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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모터스

로컬 모터스

미국 서부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사막과 선인장의 도시 피닉스. 도심(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15분 정도를 달리면 황무지에 초등학교만한 작은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의 회사 로컬모터스(Local Motors)의 본사다.
로컬모터스는 세계 최초로 3D(차원) 프린터를 도입해 자동차를 ‘인쇄’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소재 로컬모터스 공장은 일단 ‘규모’가 너무 작다. 공장 정식 명칭부터 ‘초미니 공장(Microfactory)’이다. 본사라고 해야 조그만 사무실이 몇 개와 자동차 3대 정도가 들어갈 만한 제조 시설이 전부다. 다른 자동차 공장처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줄 지어 선 자동차를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차를 만든다고는 하는데, 3명의 근로자가 완성된 외형의 차에 부품을 조립해 넣는 모습만 보인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100년 아성의 자동차 산업 역사를 뒤흔들고 있다. 실제로 2014년 6월18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역사상 최초로 열렸던 ‘백악관 메이커 페어(2014 White House Maker Fair)’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로컬모터스를 극찬했다. ‘혁신(innovation)’이라는 수식어를 4번이나 사용하기도 했다. 로컬모터스는 매출액이 불과 수백만 달러(수백억 원)로 추정된다. 규모로 보면 같은 자리에 초대받은 디즈니(연매출 524억 달러·약 65조원)나 인텔(연매출 493억달러·약 54조원)과 비할 바 아니다.
 100년 아성의 자동차업 뒤흔든 혁신기업
자동차는 제조업 중에서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헨리 포드 포드자동차 창업자가 1911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100년 이상 자동차 제조 공정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았다. 미국 포드,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등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기업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기까지 오랜 세월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나마 기술이 있다고 해도 제조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덤비기 어려운 산업이다. 자동차 사고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안전과 관련해 넘어야 할 규제도 많다.

연간 2000대를 조금 넘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로컬모터스는 이 공고한 성벽을 흔드는 기업으로 꼽힌다. 세계 최초로 3D(차원) 프린터를 도입해 자동차를 ‘인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컬모터스 건물엔 봉고차 크기만한 기계 2개가 서 있다. 한 대는 차체를 ‘인쇄’하는 3D 프린터고, 다른 한 대는 여기서 인쇄한 차체를 매끄럽게 다듬는 기계(트리머·trimmer)다.

세계가 주목하는 로컬모터스 본사 공장.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다. / 로컬모터스 제공
컴퓨터에 도면을 입력하면 3차원 프린터가 차체를 생산한다. 탄소 섬유와 플라스틱 혼합재를 집어넣고 ‘인쇄’ 버튼을 클릭하면 불과 40시간 만에 차체가 완성된다. 여기서 나온 차체를 트리머가 가다듬는다. 다음엔 포드·크라이슬러·GM 등 기존 자동차 회사에서 미리 주문해뒀던 브레이크·엔진·기어와 같은 부품을 조립하면 뚝딱 차량 한 대가 완성된다. 모든 공장 공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근로자가 3명이면 족하다.

거대한 설비 사이를 통과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장면이 자동차 공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이날 로컬모터스 공장에서는 단 3명이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총 근로자는 100여명으로 현대차 울산공장(3만명)의 0.3%에 불과하다.

비록 ‘인쇄’했지만 승차감과 성능도 훌륭한 편이다.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 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거라지(Jay Leno’s Garage)’에서 로컬모터스의 차량을 직접 운전했다. 그는 “차량의 파워가 좋고 콘셉트가 훌륭하며, 오프로드와 고속도로에서 모두 운전의 즐거움을 준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일반적인 공장과 다른 풍경은 혁신적인 차량 제조 방식(이노팩처링·innovation-manufacturing)에서 비롯된다. 기존 자동차업이 순수 제조업이라면, 로컬모터스는 정보통신(IT) 기반 제조업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온라인 상에서 제조 공정의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차체·섀시·인테리어 디자인 과정엔 로컬모터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문 자동차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비평을 가한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에 투표하거나, 스스로 그려본 디자인을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다.

연구개발(R&D)도 혁신적이다. 통상 자동차 제조사는 보안 유지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경쟁사에 정보가 노출되지는 않지만, R&D 참여자 역시 제한적이다. 반면 로컬모터스는 개발 전(全)과정을 공개하는 ‘오픈 소스(open source)’를 선언했다. 차량 개발 아이디어를 공개된 온라인 공간에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변형하거나 재배포할 수 있다. 분야 별로 다수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고, 차량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수정도 가능하다.
 클릭 몇 번으로 개인 맞춤형 디자인 제공
실제로 설립 2년 만인 2009년 선보인 모델 ‘랠리파이터(Rally Fighter)’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으로 완성됐다. 크라우드 소싱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crowd)이 아웃소싱(outsourcing)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랠리파이터는 영화 ‘트랜스포머 4’에서 사막 경주용 자동차로 등장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2011년 미국 국방부 ‘전투지원차량 디자인 공모전’에서 로컬모터스가 우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담 크레스 로컬모터스 대변인은 “억대 연봉을 받는 소수의 전문가가 개발한 차량보다 훨씬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며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하는 ‘롱테일법칙(Long Tail Theory)’이 적용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랠리파이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그간 시스코 등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주로 시도했다. 로컬모터스는 자동차 산업에서 사실상 최초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한 기업으로 꼽힌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Watson)’을 최초로 차량에 도입한 것도 로컬모터스다. 올해 6월 선보인 12인승 전기차 버스 ‘올리(Olli)’의 ‘진짜 운전사’는 왓슨이다. 이 차량은 조만간 미국 라스베가스와 플로리다, 워싱턴DC 일부 소형 버스 운행 구간에 실제로 투입될 예정이다.

차량의 외형이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클릭 몇 번이면 디자인이 달라진다. 물론 마세라티 등 일부 수제 자동차 제조사도 개인 맞춤형 디자인을 제공하지만, 가격이 상승한다. 이에 비해 로컬모터스는 디자인을 바꾼다고 차량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다.
 3D 프린터로 생산하는 차는 100% 전기차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트라티, 올리, 스윔
개인 맞춤형 디자인을 제공하더라도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제조 공정이 ‘선 주문, 후 생산’이기 때문이다. 고객 주문을 받고 나서 공장을 돌려도 늦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고 차량을 쌓아둘 적재 공간도 필요 없다. 로컬모터스 공장 규모(1858㎡·약 560평)가 현대차 울산공장(505만㎡·153만평) 대비 ‘코딱지만 한’ 또 다른 이유다.

3D 프린터로 생산을 결정한 후, 다양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로컬모터스는 기업의 공익성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차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을 주는 혁신을 이뤄나간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외형은 특수 소재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별도의 열과 압력을 가해서 녹이기만 하면 다시 3D 프린터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1~2년 정도 차를 타다 지겨워지면 손쉽게 디자인을 바꿀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으니 1석2조다. 로컬모터스가 3D 프린터로 생산하는 자동차를 100% 전기차 모델로만 만든 것도 ‘친환경’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아담 크레스 홍보담당자는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규제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공익적 가치를 강조하니 정부가 우리 사업을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난관을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거쳐 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 일했던 존 로저스 로컬모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고 로컬모터스를 창업했다. 그는 “기존 컨베이어 벨트식 차량 생산 방식은 미래가 없다”며 “화석연료 소모량을 줄이려면 완전히 새로운 차량 개발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연을 통해 주장한 바 있다.

- 피닉스(미국)=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박스기사] “아시아 대륙 공략의 전초기지는 한국”
진 폴 카핀 CFO
진 폴 카핀 로컬모터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우리나라를 아시아 거점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3D 프린터로 차량을 인쇄하는 공장인 마이크로팩토리(Microfactory)를 조만간 대거 설립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연말 독일에 최초 진출한 뒤 미국 메릴랜드·테네시주에도 추가로 공장 설립한다. “2020년까지 공장 100개를 세워 연 6만 대를 생산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유럽과 더불어 아시아 대륙 진출도 계획 중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는 게 카핀 CFO의 언급이다. 실제로 로컬모터스는 지난해 6월 울산시와 아시아 최초 3D 프린팅 자동차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르면 2018년 한국 소비자도 3D 프린터로 생산한 차량을 구매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마이크로팩토리 한국공장 지분 투자나 부품 조달을 원하는 한국 기업과도 접촉 중이다.

울산과 함께 제주도에도 공장을 건설할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는 보조금 등 전기차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며 “제주특별 자치도와 함께 마이크로팩토리를 건설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고속주행 전기차 ‘올리’와 12인승 전기버스 ‘스윔’이 될 전망이다. 카핀 CFO가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우수한 자동차 제조사가 많기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 회사 입장에선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red ocean) 시장이다. 하지만 브레이크·엔진·기어와 같은 부품을 기존 제조사에게 공급받아야 하는 로컬모터스 입장에선 오히려 부품 조달에 유리한 환경이다.

그는 “한국은 자동차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있고, 유통망도 잘 갖춰져 있다”며 “로컬모터스에 부품을 공급할 수준 높은 제조사가 많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또 “한국의 자동차 기술자와 디자이너는 수준이 높고 창의적”이라고 본다. 실제로 로컬모터스 대표 차량인 랠리파티어는 한국인 대학생(김상호 씨)이 제안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한국엔 부품 공급할 수준 높은 제조사 많아현대차와 협업도 기대하고 있었다. 한국 자동차 제조사의 견제를 우려하지는 않는지 묻는 질문에 진 폴 카핀 CFO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로컬모터스가 공략하는 시장은 기존 자동차 제조사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틈새시장이기 때문에 기존 자동차 제조사는 경쟁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현대차 같은 수준 높은 기업과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로컬모터스가 ‘이상한 회사’라는 시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혁신적인 기술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시대에 100여 년 전 제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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