 약 83%에 불과하다.

여성 미디어 센터(WMC)의 줄리 버튼 회장은 WMC의 보고서 ‘2015년 미국 언론에서 여성의 지위’ 서문에서 “각종 언론 매체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였다. ‘언론계 종사자의 성비로 볼 때 여성이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기사 보도 임무를 맡는 비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저녁 뉴스 방송에서 여성이 뉴스를 진행하는 시간은 전체의 32%이며 인쇄 매체에서 여성이 기사를 작성하는 비율은 37%다. 또 인터넷 매체에서 여성이 기사를 쓰는 비율은 42%이며 통신사의 경우는 38%에 불과하다.”

제시카 베넷을 비롯한 뉴스위크 여직원 3명은 포비치의 책이 나오기 몇 년 전 과거 여자 선배들의 소송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이 여성들 역시 직장생활에서 좌절을 겪고 있었다. 이들은 1960년대 뉴스위크의 ‘인형들(dollies)’(당시 남자 직원들이 여자 동료들을 이렇게 불렀다)이 겪었던 것처럼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남자 동료들보다 승진이 느리고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도 더 적었다. 심지어 여기자가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기사 작성은 남자 기자에게 맡기는 경우까지 있었다.

베넷은 자신의 신저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Feminist Fight Club: An Office Survival Manual for a Sexist Workplace)’ 홍보 차 보스턴에 들렀을 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직장 내 성차별 여부를 식별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여자라서 이런 일을 겪는 건지 아니면 개인적인 문제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녀는 뉴스위크에서 자신이 겪은 일과 여자 선배들의 소송, 그리고 2010년 동료 여기자들과 함께 쓴 기사 ‘젊은 여성, 뉴스위크, 그리고 성차별(Young Women, Newsweek, and Sexism)’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2012년 뉴스위크를 그만둔 베넷은 “선배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싸움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다시 똑같은 싸움을 반복한다.”

현재 뉴스위크 편집국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은 3분의 1을 약간 웃돈다. 기자 중 약 45%, 편집 책임자 7명 중 2명(이 중 1명은 현재 육아 휴직 중이다)이 여성이다. 올 들어 10월까지 실린 커버 스토리 41개 중 여자 기자가 단독 혹은 공동으로 쓴 기사는 19개였다. 지난해엔 커버 스토리 48개 중 19개를 여성이 단독 혹은 공동으로 썼다.

‘굿 걸스 리볼트’ 시즌 1은 변화가 빠르고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여주인공들의 좌절과 분노가 확실히 드러난다. 마지막 회는 그들이 소송을 제기하던 날을 묘사했다. “이제 우리는 그 행동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캘보는 말한다. 아마존 방송이 시즌 2를 방영한다면 시청자는 “주인공들이 시즌 1에서 다진 자신감과 단결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 스태브 지브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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