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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 잃은 영국 보석상 거리

광채 잃은 영국 보석상 거리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중심지였던 런던의 해튼가든 지구가 아시아의 저렴한 기술자들과 세금 인상으로 부진의 늪에 빠져
해튼가든의 숙련 기술자들은 인도·중국·태국의 치열한 저가 판매 공세에 갈수록 밀려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상 거리 영국의 해튼가든은 한물간 노신사 같은 인상이다. 해튼가든과 악수를 나눠 보면 옷소매가 닳아 너덜너덜할 듯하다. 진열장 안에선 귀금속들이 번쩍거리지만 매장은 군색하다. 거리는 을씨년스럽고 본드 거리의 고급스런 보석상 앞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도어맨도 보이지 않는다.

대략 60개 매장과 300여 다이아몬드 딜러, 금세공업자, 시계기술자, 연마기술자, 장비업체로 이뤄진 이 지역에 찬바람 몰아친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북쪽으로 클라큰웰 로드와 남쪽으로 하이 홀본을 경계로 미로처럼 거리가 뻗어나간 이 지구는 나라 안팎에서 도전을 받는다.

해튼가든의 숙련 기술자들은 인도·중국·태국의 치열한 저가 판매 공세에 갈수록 밀려나고 있다. 50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이 런던 보석상 거리의 주얼리 제조업자들은 아시아 경쟁자들의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말하겠지만 그들은 인건비가 훨씬 적게 든다.

또 다른 압력은 영국 세무당국이다. 특히 사업소득세 개편으로 런던 중심부 사업체들의 세금이 대폭 인상된다. 반면 지난 10년 사이 상업지구 경기가 죽으면서 부진의 늪에 빠진 북부 도시의 세금은 인하됐다.
대략 60개 매장과 300여 다이아몬드 딜러, 금세공업자, 시계기술자, 연마기술자, 장비업체로 이뤄진 해튼가든에 찬바람 몰아치는 것 같다 해도 놀랍지 않다.
내년 4월 많게는 런던 리젠트가 사업장의 세율이 87% 인상되는 반면 볼턴과 블랙풀 같은 북부 도시에선 최대 56%까지 인하 혜택을 받는다. 사딕 칸 런던 시장은 세율 인상이 런던에 “치명타를 날린다”고 말했다. 해튼가든을 담당하는 캠던 보로(런던의 행정구)의 테오 블랙웰 의원은 “이 지역의 사업소득세율이 상당히 높아져 영국 최고의 수준”이라고 IB타임스에 밝혔다.

해튼가든 지구의 귀금속 사업은 지난 세기 초 그들이 자랑하던 공장 생산 시스템에서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다이아몬드 업체 드비어스는 1880년 영국 태생 사업가이자 아프리카 식민지 정치가인 세실 로즈(지금의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모체인 남로데지아와 북로데지아를 건국)가 1980년 창업했다. 그는 드비어스 형제의 소유를 포함해 남아공 다이아몬드 산지를 잇따라 사들였다. 그리고 노던케이프 주 킴벌리에 최초의 대규모 광산을 개발했다.

1902년 그가 세상을 떠날 즈음 드비어스는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과 유통의 90%를 차지했다. 로즈에 이어 어니스트 오펜하이머가 회사를 물려받아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 거래 독점 체제를 1990년대 초까지 유지했다. 독점체제는 그 뒤 러시아와 캐나다의 대형 생산업체들이 등장하면서 무너졌다.

드비어스는 1930년대 해튼가든에 가까운 차터하우스가로 본사를 옮겼다. 이 지역이 하루아침에 다이아몬드 거래의 세계 중심지로 떠올랐다. 기업들은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보석의 분류·연마·광택·가공 작업을 위해 수많은 인력을 고용했다.

종종 유대교 율법에 따라 만드는 코셔 커피하우스 뒷편에서 비공개로 이뤄지던 보석 거래는 1950년대 일반 대중에 공개된 매장으로 이동했다. 종교적인 진입장벽이 없고 규제 받지 않는 시장이라서 이 업계에는 유대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드비어스는 3년 전 판매와 분류작업을 다이아몬드 원석의 주요 공급처인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로 이전했다. 외국과의 경쟁 치열해지면서 남아공으로의 사업장 이전이 해튼가든의 공동화를 재촉했다.

지금은 해튼가든의 최대 보석가공 업체도 직원 수 20명이 넘지 않는다. 대부분 1~2인 사업체로 건물 지하나 매장 위층의 비좁은 공방에서 작업대를 임대해 사용한다. 6명의 직원을 둔 지역 최대 규모 사업체로 꼽히는 P&A 폴리셔의 파트너 아레스 아리스토데무는 “이 시장의 호시절은 지나갔다”고 말했다.
해튼가든 보석상 지구는 개도국과의 경쟁, 건물 임대료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해튼가든의 보석상.
그리스계 키프러스인인 아리스토데무는 1973년 17세 때 주급 9파운드(약 1만3000원)를 받는 도제로 보석 연마 일에 뛰어들었다. 해튼가든의 한 사업체에서 일손을 구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삼촌이 그를 보내 비공식 면접을 보게 했다. 면접에 합격했지만 3년 간의 도제 생활 중 첫해엔 거의 작업장 청소와 재떨이 비우는 일만 했다고 한다. 1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보석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는 “1970년대가 전성기였다”고 돌이켰다. “당시 업체들이 하루에 취급하는 장신구가 500~1000개 품목에 달했다. 지금은 100~300개 선으로 줄었다.”

1988년 출범한 P&A 폴리셔스는 수많은 다이아몬드 사업 관련 업체 중 하나다. 보석의 최종 연마, 장신구에의 세팅과 기타 고객에게 건네기 전의 갖가지 마감 작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일이 줄었다고 해도 영국 내 주얼리와 시계 시장 규모는 여전히 약 7조2900억원 선에 달한다. 아리스토데무는 해튼가든의 보전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근년 들어 높은 건물 임대료에 밀려나 보어럼 우드나 그리니치 같은 여타 런던 지역의 작은 작업장으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특정한 도구가 필요하면 건너편 가게에서 구할 수 있다. 원석이나 합성물도 몇 분 거리에 있다.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문제가 생기면 주변의 경험 많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된다. 내게 필요한 게 모두 여기 다 있다.”

모건 스탠리 투자은행가 출신의 토비아스 코민드는 2005년 11월 온라인 주얼리샵 77 다이아몬드를 공동 창업했다. 그는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보석 소매유통업에 종사하면서도 그 유서 깊은 지역의 팬이기도 하다. 77 다이아몬드는 메이페어에 초대자 전용 전시장을 운영하지만 비용절감을 위해 판매는 온라인으로만 한다. 회사명이 암시하듯 그는 500~5파운드 가격 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지난해 직원 44명의 회사에서 약 2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코민드 대표는 딜러들과 거래를 위해 이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그는 “이 지역은 지식의 보고”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가 형성되기까지 30억 년이 걸린다. 거의 지구만큼이나 역사가 길다. 이곳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귀한 품목인지 잘 안다.”

이 지역의 뿌리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왕은 총애하는 신하 크리스토퍼 해튼 경을 이 지역에서 만나곤 했다. 도시 북쪽의 과수원과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여왕은 1588년 해튼 경에게 그 땅을 하사했다. 해튼 경이 사망한 뒤 그리고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그의 가족이 지역에 상류층을 위한 주택을 세우기 시작했다.

1800년대 초 프랑스의 시계와 도구 생산자들이 인근 클라큰웰에 정착하는 한편 이탈리아의 숙련된 장인들이 해튼가든으로 이주해 망원경을 비롯한 기타 정밀도구들을 판매했다. 이들 고도의 숙련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훗날 그 뒤를 잇는 다이아몬드와 주얼리 거래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3월 런던 보석상 지구 절도 사건에서 56개 안전금고에 보관된 재물이 도난당했다.
큰돈이 모이는 대다수 지역과 마찬가지로 해튼가든에도 런던의 지하세계 세력들이 적지 않이 꾀인다. 1838년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주인공 소년이 해튼가든 54번지의 낡은 즉결 재판소에 나타난다. 디킨스는 이 지구의 새프런 힐에 있는 ‘원 툰’ 주점의 단골로 알려졌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현실세계 술꾼 중 많은 사람을 소설 속 등장인물로 만들었다.

해튼가든의 진주 강도는 1913년 처음 일반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로이드 보험사가 15만 파운드짜리로 추정한 진주 목걸이가 도난당했다. 보석은 파리에서 해튼가든 거래인 맥스 메이어에게로 배달됐지만 그가 포장을 뜯었을 때는 11개의 설탕 덩어리만 들어 있었다. 사건 주범은 다이아몬드 상인 조셉 그리저드였다. 그는 함정수사에 걸려들어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 3월 6명이 총 34년의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한 해 전 해튼가든 지하 안전금고에 보관된 약 204억원의 재물을 강탈한 죄였다. 영국 사법사상 최대로 일컬어지는 도난 사건이었다. 49~77세에 달하는 고령의 범인들은 이틀 동안 땅을 파서 금고에 접근해 금·다이아몬드·현금·사파이어 등을 빼냈다. 도난품 중 3분의 1 정도만 회수됐다. 크리스토퍼 킨치 판사는 판결문에서 그 범죄를 가리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 사업체들은 높은 건물 임대료, 꼬여드는 범죄자, 노후화하는 외관에 맞서 싸운다. 지난 10월 초 캠던 보로는 해튼 다운 지역을 사업개량지구로 지정했다. 370여 지역 업체들이 해튼가든 파트너십을 결성해 향후 4년 반 동안 지역 환경조성에 250만 파운드를 투자할 계획이다.

캠던 의회와 파트너십은 가이드 투어, 오찬 간담회, 여름 축제, 녹색공간 확대, 그리고 환경미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2018년 12월 패링던에 시간 당 최대 140량의 열차과 통과할 수 있는 역이 신설되면 지역의 상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캠던 의회는 덧붙인다. 크로스레일 철도 운영사에 따르면 패링던의 하루 이용객 수는 현재 5만3000명에서 2026년에는 15만3000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캠던 보로의 테오 블랙웰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파트너십은 법으로 인정받으며 지역을 대표할 수 있다. 그들은 조성한 자금으로 런던시, 캠든 보로, 런던교통국이 현지에서 추진 중인 대형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이런 기구들이 지역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 로저 베어드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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