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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시장 ‘불면허’의 경제학] 단계별 운전 면허 도입 필요성 더 커져

[운전면허시장 ‘불면허’의 경제학] 단계별 운전 면허 도입 필요성 더 커져

장롱 면허 막는 제도 개선도 추진... 보험 가입 경력 초보 기준 반영 의견도
초보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운전면허 시험의 어려워져 ‘물 면허’에서 ‘불 면허’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운전면허 시험의 난이도를 높였다. 이에 따라 2011년 6월 시험 간소화로 인해 ‘물 면허’라는 오명을 얻은 운전면허 시험이 ‘불 면허’로 바뀌었다. 기능 시험은 운전 장치 조작과 차로 준수, 급정지 등 2개 항목에서 7개로 대폭 늘렸다. 경사로에서 정지·출발, 직각 주차(일명 T자 코스), 좌·우회전, 신호 교차로 통과, 가속 구간 전진 등 다섯 가지 시험이 추가됐다. 특히 직각 주차 시험은 응시생 사이에서 ‘마의 구간’으로 불리고 있다. 이번에 부활한 직각 주차 구간은 2011년 시험 간소화 이전보다 폭이 50㎝ 좁아졌다. 감지선을 밟거나 2분이 지나도록 주차를 하지 못하면 감점을 받는다. 학과 시험 문제 은행의 문항수도 기존의 730문제에서 1000문제로 늘리며 문제를 맞추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 면허’ 이후 초보 사고율 올라
이처럼 운전 면허를 따기 어렵게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시험 간소화 이후 초보 운전자의 사고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9~2015년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사고 기록(317만 건)을 보면 경력 운전자와 비교한 초보 운전자의 사고율은 간소화 전 1.7배 수준에서 간소화 이후 2.1배(2015년)까지 높아졌다.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펴낸 ‘초보 운전자 사고 감소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초보 운전자는 운전 첫해 사고율(39.6%)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 시작일부터 100일까지가 가장 위험한 시기로 분석됐다. 속칭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100일 정도쯤 지났을 때 운전대를 잡아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 반면 7년 이상 차를 몬 운전자의 사고율은 20% 미만(19.7%)으로 떨어졌다.

초보 운전자가 많이 일으키는 사고 유형은 측면 충돌 사고로 나타났다. 측면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초보 운전자의 시야 폭이 좁고, 좌우를 탐색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린다는 얘기다. 초보 운전자의 시야 폭은 18도로 경력 운전자(92도)의 5분의 1수준이다. 좌우를 탐색하는 시간은 전체 주시 시간의 8.6%로 경력 운전자(37.2%)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특히 운전 상황에 따른 운전자의 판단이 필요한 비보호 좌회전, 신호가 없는 교차로, 우회전 등에서 경력 운전자에 비해 부담을 더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악천후나 야간 등 환경에서도 운전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컸다. 다만 후진 중 추돌 사고는 초보 운전자가 상대적으로 적게 일으켰다.

초보 운전자의 사고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초보 시기에 법규 위반 등 행위에 대해 경력 운전자보다 더욱 엄격한 제재를 내리고 있다. 초보 시기에 올바른 운전 습관과 책임 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국은 관찰 기간 제도를 1997년 6월부터 도입해 운전 면허 취득 뒤 2년 동안 벌점이 6점이 넘어가면 면허를 취소한다. 독일은 임시 면허 기간 2년 동안 1회 중대 위반 행위 또는 2회 경미한 위반을 할 경우 교육 세미나에 참여토록 한다. 중대 위반 행위가 두 번일 경우 심리 검사를 하고, 세 번이면 면허를 빼앗는다. 프랑스 역시 면허 취득 후 2년 동안은 경력 운전자에 비해 제한 속도 기준을 낮추는 동시에 많은 벌점을 부과한다. 캐나다는 초보 운전자가 5년 운전 기간 동안 첫 번째 법규 위반시 30일간 면허를 정지하고, 두 번째 위반시 90일간 정지한다. 세 번째 위반일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 일본은 면허 취득 후 1년 동안 법률상 특례 조항을 둬 경력 운전자보다 엄격히 처분한다. 벌점 누적이 6점 이상이 되면 초보자 운전 강습 수강 외에 면허 정지도 30일까지 내린다.
 외국은 경력보다 초보에 엄격한 제재
채찍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근도 있다. 초보 운전자의 심적 부담감을 줄여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위험이 낮은 상황에서부터 차츰 운전 가능한 환경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가는 방식의 ‘단계별 운전 면허 제도(GDL:Graduated Driver Licensing)’가 운영되고 있다. 보통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연습 면허)에서는 정식 면허를 가진 운전자의 감독을 받아야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2단계(중간 면허)에 들어가면 위험도가 낮은 조건일 경우 감독자 없이 차를 몰 수 있다. 3단계(정식 면허)에서는 어떠한 규제 없이 운전할 수 있다. 이처럼 초보 시기에 바른 운전 습관을 익히면 수년 뒤 안전 운전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현대해상이 자동차 보험 고객을 첫해 사고 경험이 있는 그룹과 무사고 그룹으로 분류해 향후 5년 뒤의 사고율을 비교해 봤더니 의미 있는 수치를 발견했다. 5년 후 무사고 그룹의 사고율은 37.4%인 반면에 1건 사고 그룹은 48.8%로 나타났다. 2건 이상 사고 그룹은 사고율이 61.1%로 치솟았다. 설문 결과 초보 운전 시기의 운전 습관이 향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비율이 3명 중에 2명꼴로 조사됐다.

초보 못지 않게 ‘장롱 면허’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면허 취득 연도와 실제 운전 연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운전하는 비율은 36.4%에 그쳤다. 1년 뒤 운전대를 잡는 경우는 22%였고, 심지어 5년 뒤 차를 처음 몰았다는 운전자도 18%를 차지했다. 현재 도로교통법에는 초보 운전자를 ‘운전 면허를 처음 받은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장롱 면허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서는 보험 가입 경력을 초보 운전 기준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무사고 운전자도 도로 주행 시험을 통과해야 1종 보통 면허를 발급해 주는 방향으로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2종 보통 면허 소지자 중 7년 이상 무사고 경력의 운전자는 장내 기능, 도로 주행 시험 없이 적성 검사만으로 1종 면허를 딸 수 있었다. 지난해만 10만 명 이상이 혜택을 봤다. 하지만 면허는 땄지만 실제 운전을 하지 않아 무사고로 분류된 장롱 면허 소지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면서 사고율을 높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15년의 경우 1종 면허 취득자 중 무시험 취득자 교통사고율은 0.85%로 시험을 본 취득자(0.75%)보다 높았다. 경찰 관계자는 “올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수일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박사는 “한국은 장롱면허가 많아 실질적인 초보 운전자의 관리가 어렵다”며 “초보 운전자의 법적 정의를 현재 면허 취득일 기준에서 실제 운전 시작일 기준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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