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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과장됐나] 지금은 혁신 정체기 … ‘혁신의 역설(Innovation Paradox)’ 돌아보라

[4차 산업혁명, 과장됐나] 지금은 혁신 정체기 … ‘혁신의 역설(Innovation Paradox)’ 돌아보라

“정보통신기술(ICT)의 생산성 기대만 못해” … 제조업 부활 논의에만 그쳐선 안 돼
지난해 3월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바둑용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오른쪽)이 대국하고 있는 모습. AI 시대에 대한 담론이 본격화한 계기였지만, 최근 일각에서는 ‘혁신에 대한 노력이 실생활의 변화와 경제 성장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 보도에서 세계 경제의 숨은 문제(hidden problem)로 ‘이것’을 꼽았다. 익히 드러난 문제인 저성장의 고착화 혹은 부의 불균형 등 이면에 있는 한 가지 문제, 바로 ‘혁신의 역설(Innovation Paradox)’이다. 좀 더 들여다보자. ‘혁신이 느려지면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방해하고 있다. 전 세계가 혁신에 모든 자원을 걸었음에도 정작 과학이나 의학, 기술 등 분야에서 경제 성장이 억제되고 있다.’

혁신 속도가 느리다니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든 얘기다. 10여 년 전만 해도 세상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의학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를 눈앞에 뒀다는 말도 나온다. 그로 인해 정보통신기술(ICT)과 생명공학기술(BT) 분야에서 경제적 부가가치가 줄기차게 창출되고 있지 않은가. 지난해 3월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세계 바둑 톱랭커인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AI의 무한한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이후 다가올 AI 시대에 대한 담론이 쏟아졌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지식을 쌓으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의 이면에 혁신의 역설이 있다. WSJ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인력 중 과학과 공학 분야 직업 비중은 1960년대 1.6%대에서 2000년 4%까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이후 2013년까지 연간 한 번도 4.2%대를 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21세기 들어 최첨단 과학기술(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됐음에도 그 근간이 되는 인력의 비중이 십 수 년간 거의 그대로였다는 것은 물음표를 남긴다.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은 숙련된 전문 인력 위주로 직업 시장이 재편되지 않는 한, 남은 21세기도 20세기의 ‘소폭 업그레이드판’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행기는 60년대 이후 더 빨리 날지 않아”
로버트 J. 고든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이 과거 전기나 자동차 등 혁명적 발명만큼 큰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비행기를 보자.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실질적인 비행에 성공한 이후 비행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1920년대에 항공기술이 실용화되면서 성능 향상이 과제가 됐고, 1930~35년 이에 대한 연구와 시험비행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착륙거리 단축과 비행 효율 향상 등으로 근대적 기반이 마련됐다. 2차 세계대전(1936~45년) 이후로는 제트기가 실용화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WSJ는 지적한다. ‘비행기는 1960년대 이후 더 빠르게 날고 있지 않다.’ 일부 성능은 개선됐지만 실생활에서 체감될 만큼의 혁신적인 발전이 더는 없었다는 것이다.

우주개발에서도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유인 달 착륙에 성공했지만 이후 그만큼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일부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2020~30년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낸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독일 출신의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로 나섰다.
결국 실생활의 개선은 어느 순간 ‘혁신적’이지 않고 이처럼 ‘점진적’일 뿐이 됐으며, 오늘날은 혁신의 정체기일 따름이라는 지적이다. 혁신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들도 정체기를 길게 만드는 요소다. 혁신은 갖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될 수밖에 없는데, 사회적으로 이때 발생할 리스크에 내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응까지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자동차가 시험주행 중에 각종 사고를 일으키면서 “자율주행차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 한 예다. 혁신의 역설은 다른 경제 문제와도 연결된다. 예컨대 저성장의 고착화는 그로 인한 결과 중 하나일 수 있다. 성장 동력이 될 진정한 혁신이 없어서다. 부의 불균형 문제도 그렇다. 과거의 혁신을 대물림한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있는 사이, 이런 구도를 깰 새로운 혁신가들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서다.

이 같은 논의는 세계 경제계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론으로도 이어진다. 1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 2차가 전기, 3차가 인터넷을 각각 기반으로 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제조업과 최신 ICT의 융합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사람들의 실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개념이다. 로봇이나 AI가 인간 대신 일을 하면서 인간은 무의미한 육체 노동에서 벗어나 더욱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는 식의 장밋빛 전망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초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에서 “4차 산업혁명의 막이 올랐다”고 강조한, [제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의 저자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발달한 과학기술 또는 여러 기술 간 융합으로 인간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도록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런 비판론은 ‘ICT가 과연 얼마만큼 실생활을 바꾸고 있느냐(=앞으로 얼마나 경제상황을 바꿀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에서 비롯된다.

로버트 J. 고든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런 의문을 표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하나다. 그는 최근 유전공학이나 AI 같은 기술 발전의 중심에 디지털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소식지 기고문에서는 ‘디지털 혁신이 과거 전기나 자동차 같은 혁명적 발명만큼 큰 경제적 혜택은 낳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CT가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나 추측대로 실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고든의 분석에 따르면 기술 혁신이 ‘통한(경제성장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의 실생활을 바꾼)’ 시대는 1970년 무렵까지다. ‘인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기는 1870~1970년이었다. 지금은 혁신의 정체기다.’

그는 21세기 혁신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분석의 칼날을 들이댄다. ‘사람의 활동 가운데 유흥이나 통신, 정보의 수집과 처리라는 지극히 일부 영역에서만 혁신일 뿐이다. 먹고 입고 일하는 등의 나머지 중요한 영역에서는 1970년 이후 혁신이 정체됐다.’ 실제 지난해 출간된 그의 저서 [미국 경제성장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Growth)]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1920~70년엔 연평균 2.82% 증가했지만, 1970~2014년에는 1.62% 증가하는 데 그쳤다. 1970년대 이후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려온 대표적 국가로 인식되는 미국에서 정작 과거보다 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진 셈이다. 부의 불균형도 과거보다 심해졌다. 미국 내 하위 90% 계층의 연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은 1948~72년 2.65%에서 1972~2013년 -0.1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상위 10%(2.46%→1.42%) 계층의 변동폭보다 심했다. 사람들의 추측처럼 1970년대 이후 ICT가 혁신적으로 실생활과 경제상황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현상이다.
 “3차 산업혁명 효과, 2000년대 초 사라져”
미국 ICT 가격지수(price index)의 연간 변동률을 보면 1973년 -1%대였다가 2000년 무렵까지는 점차 낮아져 -13%대가 되기도 했다. 2000년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디지털 충격과 한국 경제의 선택]에 따르면 컴퓨터 보급이 확대됐던 1980~92년 사이 컴퓨터 관련 가격지수만 연평균 12% 하락하면서 ICT 산업이 경기 상승뿐 아니라 가격 하락에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13년간은 ICT 가격지수가 급격히 반등, 2013년에는 40년 전(1973년) 수준으로 회귀해버렸다. 이 때문에 고든은 2000년대 초에 이미 3차 산업혁명의 효과가 사라졌다고 본다. 또한 그가 ICT의 미래 전망까지 어둡게 보는 이유다.

수십 년간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던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도가 18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법칙도 최근 깨졌다. 인텔은 2014년부터 매년 최신 마이크로칩의 출시를 연기하고 있고,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무어의 법칙이 둔화된 것”임을 완곡하게 시인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 디지털 혁신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던 마이크로칩의 성능 개선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일련의 내용들을 근거로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아직까지 과장된 개념이며,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춘성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또 하나의 산업혁명이라고 외치려면 산업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 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는 ‘패러다임 시프트(인식 체계의 대전환)’가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ICT 분야의 생산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ICT 접목을 통한, 침체된 제조업 부활에만 논의의 초점이 협소하게 맞춰질 경우 ‘산업혁명’이라 할 만큼 제대로 된 혁신이 진행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론을 사실상 처음 제기한 나라가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가진 독일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2010년 무렵부터 ‘산업(Industry) 4.0’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 보호가 목표다.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 역할을 자청한 슈밥 회장도 독일 출신이다.
 “기술 혁신은 수치로 판단 어려워” 지적도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안에 있는 스마트팩토리 체험관. 정부가 다양한 장기적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선행연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독일 맞춤형 패러다임 안에 갇혀,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협소한 영역 안에서만 수동적 노력을 이어가는 데 그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준연 SW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초기 단계라 새로운 혁신이 언제 어디서 출현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최대한 다양한 영역에 대해서 과감한 탐색과 연구개발(R&D)로 신속하게 상용화할 때 가능성이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양한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퍼스트 무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와 민간이 미래 전략을 공동으로 마련해 R&D에 나서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고급 인력 양성에 힘쓰는 등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접근법부터 달리 가져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진형 지능 정보기술연구원장은 “알파고의 등장 이후 한국에서 AI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정작 이런 기술의 모태가 되는 소프트웨어(SW) 분야 인재 육성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대한 논의는 진척이 잘 안 됐다”며 “SW라는 ‘토양’이 제대로 뒷받침돼야 AI 등 4차 산업혁명에서 필요로 하는 혁신이라는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SW정책연구소가 지난해 펴낸 ‘2015 SW 산업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SW 인력 수는 2010년 19만 명에서 2014년 20만1000명으로 4년 사이 약 1만 명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국내 SW 시장 규모가 94억 달러에서 111억 달러(약 13조925억원)로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아직 인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서승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자율주행차 등의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면 민간에서 하기 힘든 5년 이상의 장기적 선행연구들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정부 부처의 역할 분담이 분명해질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긍정론도 건재하다. 디지털 혁신은 생산성 증가율 같은 수치로 단순 가늠하기 어려우며, 유전공학과 AI 같은 최신 기술은 사회에 자리매김하고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준에 이르기까지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긍정론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고든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조엘 모키르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기술 혁신은 경제 성장률만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를 앞서기에 혁신이 정체된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얘기다. 또한 비판론자들마저 혁신의 역설 극복책으로 꼽는 ‘비행기나 전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실생활을 바꾸고, 경제성장을 주도할 만한 제대로 된 혁신’이 등장한다면 일거에 분위기는 전환될 수 있다. 어느 쪽이 맞을지 답은 미래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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