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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커지는 신탁시장] 로펌·병원도 신탁 시장 진출한다

[판 커지는 신탁시장] 로펌·병원도 신탁 시장 진출한다

개편안 시행 시기는 불투평... 신탁 활성화 위해서는 세제 혜택 필요
앞으로 유언장 없이도 신탁계약으로 위탁자의 생전과 사후에 자산을 관리해주는 ‘생전신탁’이 가능해진다. 유언장 작성·보관과 상속 업무를 대행하는 ‘유언신탁’ 시장도 열린다. 신탁업의 진입 문턱도 대폭 낮아진다. 현재 신탁업이 가능한 은행·보험·증권사뿐 아니라 로펌(법무법인)이나 병원도 신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월 12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신탁업 제도 개편의 주요 내용이다.

믿고 맡긴다는 뜻인 신탁(信託)은 고객(위탁자)이 자신의 재산을 맡기면 신탁회사(수탁자)가 관리·운용해주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김진홍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이번 제도 개편은 저금리와 고령화로 인해 장기적인 자산관리 수요가 늘어난 것에 대응하고 기존 신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금융당국과 금융권, 학계·법조계의 신탁 전문가로 구성한 신탁제도개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신탁업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신탁시장 규모는 2013년 154조원에서 지난해 9월 710조원으로 늘었다. 외형은 커졌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탁시장 규모는 42.7%에 불과하다. 미국은 590%, 일본은 171%에 달한다. 국내 신탁업은 2011년 도입됐지만 그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신탁업이 금융투자업을 다루는 자본시장법으로 규율되면서 신탁업 겸업이 가능한 은행과 증권사들은 단순 자산운용형 금전신탁 업무에만 머물렀다. 실적 배당형 상품인 특정금전신탁(MMT) 규모는 263조원(퇴직연금 제외)으로 이 중 단순 운용형인 MMT와 정기예금형이 전체의 44%를 차지한다. 장기 자산관리형(유언, 상속·증여), 복지형(장애인신탁) 종합재산신탁의 계약건수는 20건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 신탁업은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자산의 영역과 상품의 범위가 넓다. 유언신탁이나 금전·부동산신탁 이외에도 생명보험을 신탁자산에 포함시켜 사망보험금도 신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미국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생전에 ‘유언대용신탁’으로 사후의 유산 배분을 미리 정해 놓았다. 20%를 어린이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나머지 중 50%는 각각 어머니와 세 자녀에게 분배하도록 했다. 덕분에 그의 사후에 가족 간 유산 분쟁이 없었다.
 국내 신탁시장 규모 700조원
금융위는 미국처럼 신탁업 진입 문턱을 낮추고 운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병원·로펌 등 비(非)금융회사의 신탁업 진출을 허용한다. 증여·상속 관련 법률자문에 강점이 있는 로펌은 유언신탁전문회사가 될 수 있다. 병원도 치매요양 전문, 암 등 중증질환 치료 전문 신탁병원으로 허가받을 수 있다. 현재 신탁업을 하려면 종합신탁업자는 자기자본 250억원 이상, 금전신탁사업자는 130억원 이상, 부동산신탁업자는 1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여기에 고객이 수탁할 수 있는 재산에 금전, 증권, 채권, 동산, 지상권·전세권, 무채재산권(지적재산권)뿐만 아니라 부채, 담보권, 보험금청구권도 포함시킨다. 보험금청구권신탁은 보험 계약자가 사망할 경우 보험수익자로 지정해 놓은 사람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가령 생명보험 가입자가 생전에 보험수익자를 자녀로 정하면 가입자 사망시 신탁회사가 보험금을 수령해 자녀에게 분할 지급한다. 자녀가 미성년자일 경우 생활비를 지급하고, 성년이 된 이후 특정 시점에 남은 목돈을 준다.

이번 개편안은 신탁 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특히 신탁업에 적극 뛰어든 은행에겐 더 그렇다. 저금리로 이자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어서다.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은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63년 출생자) 세대들의 신탁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선진국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이나 보험금청구권 같은 신탁이 잘 활용되고 있는 만큼 고객 맞춤형 상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다양한 신탁상품이 나오고 있다. 신영증권은 최근 종합자산관리와 자산승계·특별부양·공익기부까지 한 번에 처리해주는 ‘신영 패밀리 헤리티지 서비스’를 출시했다. 투자자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뿐 아니라 유언대용신탁·가족안심 플랜 등의 상속과 증여 서비스도 한 번에 제공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신탁도 등장했다. KB국민은행은 고객이 사망하면 반려동물(개·고양이)의 새 부양자에게 사전에 맡긴 자금을 지급하는 ‘KB펫신탁’을 내놨다.

신탁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지만 문제는 시행 시기다. 금융위는 오는 6월까지 실무 TF를 꾸려 신탁업법을 제정해 10월 신탁업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개편안에 머무르는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탁업 법 내용이 바뀔 수 있고, 신탁업법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개편된 관련 업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융위 신탁제도개편 TF에 참여한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현재 신탁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신탁업을 위한 독립된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진홍 과장은 “현재 신탁상품은 단순히 투자상품처럼 운용되고 있다”며 “앞으로 비금융회사들이 신탁업에 진입하려면 신탁 운용 규제, 상품 개발 등이 자본시장법 체계가 아닌 독립된 법이어야 본래의 유용성이 충분히 발휘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 전유물’ 인식 여전
신탁에 대한 국민의 선입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신탁상품은 일반 상품보다 수수료가 높고,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조재영 NH투자증권 강남PB부장은 “신탁 상품은 상품을 추가할 때마다 관리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금융상품보다 수수료가 높은 편”이라며 “신탁은 가업 승계, 유언 등 여전히 특정 고객층에만 관심이 머물고 있어 일반 고객들이 얼마나 신탁에 가입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탁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위도 세제 혜택를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세제 혜택 범위와 대상에 따라 신탁시장 활성화 여부가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신탁은 수탁자가 고객을 대신해 자산을 관리하는 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며 “신탁사들의 허용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신탁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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