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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에 최대 위협이라고?

북한이 미국에 최대 위협이라고?

백악관은 차기 정부팀에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북핵이라고 경고하지만 실질적이고 긴박한 세계 문제 많아
2016년 5월 북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린 평양 4·25 문화회관. 북한은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면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후임자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위해 백악관을 비워주려고 짐을 싸는 시점에서 그가 인계하는 세계 정세가 과연 어떤 모습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내전 중인 시리아를 보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무자비한 공습과 폭격으로 반군의 거점이던 알레포의 탈환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민간인 수만 명이 숨지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됐으며 시리아의 수니파 아랍인 한 세대 전체가 마음에 통분의 반감을 품게 됐다.

한때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되는 사태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권을 의미한다)’ 원칙을 주창하던 오바마 행정부는 알레포의 집단학살을 묵묵히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개입이 상황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자랑스러워 하는 외교 업적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중단과 서방의 이란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말한다. 적어도 한동안은 이란이 약속을 지키리라 예상된다.

한편 수니파 급진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몇 달 전 빼앗겼던 시리아의 고도 팔미라를 재탈환했다. 게다가 알카에다가 무력화됐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과 달리 그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국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떤가? 러시아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되찾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에서 크림반도를 떼어내어 자국 영토로 만들었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긴장이 냉전 종식 이래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더구나 2016년 12월 15일 중국은 남중국해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 부근에 건설한 인공섬 7개 전부에 강력한 방공·미사일요격 시스템을 배치하는 등 군사시설을 확충했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은 남중국해의 공해에서 미국 해군의 수중 드론을 나포했다가 이틀만에 돌려줬다.

그 외에도 국제 정세는 숨가쁘게 돌아간다. 2016년 12월 19일엔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앙카라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수일 전 터키에선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려 지정학적 불안이 확산되던 중이었다. 같은 날 독일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에선 한 트럭이 군중을 덮쳐 최소 12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두 사건 모두 알카에다나 IS 등 테러단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잇따른 실책과 끔찍한 사건들을 두고 보면 물러가는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 들어설 트럼프 신임 대통령이 부닥칠 가장 골치 아픈 외교 문제가 북한이라고 경고한다는 사실은 어이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무엇부터 시작할까? 먼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고 불리게 된 것부터 살펴보자.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설명했듯이 절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상대로 하는 고위급 협상을 거부하면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프로그램 포기 의지를 확실히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자는 정책을 택했다는 얘기다.

나는 북한에 두 번밖에 못 가봤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리라곤 생각도 할 수 없다. 왜냐고? 그가 가진 것이 핵무기뿐이기 때문이다. 그도 잇따른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도발적으로 감행함으로써 그런 사실을 계속 우리에게 주지시켰다. 이전의 부시 행정부가 그랬듯이 오바마 행정부도 중국에 김정은 위원장을 좀 말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하지만 중국은 어쩔 수 없는 경우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 의미 있는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에 만족한다. 한반도가 통일돼 번창하는 하나의 민주국가가 되기보다 분단된 상황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의 백악관은 북한을 두고 트럼프 팀에게 계속 경고한다. 신임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칭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한다면 시진핑 국가주석이 억하심정에 북한 문제에 협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일지 모른다. 또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일부의 지적은 당연히 우려할 일이다. 북한이 미사일 사거리를 계속 늘리는데 성공하면서 몇몇 분석가는 이제 북한 미사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마이크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최근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에서 계속 진화하도록 놔두면 결국 미국은 그런 능력을 가진 정권과 맞서야 하는데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 진화’를 좌시하진 않았지만 그외엔 그냥 내버려뒀다. ‘용납할 수 없다’는 표현은 결국 군사적인 선제 공격으로 북한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일까? 하지만 선제 타격론도 미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검토하다가 포기한 카드다. 미국이 선제 공격을 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이다. 사실 북한의 입장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과 탄도 미사일을 원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전쟁 시나리오를 아예 배제하기 위해서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랬듯이 트럼프 당선인도 시험하려 들지 모른다.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북한 전문가 스티븐 해거드는 미국 대선 기간을 중심으로 발생한 북한 도발의 평균적인 기간은 “김일성의 경우 13주, 김정일 시대엔 6주, 김정은 정권에선 겨우 4주”라고 말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속셈을 정확히 알려주는 특정 정보가 있다면 그가 과연 미국에 최대의 위협을 제기하는지 따져볼 가치가 있다. 예를 들면 그의 핵프로그램이 갈수록 정교해져 바로 1년 전보다 더 큰 위협이 된다면 말이다. 그의 의도가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그는 북한 주민 앞에서 미국의 지도자가 누가 되든 언제든지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며 외부 세계엔 북한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해거드 연구원이 지적하듯이 그런 도발이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진 못한다. 실제로 김정은이나 김정일이 미국이나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과 전쟁을 원했다는 증거는 없다. 간단하지만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 때문이다. 북한은 잘못하다간 자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 정책에 관한 트럼프 당선인의 관심을 북한보다는 다른 긴급한 문제로 돌리는 게 낫다. 북한 외에도 중요한 문제가 수없이 많지 않은가?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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