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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치매 어머니를 둔 가족갈등 극복] 괜찮아 하지 마요, 귀찮아 하지 마요, 혼자서 하지 마요

[후박사의 힐링 상담 | 치매 어머니를 둔 가족갈등 극복] 괜찮아 하지 마요, 귀찮아 하지 마요, 혼자서 하지 마요

65세 이상 치매 환자 70만 명 ... 아름다운 이별 준비해야
일러스트:중앙포토
그녀는 외동딸이 유치원에 갈 무렵부터 홀로된 친정 엄마와 함께 지내왔다. 친정 엄마는 그간 집안일을 책임지며 그녀를 많이 도왔다. 그런데 딸이 막내 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떠난 재작년부터 지난 일을 기억 못 하고, 했던 얘기를 반복하며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통해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하고 있다. 좀 나아져서 평소에 그럭저럭 지내는데 피곤하거나 감정이 상할 때면 증상이 더 나빠진다.

올해 초 그녀는 지방 발령을 받았다. 주중에 장모와 둘이 생활하게 된 남편은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오는 듯하다.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장모와 둘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무척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증상이 나빠지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가까이 사는 노처녀 동생이 가끔 와서 어머니를 돌보지만 본인도 직장일로 바쁘다며 귀찮아 한다. 일주일에 세 번 파출부가 오지만, 외부 사람을 싫어하는 어머니는 그것도 꺼린다. 당장은 괜찮다고 해도 결국엔 요양원에 모셔야 할 것 같은데, 어머니는 무조건 반대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겠다고 하신다. 가족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어머니가 원치 않는데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겠는가? 그냥 모시자.” 이것이 결론이다.

혼자 사는 여동생은 나 몰라라 하고, 미국에 있는 막내한테 보낼 수도 없고, 결국 그녀가 모셔야 하는데 그녀는 지방에서 지내야 한다. 집에 남은 남편은 왜 내가 장모를 돌봐야 하느냐고 푸념한다. 주말마다 다툼이 잦다. 그런데 해결책은 없다.
 치매는 나를 잃어버리는 병
한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70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13%고, 2030년이 되면 24%에 이를 전망이다.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70만 명으로 추산된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다. 80세 이상은 4명 중 1명, 85세 이상은 3명 중 1명이 치매다. 여자가 2.5배 더 잘 걸린다. 치매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치매 부모를 둔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부담은 매우 크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70%가 가족 수발을 받고 있고, 가족의 80%가 환자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근로시간을 줄였다.

치매는 뇌손상에 의한 복합 증상이다. 기억·언어·시공간 능력이 손상되고, 성격·행동·운동 장애가 이어져 사망한다. 알츠하이머 치매가 60%, 혈관성 치매가 3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아밀로이드가 축적되어 뇌세포가 죽는 병인데, 10여 년에 걸쳐 진행된다. 혈관성 치매는 혈관이 막혀 뇌세포가 죽는 병인데, 빠르게 진행되고 치료에 잘 반응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면 발병이 2년 이상 지연되고, 5년 후 요양시설 입소율도 절반 이상 감소한다.

치매는 나를 잃어버리는 병이다. 과거의 추억이 지워지고, 미래의 희망도 지워진다. 오로지 현재만이 남는다. 치매는 잊었다는 것조차 잊는 병이다. 생각이 흐려지고 느낌이 무뎌진다. 나의 정체성이 처참히 허물어진다. 치매는 다시 아기가 되는 병이다. 성격이 변하고 행동이 어린아이 같아진다. 평생 배운 것을 거꾸로 차례차례 잊어간다. 치매는 암보다도 무서운 병이다. 사랑했던 관계가 깨지고 인생이 통째로 날라 간다. 존엄성이 무참하게 짓밟힌다.
 ‘진인사대천명과 3고’
치매 초기 증상은 기억·언어·시공간능력 장애다. 물건을 못 찾고, 한 얘기를 되묻는다. 그거, 저거 등의 표현이 잦아진다. 동문서답이 많아진다. 알던 길을 잃어버리고 간단한 계산도 어려워한다. 성격 장애가 먼저 오기도 한다. 게을러지거나 화를 자주 내고, 우울·불안 증세를 보인다. 초기 증상은 건망증, 우울증 등으로 노화 증상과 구분이 어렵다. 건망증은 사소한 것을 잊고 힌트를 주면 기억해 낸다. 우울증과 경미한 기억 장애를 보인다. 중기가 되면 엉뚱한 행동이 많아지고, 다양한 망상·환각 행동도 보인다. 말기가 되어 운동장애가 오면 수발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된다.

예쁜 치매, 미운 치매도 있다. 뇌는 평소 생각하는 것으로 신경망을 두텁게 구성한다. 사랑하고 감사하던 사람이 뇌가 망가지면, 긍정적인 신경망이 작동해 예쁜 치매가 된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사람이 뇌가 망가지면, 부정적인 신경망이 작동해 미운 치매가 된다. 예쁜 치매는 주위 사람을 기쁘게 하고, 미운 치매는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서로 도우면서 잘 이겨낸다. 부부 사이가 나쁜 경우, 참았던 것이 터지면서 사이가 더 악화한다.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자.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괜찮아 하지 말자.’ 내버려두면 빨리 악화한다. 병에 대해 정확히 점검하자. 원인에 따라 100% 낫는 치매도 있다. 항치매제는 병을 고치지는 못하지만 진행을 최대한 늦춘다. 성격·행동 변화에 당황하지 말자. 달라진 모습은 병 때문이지 본래 어머니가 아니다. 우울·불안·망상·환각은 약물 치료로 조절된다. 적극적으로 관리하자. 인지 재활 훈련이 중요하다. 하루를 계획하고, 자주 메모하고 일기를 쓰게 하자. 잊은 기억이 살아나고 잃어버린 능력이 돌아온다. 뇌는 1000억 개의 세포가 100조 개의 신경망을 구성해 기능한다. 뇌세포는 재생이 안 돼도 재활은 가능하다. 평생 5%밖에 안 쓴다고 한다. 치매로 뇌세포가 죽는다 해도 남아 있는 뇌세포에 새로 저장하면 된다.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치매는 예방된다. 의사들은 ‘진·인·사·대·천·명과 3고’를 권한다. ‘진땀 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없이 담배 끊고,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대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 명(命)을 연장하는 식사를 하라. 그리고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을 피하라’는 것이다.

둘째, ‘귀찮아 하지 말자.’ 어차피 책임져야 한다. 대화하고 소통하자. 친밀한 관계가 뇌를 보호해 준다. 지지를 통해서 기억력이 유지되고, 사랑을 통해서 재학습이 일어난다. 역할을 계속 유지하자. 하던 일은 계속하고 잊으면 다시 배워야 한다. 역할이 없어지면 급격히 나빠진다. 아이 대하듯이 하자.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잘하는 것은 칭찬하고, 못하는 것은 격려해야 한다. 어머니를 저버리긴 어렵다. 아름다운 동행을 기획하자.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

셋째, ‘혼자서 하지 말자.’ 모든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역할을 서로 분담하자. 사위, 여동생, 미국에 사는 동생, 손자까지 동참해야 한다. 일주일에 전화 한 통도 어머니에게 큰 힘이 된다. 파출부, 도우미, 요양보호사를 쓰자. 지역사회에 치매지원센터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도저도 안 되면 요양원을 알아보자. 좋은 시설을 갖춘 곳도 꽤 있다. 무조건 반대할 수 있지만, 가게 되면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어머니를 외면하긴 힘들다. 아름다운 이별을 기획하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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