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이젠 마천루도 친환경 시대

이젠 마천루도 친환경 시대

주거용지 부족에 인구 증가하면서 에너지 효율성 높고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영국 맨체스터의 원 에인절 스퀘어는 탄소중립적인 빌딩으로 유명하다.
세계 곳곳에 있는 대도시의 거리와 공간에 유리알처럼 말쑥한 마천루가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런 거대한 건물은 에너지 비효율성으로 악명 높다. 유리로 된 외면은 여름에 태양 광선을 끌어모으고 겨울엔 열기를 신속하게 잃어 실내 냉난방 장치를 연중 가동해야 한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내부는 어두워 밝은 조명이 필요할 뿐 아니라 수많은 컴퓨터가 하루 종일 윙윙 돌아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에너지 효율성이 세계적으로 주요 사안인 지금 우리는 이런 어두운 ‘유리 거인’이 도시 풍경을 지배하게 된 과정과 앞으로 건축에서 비효율성이라는 결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현대 고층건물은 1880년대 시카고의 고층건물 건설로 시작된 건축 진화의 산물이다. 중앙 서비스 코어를 각기둥 유리 외면으로 둘러싸는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상징적인 마천루는 1920∼30년대 미국으로 피신한 독일의 공업기술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르 로헤 등의 상상에서 나와 1950년대에 처음 건설됐다. 뉴욕의 유엔 본부(1952년), 레버 하우스(1954년), 시그램 타워(1958년)는 어두운 유리벽 사무실 고층건물의 원조로 198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수많은 모방을 낳았다.

20세기 후반 각국 정부가 엄격한 에너지 기준을 도입하면서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났다. 하지만 유리 고층건물은 2020년에 근접해가는 지금도 도시 건축을 지배한다. 오늘날의 사무실 고층건물, 특히 중동과 극동 지역의 상업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천루는 이중외피 시스템을 사용한다. 유리 외면으로 안쪽의 실제 건물을 뒤덮는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이런 이중외피 시스템은 유리 같은 느낌을 주고 햇빛을 받아들이면서 절연을 개선하고 태양열을 차단하기 위해 고안됐다.

요즘은 효율적인 조명과 엘리베이터 전력회생 시스템 같은 에너지 절약 기술이 표준이다. 지하실에서 삼중열병합(trigeneration: 난방·냉방·발전)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가동되고 에어컨의 부하를 줄이기 위해 햇빛을 가려주는 차양과 개방 가능한 창문도 가끔 사용된다. 로비와 옥상 정원에선 집수된 빗물을 이용해 화초와 채소를 재배한다.

현재 도시와 직장이 발전하는 방식을 보면 도시 건축에서 더 큰 변화가 요구된다.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대세인 지금 고층건물이 촘촘이 들어선 좁은 고층 상업지구에다 순환도로·쇼핑몰이 편의를 제공하는 넓은 교외 주택지구로 구성된 미국식 도시 개념은 21세기 도시의 토지 자원과 인구, 에너지, 교통의 요구 조건을 맞출 수 없다.

역동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압력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도시 주민은 교통 중심지에 밀집한 고층건물에서 살아가며 일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도시마다 이런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영국 런던은 주요 철도역을 중심으로 고층건물을 밀집시키고 그 사이의 시야를 틔우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런 ‘클러스터’는 더 많은 사무실과 주택용 고층건물을 끌어들인다.

프랑스 파리는 고층건물을 중심부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외곽의 라데팡스 같은 구역에 국한시킨다. 한편 중국은 으스스한 ‘유령 도시’를 건설했다. 인구가 이동하기 전에 고층건물로 이뤄진 신도시를 건설해 입주가 끝날 때까지 황량하고 어두운 곳이 된다는 뜻이다.
호주 멜버른 시의회 건물 CH2는 외벽의 나무 패널이 태양의 방향에 따라 낮에는 닫히고 밤에는 열리는 방식으로 자연 냉난방을 돕는다.
사람들이 고층건물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우선 인터넷이 기존 사무실의 수요를 줄였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모여 거래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나 멀티스크린 작업 공간을 갖춘 조경화된 사무실 내부 시설이 인기다. 핫데스킹(직원들이 지정된 자리를 갖지 않고 업무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햇빛이 드는 휴식 공간에서 회의할 수 있는 사무실도 많이 들어선다. 거대한 유리벽은 필요성이 떨어진다. 햇빛을 위해선 절연벽에 대형 유리창을 만들면 된다.

소기업은 ‘인큐베이터’ 사무실을 주로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다. 직원은 화상회의 시스템과 가상 네트워크를 사용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20세기의 남아도는 사무실 건물은 대부분 아파트로 개조됐다. 런던의 메트로 센트럴과 사우스뱅크 타워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중요한 추세는 복합 용도의 고층건물이다. 주차장, 식당, 호텔, 사무실, 옥상 공원, 아파트, 대학, 병원, 레저 센터가 하나의 건물에 수직으로 배열된 형태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소매 가게는 주로 1층에 위치한다. 일본과 중국의 신축 고층건물은 대개 그런 식이다.

다용도 타워는 땅의 면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경기침체 같은 경제적 충격에도 강하다. 임대 소득이 나오는 가게의 업종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 유동 인구가 출퇴근 시간에만 집중되지 않고 하루 종일 꾸준히 이어져 균형을 맞춘다. 이 아이디어는 1969년 시카고에서 시작돼 중국에서 발전했지만 지금은 세계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런던 샤드, 상하이 타워, PS100(싱가포르), 하이산 플레이스(홍콩), 뉴욕 11번가 470번지의 개발 계획이 대표적인 사례다.

울트라스티프 서비스 코어, 콘크리트 연속 주조, 아웃리거(서비스 코어와 메가 칼럼을 이어주는 철골구조물), 격자형 프레임, 지진 진동완화 시스템 등 새로운 건설 기법으로 초고층건물 짓기가 쉬워졌다.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는 높이 800m가 넘고, 사우디 제다의 킹덤 타워는 완공되면 1000m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가장 중요한 추세는 극단적인 고층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일 것이다. 미래의 마천루는 건축가들이 ‘5세대’라고 부르는 고층건물이다. 호주 멜버른의 CH2와 시드니의 원 블라이 스트리트 빌딩, 영국 맨체스터의 원 에인절 스퀘어 같은 탄소중립적인 건물을 목표로 한다.

이런 특출한 고층건물은 신재생 에너지 생산, 차양·이중외피 시스템, 자연 통풍 등 다양한 친환경 혁신을 최대한 활용한다. 에너지 고효율 시스템, 조경화된 아트리움, 지하 열저장 시설, 집수 시설, 재활용, 선형유도 엘리베이터, 수직 농장, 정원, 전기를 생산하는 외면과 지붕도 포함된다.

건축의 미래는 극단적으로 높은 마천루 몇 채가 아니라 다수의 효율성 높은 다용도용 고층건물에 있다. 그런 고층건물은 증가하는 도시 인구를 수용하고 도시의 기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 데이비드 니콜슨-콜



[ 필자는 영국 노팅엄대학 건축과 부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효성,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계열 분리 가속화 전망

2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3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4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5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6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

7남양유업, 60년 ‘오너 시대’ 끝...한앤코 본격 경영

8하나은행, 은행권 최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금 지급

9행안부 “전국 18개 투·개표소 불법카메라 의심 장치 발견”

실시간 뉴스

1효성,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계열 분리 가속화 전망

2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3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4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5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