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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가 직업을 말한다

좋아하는 노래가 직업을 말한다

작가·배우는 클래식·재즈·오페라, 방송인·스포츠 관계자는 소울·팝·컨트리 음악 좋아해
배우 겸 싱어송 라이터 빅토리아 우드는 조지 거슈윈 등 클래식 계열의 음악을 선택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대답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어느 정도 말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지난 15년 동안 음악적 취향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왔다. 난 이런 연구 결과들이 현실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최근의 연구에 참여했다. 다행히 퍼블릭 도메인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다. 우리는 1942년부터 최근까지 영국 BBC 라디오 프로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Desert Island Discs, 이하 데저트)’ 인터뷰 대상자들의 음악 선곡 자료를 이용했다.

이 주간 프로그램의 인터뷰 대상자는 모두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질리 쿠퍼(영국 작가), 마이클 부블레(캐나다 출신 가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등이 포함됐다. 진행자 커스티 영은 이들에게 무인도에 갇혔을 때 음악을 딱 8곡만 들을 수 있다면 어떤 곡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출연자들이 음악을 고르면서 거기 얽힌 사연을 들려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

우리는 출연자들의 선곡을 2012년의 한 연구 결과에 견줘 분석했다. 음악의 5개 ‘차원’(한 차원에 다수의 장르가 포함된다)과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격상 특성을 정의한 소위 ‘음악(MUSIC) 모델’(도표 참조)을 이용했다.

일례로 난해하지 않은 음악과 컨템퍼러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양심적이고 보수적이며 자신의 외모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한편 세련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지적이라고 여기며, 강렬한 음악의 애호가들은 활동적이고 새로운 경험에 마음의 문이 열려 있다.

직업 선택은 성격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측면도 고려했다. 1950년대 이후 심리학자들이 즐겨 사용한 존 홀랜드의 ‘직업적 성격 모델’을 참고했다. 개인의 성격과 환경이 진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 모델이다. 이 모델은 개인의 직업적 성격을 6가지 유형(실재적·탐구적·예술적·사회적·기업적·관습적)으로 나눴다. 예를 들어 무용수·디자이너·사진가 등 예술적 유형은 비관습적이고 창조적이며 의사전달 능력이 있고 진보적이며 개방적이다. 반면 투자 은행가·변호사·판매원 등 기업적 유형은 권력지향적이고 공격적이며 지배적이고 외향적인 경향이 있다.

‘데저트’의 출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직업 모델과 음악 모델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작가나 배우 등 예술가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클래식·재즈·오페라 등 세련된 음악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는 2007년 ‘데저트’에 출연한 빅토리아 우드(영국 배우 겸 싱어송 라이터)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와 조지 거슈윈, 패츠 월러 등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런 사람들은 또 슬프고 느리고 활기가 없으며 긴 곡을 고르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록이나 얼터너티브 같은 강렬한 음악이나 컨템퍼러리 음악을 선택하는 비율은 낮았다.
야생 탐험가 레이 미어스는 롤링스톤즈·블론디 등 강렬하고 난해하지 않은 음악을 좋아했다.
한편 수목관리원·농부·동물조련사 등 실재적 유형은 록·펑크·얼터너티브·팝처럼 강렬하고 난해하지 않은 음악을 좋아한다. 이들은 전자 음악과 낙관적이고 활기차며 템포가 빠른 음악을 좋아한 반면 세련된 음악을 선택하는 비율은 낮았다. 야생 탐험가 레이 미어스가 좋은 예다. 그는 2014년 출연 당시 롤링스톤즈·블론디·더 잼·KT 턴스톨 등의 음악을 골랐다.

방송인·스포츠 관계자 등 사회적 유형의 사람들은 소울·팝·컨트리 등 컨템퍼러리 음악과 난해하지 않은 음악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테사 샌더슨(영국의 전 투창 선수)은 20년 전 이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휘트니 휴스턴·재닛 잭슨·글로리아 에스테판 등의 음악을 선택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강렬한 음악을 선택했으며 세련된 음악을 고르는 비율은 낮았다.

우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상관관계가 발생하는 이유를 따져봤다. 이를테면 예술적 유형과 세련된 음악과의 연관성 등을 말한다. 이전의 연구에서는 그 이유를 개방적인 성격과 미학에 가치를 두는 사고방식, 진보주의, 융통성 등으로 설명했다. 또 사회적 유형과 컨템퍼러리 혹은 난해하지 않은 음악 사이의 연관성은 외향적 성격과 쾌활함, 사회성 등으로 설명했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직업 선택과 음악 취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결론적으로 ‘데저트’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대체로 직업적 성격 유형에 따라 예측 가능한 선택을 했다. 그들의 성격은 이전의 연구에서 제시한 성격적 특성과 들어맞았다.

여기서 우리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과연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사실대로 이야기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예컨대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가 악틱 몽키즈(영국 록 밴드)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처럼 출연자들이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선곡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취향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선택하거나 세련되고 교양 있어 보이고 싶어 클래식 음악을 끼워 넣을지도 모른다.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프로그램인 만큼 출연자들은 자신의 음악적 취향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의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연구에 따르면 출연자들은 대체로 사실을 말하는 듯하다.

성격이 직업 선택과 음악적 취향을 좌우한다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이 대답을 망설이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질문은 곧 자신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라는 요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소설 ‘결혼 계획(The Marriage Plot)’에 보면 이럴 때 참고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그건 마치 매우 정교하게 짜인 인성검사와 같다. 질문의 숨은 의미를 헤아려 자신에게 유리한 답변을 짐작하려 하지만 결국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럴 땐 사실대로 말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 돈 녹스



[ 필자는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대학의 오디오학 부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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