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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보디 랭귀지, 뭘 숨기고 있을까

트럼프의 보디 랭귀지, 뭘 숨기고 있을까

검지와 엄지로 동그랗게 만드는 ‘오케이, 아주 좋아!’라는 손짓은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
트럼프는 마이크 앞에 서지 않을 때도 몸짓 언어로 아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말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매우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메시지를 이해한다. 특히 손짓이나 몸짓 같은 비언어적 단서는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자녀를 양육할 때, 연애할 때, 직장을 구하려고 면접 볼 때, 심지어 식당에서 제때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때도 그런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언어적 의사전달 수단은 공직자를 포함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평가할 때도 상당히 중요하다. 손짓과 몸짓, 자세, 표정, 심지어 누군가 다른 사람 곁에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느냐 등의 시각적 단서를 적절히 해석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 미국 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안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메러비안 교수는 두 번의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에선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할 때 말의 의미와 목소리 톤, 즉 음색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말 자체의 의미보다 음색이 훨씬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예를 들면 가라앉은 목소리로 상대편을 반기는 인사말을 했다면 상대편은 이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을 반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실험에선 음색과 얼굴 표정 같은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음색과 표정의 중요성이 2:3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예를 들면 당신과 나 사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상대편이 말하면서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을 기피한다거나 얼굴에 불안감이 보인다면 상대편의 진심은 나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두 실험을 종합한 결과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은 7%에 불과하고, 청각적 요소는 38%, 시각적 요소는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렇게 나온 7:38:55 비율을 ‘메러비안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시각적 요소란 몸짓 언어(body language)를 가리킨다.

널리 인용되는 동시에 많은 논란도 일으킨 이 실험은 메러비안의 법칙이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진 않겠지만 비언어적인 단서가 의사전달에서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이런 사실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의사전달에 사용되는 시각적인 단서가 당사자의 말하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명인사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최근의 연구는 비언어적인 의사전달 수단이 그들의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땐 그런 시각적 단서가 그들의 진정한 생각과 느낌을 파악하는 더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신임 미국 대통령이 좋은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언어적 의사전달 수단이 위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완벽한 모델이다.”
지난 1월 중순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거기서 트럼프 당선인은 러시아 정부와 자신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며 언론을 거세게 비판했다(언론이 자신에게 불리한 ‘가짜 뉴스’를 내보낸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자신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언론사 기자에겐 조용히 하라며 질문을 원천봉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함치고 손가락질하는 등 공격적인 의사전달 수단을 사용했다. 몸짓 언어 전문가로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패티 우드는 그런 비언어적인 단서 속에 그가 지나치게 방어적이며 뭔가 숨길 게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를 사로잡는 0.3초: SNAP(Snap: Making the Most of First Impressions, Body Language and Charism)’의 저자인 우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부터 정치인의 비언어적 단서를 분석했으며, 특히 아돌프 히틀러의 경례와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윙크에 관한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 적이 있다.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가 제스처와 자세, 표정이 혼동을 주는 동시에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언어적 의사전달 수단이 위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완벽한 모델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그의 말에 담긴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의 말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드는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누군가의 의사전달 수단을 평가할 때 특정 시나리오와 환경(트럼프의 경우 많은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끈 기자회견) 아래서 그 사람에게 무엇이 습관적으로 나타나는지에 주목한다. 동시에 그 사람의 ‘기본적인’ 행동방식도 고려한다. 우드는 지난 18개월 동안 트럼프 특유의 의사전달 습관을 분석했다. 그녀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중 앞에서 말하는 방식이 대선 출마 이래 조금씩 변했다. 예를 들어 지금 그는 제스처를 취할 때 손을 더 높이 든다. 그런 모습은 대선 승리 후 스스로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트럼프가 표정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도 진화했다. 선거운동 초기엔 그가 ‘폭넓은 감정 범위’를 가졌다고 우드는 설명했다. 웃음에서 분노로 자유롭게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점점 화난 표정을 더 자주 보이는 변화가 나타났다.”

반면 변화가 없는 습관도 있다. 질문을 회피하거나 관련 없어 보이는 애매하고 단편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이 그 예다. 우드는 “그의 기본적인 행동방식은 남을 속이려는 사람과 같은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수사 과정을 찍은 심문 영상을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받을 때 나는 주로 그런 단서를 찾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결된 문장으로 말하지 않으며 서로 관련 없는 단어를 섞어서 답변한다. 그런 습관은 일반적으로 기만의 표시로 인식된다.”

그런 언어적인 메시지는 시각적 단서로 뒷받침된다. 검지와 엄지로 둥근 원을 만드는 ‘오케이, 아주 좋아!’라는 손짓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간판 제스처가 그 예다. 연설할 때는 대부분 ‘내가 확실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꽉쥔 주먹을 들어 보이도록 훈련 받는다. 그러나 트럼프의 제스처는 다르다. 우드는 그의 연설을 보고 듣는 사람에게 바로 그런 제스처가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확실한 언어적 메시지에서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손동작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드는 “트럼프 대통령은 무기를 상징하는 듯한 제스처도 많이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그는 기자회견에서 “난 러시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할 때 ‘여러 번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제스처를 보였다. 또 그는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가 그와 러시아 정부의 관계를 암시하는 미확인 정보 보고서(‘트럼프 X파일’로 불리며 러시아 측이 트럼프에 대해 불리하고 ‘음란한’ 개인 정보를 수집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를 게재한 것을 질책할 땐 “실패한 쓰레기 더미”라고 악담하며 손을 한쪽으로 휘저었다. 우드는 “쓰레기 같은 것을 쓸어 치워버리려는 듯한 제스처”라고 설명했다. 그런 제스처는 거의 명확한 시각적 단서다. 그렇다면 그건 그의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단서가 일치하는 비교적 드문 경우 중 하나다.
트럼프는 마이크 앞에 서지 않을 때도 몸짓 언어로 아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2차 대통령후보 토론에서 트럼프의 성희롱 발언 문제와 관련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질문에 답하는 동안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 뒤에 웅크리듯 서 있었다. 심리학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도 그가 그녀를 겁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지난 1월 중순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법률자문 셰리 딜런이 나서서 발언하는 동안 무대 위에 선 다른 사람들(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은 엄숙한 표정으로 두손을 모아 아랫도리를 가리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연설계에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알려진 자세다. 기자회견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존중과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단서다.

하지만 그때 트럼프는 두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들 곁에 서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우드는 그런 몸짓을 두고 “스스로 진정시키는 모습”이라고 불렀다. 또 그는 손톱도 여러 번 깨물었다. 우드는 “스스로 꾸짖으며 분노를 억누른다는 것을 시사하는 잠재의식적인 단서”라고 설명했다.

또 트럼프는 여러 번 머리를 살짝 돌려 뒤를 쳐다봤다. 우드는 그런 행동이 “우두머리 수컷으로서 늘 뒤의 잠재적 공격을 경계하려는 원초적인 욕구”를 반영한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곧바로 정면을 주시했다. “그건 자신이 주목의 초점이 되고 싶다”는 뜻이라고 우드는 덧붙였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한마디로 따분해 보인다는 것이 우드의 결론이다.

- 제시카 퍼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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