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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약 달이는 이의 정성 깃든 약사발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약 달이는 이의 정성 깃든 약사발

조선시대 약사발 백자로 만들어 … 쇠에 닿으면 약효 줄어드는 약재 많아
백자 중에서도 고급품인 청화백자 약사발. /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약사발’과 ‘밥사발’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약사발’과 ‘약대접’은 무엇이 다를까요? 옛날에 일반 백성들은 밥사발에 탕약을 따라 마시고 국그릇으로도 썼지만 왕실이나 사대부 집안에서는 약사발과 밥사발은 엄격히 구분해서 썼습니다. 사발이란 말 그대로 사기질로 만들어진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하얀 백자로 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달여진 한약에는 쇠에 닿으면 약효가 줄어드는 약재가 꽤 있기 때문에 약사발을 놋쇠나 백동 등의 금속으로는 잘 만들지 않습니다. 약사발은 아래보다는 위쪽이 약간 넓게 생겼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청화백자 약사발은 그릇 아래를 받쳐주는 굽이 높고 그릇 전체의 높이가 낮습니다. 이와 달리 밥사발은 굽이 거의 없고 높이가 약사발보다 높습니다. 약대접은 약사발에 비해 아래는 더 많이 좁고 위가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크기도 약사발보다는 더 큽니다. 바닥 부분의 굽은 약사발과 밥사발의 중간 크기 정도 됩니다.
 광해군 시절에야 사대부에도 백자 약사발 허용
고려시대의 약사발은 청자로 만든 것과 달리 조선시대의 약사발은 백자로 만들었습니다. 백자는 부드러운 고령토로 그릇을 만든 다음 투명한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어 섭씨 1300도로 구워낸 것입니다. 기록을 보면 세종(1418~1450) 때부터 백자를 주로 사용했는데, 왕실에서만 쓰게 하다가 광해군 시절인 1600년 초반에야 사대부에도 사용을 허가했다 합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 위계질서를 유지하느라 오랜 시간을 못 쓰게 했던 것입니다.

백자 중에서도 고급품은 청화백자(靑華白磁)입니다. 청화백자는 잘 만들어진 백자를 골라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투명 유약을 입혀 구워낸 것입니다. 고려 말까지는 중국에서 수입해 쓰다가 세조(1455~1468)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작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중국·베트남 외에 조선만이 청화백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은 1720년경인데 1752년부터는 광주군 낭종면 분원리에 있는 관요(官窯)가마에서만 구워냈습니다. 현존하는 조선 청화백자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만든 것이지요. 청화백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코발트색을 내는 안료입니다. 이 푸른 물감은 회회청(回回靑)이라고 하는데, 페르시아에서 생산해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수입된 것입니다. 가격이 금보다 비싸서 아무 도공이나 이 물감을 쓸 수는 없었고 왕실에서 운영하는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화원들만 쓸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조선 상류층의 사랑을 받은 이 청화백자는 이슬람문화와 연관이 됩니다.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라비아 의학은 중국으로 전파돼 영향을 끼치고 우리나라에도 일부는 소개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라비아 의학은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아라비안나이트에서도 나타납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저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인도와 페르시아의 설화집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페르시아왕인 샤리아르는 자기가 없는 새에 왕비가 흑인노예와 정분이 난 것에 격분해 처녀를 하룻밤에 한 명씩 새 아내로 맞고 첫날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에 죽입니다. 이로 인해 온 나라가 공포에 떨 즈음, 세헤라자드라는 처녀가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천일 동안 해주어 목숨을 구하고 새 왕비가 되는데 두 사람의 대화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이 묻습니다. “병은 무엇을 보고 진단하는가?” 처녀는 대답합니다. “병은 환자의 동작, 배설물, 환자의 성질, 통증의 위치, 부종,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를 보고 나을지 안 나을지를 판단합니다.”

이 대화는 아라비아 의학과 우리나라 한의학이 진단법에서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위의 여섯 가지 요소 중에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진단 방법이 몸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그 냄새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 입 냄새이지요. 한의학의 진단에서 입 냄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입 냄새의 70% 정도는 구강에서 납니다.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는 사람은 입안이 마르고 침의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입에서 불쾌한 냄새가 납니다. 충치나 잇몸에 세균이 감염돼 생기는 치주농루가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뇨제나 항히스타민제를 과용하는 환자들에게 선 비린내가 납니다. 위염·위하수 등의 소화기 질환이나 당뇨병이 있을 때에는 아세톤 같은 약품냄새가 나고요. 입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사람은 콩팥 기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심합니다. 편도선이 붓거나 축농증 등의 이비인후과 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가래 냄새가, 결핵성 임파선염이 있는 사람에게는 김빠진 맥주 냄새가 납니다. 이러한 병은 없어도 갈증과 피로감이 심하거나 배가 고플 때에도 구취가 심해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했을 겁니다.

한의학에서는 ‘구취자 위열야(口臭者 胃熱也)’라 해서 입 냄새의 가장 큰 원인을 위의 열로 잡습니다. 이때의 위는 위장뿐만 아니라 식도와 입을 다 포함한 개념입니다. 위(胃)에 열이 있으면 입과 목안이 마르고 눈에 충혈이 있으면서 소화 기능이 떨어집니다. 혀에 백태도 두껍게 낍니다. 이외에 폐나 심장에 열이 있어도 구취가 심해지기 때문에 증세는 비슷해도 환자의 체질과 원인에 따라 처방은 각기 달라집니다. 체질과 원인만 파악이 잘되면 심하고 오래된 구취도 한방 치료로 충분히 고칠 수 있습니다.
 입 냄새의 가장 큰 원인은 위의 열
구취가 심한 사람은 육류를 줄이고 수분과 섬유질이 많은 야채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양치 때는 혀를 잘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에는 반드시 혀의 뒤쪽도 닦아야 합니다. 금연은 필수입니다. 과식을 피하고 껌을 자주 씹어서 침의 분비가 많아지게 하는 것도 구취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한약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장 손쉽기로는 족두리풀을 진하게 달여서 수시로 가글링하는 것입니다. 족두리풀을 한약재 이름으로는 세신(細辛)이라고 하는데 구강청정제가 안 맞는 사람에게도 좋고 비염과 치통을 완화시켜주는 효능도 있습니다. 박하를 따뜻한 물에 우려내어 마시거나 머금고 있는 방법도 권할 만합니다. 유태인들의 교육서인 탈무드에도 보면 입 냄새가 심한 아내와는 이혼할 수 있다는 판결문이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에도 구취는 병 같지 않은 병인 것 같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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