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푸틴 대통령은 왜 미소 짓나

푸틴 대통령은 왜 미소 짓나

중동에서 미국이 남긴 공백을 러시아가 메우기 시작하면서 지역 정세가 요동친다
지난 1월 11일 아침, 육군 원수 칼리파 하프타르(73)는 리비아의 항구 도시 토브룩 인근 지중해 바다에 떠 있는 항공모함의 계단 위를 오르고 있었다. 해군 군악대의 음악, 의장대의 사열과 함께 하얀 제복을 입은 제독이 이 리비아의 독재자를 맞이했다. 하프타르는 2011년 미군의 지원을 받고 독재자 무아마드 알 카다피를 축출한 리비아 반정부군의 수장이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미국 시민이기도 하다.

의례가 끝난 뒤 하프타르는 갑판 아래로 내려가 중동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유력 인사와 철저한 보안 속에 화상회의를 가졌다. 공식적인 회의 주제는 테러리스트 격퇴였지만, 양쪽 모두 비공식 주제가 따로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유엔이 지원하는 허약한 리비아 정부를 무너뜨리고 하프타르의 권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가 바로 그 주제였다.

하프타르는 미국 정부 인사들과 가깝지만 이때 그가 비밀리에 회의를 가진 인물은 미국인이 아니었다. 하프타르가 탑승했던 것은 러시아의 유일한 항공모함인 쿠즈네초프 제독호였다. 그 안에서 하프타르가 만난 인사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었다.

중동의 다른 여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하프타르도 러시아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지난 30년 동안 변두리에 머문 끝에 비로소 다시 한번 중동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6개월 동안만 해도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의 향방을 바꿔놓았고, 시리아 평화협상을 주도했으며, 터키의 독재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고,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 심지어 이스라엘에까지 손길을 뻗쳐 왔다. 지난 2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동 지역 지도자들을 25번이나 맞이했다. 뉴스위크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보다 5배 많은 횟수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정부는 중동 지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오바마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 하에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나마도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달성한 튀니지를 제외하면 6년 전 아랍의 봄은 중동 지역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대신 불안정성과 극단주의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같은 국가에서 번성한다. 리비아와 예멘에 대한 서구 사회의 개입은 아직도 내전에 시달리는 파탄국가를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면서 시리아 반정부군을 지원하는 서방의 전략은 시리아 내전을 오히려 악화시킨 것은 물론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키우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미국의 오랜 외교적 과제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2국가 해법은 그 어느 때보다 요원해 보인다. 중동 지역에서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남은 성과라곤 2015년 타결된 이란 핵 협상뿐이다. 그마저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태로워졌다.

레오니드 슬러츠키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회 의장은 “오바마의 중동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고 성과도 없었다.”

미국의 후퇴를 지켜보면서 러시아는 기회를 포착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소련 시절 중동에 행사했던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은 여러모로 이익이다.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군사력도 늘릴 수 있다. 외교적으로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부과된 서방의 제재를 약화시키는 등 여러 사안에서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전략적 영향력을 되찾는 것”이라고 러시아 상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올렉 모로조프 의원이 뉴스위크에 말했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이사장인 드미트리 트레닌은 “푸틴 외교 정책의 목적은 국제적인 패권 국가로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에게 있어 중동에서 미국과 경쟁한다는 것은 패권의 상징과도 같다.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한 일들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목적들보다 더 중요한 건 극단적 이슬람 테러리즘을 막고자 하는 러시아의 욕구일지도 모른다. 1990년대 러시아 북캅카스에서 잔혹한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해준 것이 바로 이 같은 공포다. 러시아의 자생적 반정부 세력들은 러시아 정부와 대다수 러시아인이 인권이나 자유보다 질서를 중시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미국이 이라크와 리비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려다가 오히려 내전이 격화된 것을 보면서 푸틴 대통령은 분명한 선택지를 깨닫게 된다. 설령 잔인하더라도 힘 있는 정권으로 외세를 굴복시키거나 “국가 체제의 분열과 테러리즘의 부흥”을 맞이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러시아의 안보
지난해 아제르바이젠에서 만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과 푸틴 대통령. 1990년대 후반 러시아는 이란이 첫 원자력 발전소 부셰르를 건설하도록 도왔다.
IS가 시리아에서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IS를 격퇴한다는 서방의 노력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의구심도 커져갔다. 2015년 9월 중순 러시아 정보기관은 최소 2500명의 러시아인이 IS에 가담했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이 보기에 이는 아사드 정권의 유지와 성공을 러시아의 국익으로 여기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주된 목적은 IS에 가담하기 위해 그곳에 간 러시아인들을 절대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아체시아프 니코노프 러시아 하원의원은 말했다. “러시아의 중동 개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러시아의 안보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방어적이든 아니든 러시아의 중동 복귀는 놀랍고도 갑작스런 성공을 거뒀다. 동시에 미국의 패권과 위신은 크게 실추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중동에서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적수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IS를 격퇴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리아에선 하늘에 러시아 전투기, 지상엔 러시아 육군이 있고 리비아 해안엔 러시아 전함이 있다. 친러 성향 지도자들이 리비아와 시리아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앞으로 트럼프는 중동에서 뭘 하든 항상 푸틴 대통령이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지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어떤 미국 대통령도 겪지 못한 일이다.

냉전 기간 동안 중동은 미국과 러시아의 텃밭이었다. 소련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표를 자부했다. 반서구적·사회주의적 성향인 아랍 민족주의를 이끈 가말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러시아를 이 지역으로 불러들여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줬다. 나세르가 1956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분쟁에서 영국·프랑스 등 북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하던 국가들을 물리친 이후 러시아의 무기와 돈이 이 지역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련 공학자들은 이집트 아스완에 댐을 지었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도시들을 현대화하는 것을 도왔다. 그와 동시에 아랍 지역의 관료, 의사, 전문가들이 한 세대에 걸쳐 러시아에서 공부했다. 향후 이집트 대통령이 되는 호스니 무바라크나 벵가지 군사학교 졸업 후 1970년대 소련에서 훈련받은 하프타르도 그중 하나였다.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는 리비아, 알제리,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등 국가들의 정보기관 설립을 도왔다.

중동의 공산화 도미노를 막는 데 혈안이 된 미국 정부는 돈을 투입했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나세르 사망 이후 이집트가 미국 군사지원금의 주요 수혜자였다.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 터키는 미국의 군용기와 전함,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됐던 중거리 핵 미사일 주피터까지 배치를 허가했다. 주피터가 터키에 배치되자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면서 1962년 10월엔 거의 핵 전쟁 직전까지 긴장이 고조되는 일도 있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리비아부터 시리아까지 러시아의 우방들은 루블화 지원이 끊어졌음에도 강한 반서방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미국의 지원을 받다가 2003년 미국에 의해 축출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었다. 러시아는 이를 미국의 명백한 침략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발생하면서 리비아의 카다피,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튀니지의 지네 엘 아비딘 벤 알리가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 기간 동안 구소련 국가들에선 ‘색깔 혁명’이라 불린 일련의 반정부 운동으로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즈스탄, 조지아의 친러 성향 정부도 축출됐다. 2011년엔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러시아에까지 밀려들며 시민 1만 명이 거리로 나와 푸틴의 세 번째 대선 출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인이 보기에 이 같은 시위들은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그러나 러시아인에게 아랍의 봄은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의 패권에 반대하는 지도자들을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계략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인 63%까지 하락했고 유럽식 진보 이념과 미국과의 화해를 주장한 시위 지도자들이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는 듯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집트나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시위는 러시아를 겨냥한 계략”으로 생각했다고 러시아 주재 서구 외교관은 말했다. “우리는 이를 과대망상증이라고 무시했다. 실제로 과대망상증이지만, 러시아인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 걸쳐 러시아는 유엔에 주기적으로 저항했다. 1999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폭격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막으려는 시도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두 사건 모두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누르고 뜻을 관철시켰다. 러시아가 미국의 주목을 받은 일이라곤 이란과의 밀착 정도가 전부였다.

1990년대 후반 러시아는 이란이 샤하브3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이후 이란이 첫 원자력 발전소 부셰르를 건설하도록 도왔다. 2008년 미국이 이란에 핵 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때 러시아가 중개인 역할을 맡았다. “미국은 이란을 상대할 때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세르게이 키리옌코 전 러시아 총리는 말했다. 키리옌코는 러시아와 이란의 협상 당시 러시아국영원자력공사(ROSATOM)의 사장을 지냈다. “이란인은 우리를 신뢰했다. 우리가 그들의 안전을 보장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는 소리 없이 서서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에 침투했다. 러시아의 주요 동맹은 70년대에 러시아민족우호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무드 압바스였다. 이스라엘 연구자들은 KGB 기록담당관 바질리 미트로킨이 1991년 유출한 문서를 근거로 압바스가 소련에 의해 암호명 ‘크로토프’로 불리며 조종받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측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러시아 측 요원이든 아니든 압바스는 “러시아인을 좋아했으며 그들을 만족시키려 했다”고 협상가 출신인 지아드 아부 자야드 전 팔레스타인 장관은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2012년 서안지구를 거쳐 베들레헴으로 향할 때 압바스는 그에게 약간의 토지를 선물로 줬다. 지금 러시아 문화센터가 세워진 땅이다. 그해 압바스는 베들레헴과 예리코의 도로에 푸틴 대통령과 그의 후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푸틴 대통령(왼쪽)은 지난해 10월 이스탄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만나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이처럼 눈에 띄는 공개적인 제스처와 함께 조용하고 지속적인 외교 활동도 이어졌다. 러시아의 팔레스타인 지원 계획을 진두지휘한 것은 아랍어가 유창하고 안경을 쓴 64세의 외교관 미하일 보그다노프였다. 푸틴 대통령은 보그다노프를 2012년 중동 특사로 임명했다. 시리아, 이집트, 이스라엘 주재 대사를 지냈던 보그다노프는 이집트의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부터 리비아의 하프타르까지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오바마 정부 하에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점차 멀어진 것도 보그다노프에겐 큰 기회였다. 미국 정부엔 중동에서 발을 뺄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군사 개입을 줄이고 싶어 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되면서 중동의 석유에 상대적으로 덜 의존하게 됐다. 그러나 보그다노프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리비아와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의도치 않은 결과였다.

“러시아 외교 정책의 핵심은 극단적 실용주의다. 이념에 상관없이 각 지역의 주요 국가들과 교류한다”고 이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니콜라이 코자노프는 말했다. 현재 코자노프는 미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서 일한다. “이는 러시아 전략의 주요 원칙이자 중동 지역에서 갖는 주된 강점이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이집트와 시리아에 민주주의나 인권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러시아는 미국이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에서 개혁을 밀어붙일 때 기회를 포착했다”고 미국 국무부에서 근무했던 스티브 세시 전 예멘 주재 미국 대사는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동 유력 인사들에게 무기를 싼 값에 팔 준비 또한 돼 있었다. 러시아는 2012년 이후 이집트에 40억 달러에 달하는 양의 무기를 팔아치우고 지난해 11월부터는 이란과 1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중동이 러시아 외교 정책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서방과 직접적인 갈등을 빚게 됐다. 둘째는 그로부터 1년 뒤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서 중동의 최대 중재자로 자리매김할 기회를 잡게 된 일이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구세주
리비아의 군 장성 칼리파 하프타르도 중동의 다른 여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2015년 9월 30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전투기 편대를 시리아 친정부 세력의 거점인 라타키아 근처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이는 1979년 참패를 겪었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로 러시아가 구소련 경계 바깥에 군대를 파견한 첫 사례였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30여 대의 러시아 전투기가 아사드 편에서 참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동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파견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러시아 외교 정책에 있어서 중대한 순간이었다. 러시아 군용기들이 IS를 격퇴 중이던 미국 및 그 우방들과 같은 영공을 비행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 코메르산트 라디오는 시리아 국민이 푸틴 대통령을 ‘황제’라 부르며 칭송한다고 보도했다. TV 뉴스에선 일기예보를 내보내면서 시리아를 폭격하기 좋은 날씨라는 발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말까지 자신들의 전투기가 3만 번 출격해 6만2000개의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자랑했다. 2014년부터 지난 1월까지 시리아와 이라크의 IS에 대항해 13만5000번 출격하고도 3만2000개 미만의 목표물을 파괴하는 데 그친 미국 주도 연합군과 대조되는 성과였다.

연합군은 이 차이가 자신들이 민간인 사상자를 막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애시튼 카터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공습이 IS를 격퇴하는 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공습이 미군이 지원하는 반군을 무력화하고 아사드 정권이 전략적 요충지 알레포를 수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본다.

모로조프 의원은 “푸틴은 개입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아사드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시리아에 어떤 형태로든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사드가 패배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중동에서 러시아가 행사하는 영향력도 사라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푸틴 대통령의 시리아 전략은 1년 전 러시아를 “안쓰러운 일개 지역 패권국”이라 부른 데 대한 상징적 반격이 됐다고 트레닌 이사장은 말했다.

러시아가 자칭 시리아의 구세주 역할을 가장 상징적으로 수행했던 사건은 지난해 5월 러시아 특수부대와 공습지원에 힘입은 아사드가 IS로부터 고대 도시 팔미라를 되찾은 일이었다. 비록 러시아의 공습 대부분은 미국이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가장 훌륭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와 마릴린스키 교향악단을 보내 IS가 처형 장소로 쓰던 팔미라의 고대 극장에서 세계 각국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했다. 물론 여론을 의식한 쇼였지만 그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푸틴과 손잡은 ‘곰’ 다섯 마리 - 미국이 비용이 많이 드는 중동 개입을 철회하기 시작하자 푸틴 대통령은 새 동맹을 구축하고 극단주의와 싸워 세계적인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기회를 포착했다.
팔미라에서 러시아가 거둔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했다. 러시아 교향악단이 공연을 벌인지 7개월 뒤인 12월, 기자들과 군대가 팔미라를 떠나자 IS가 이 도시를 다시 차지했다. 러시아 정부는 패배의 탓을 미국의 비협조적 태도로 돌렸다. 이후 러시아는 팔미라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레포가 아사드 정부의 수중에 떨어지고 러시아가 평화 협상을 주도하는 지금 미국의 새 행정부는 외교와 군사 양면에서 시리아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한 국무부 고위 관료가 익명을 전제로 뉴스위크에 말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서라면 전쟁범죄라 비난 받을 만한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 덕분에 시리아에서 그만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적과의 동침
지난 18개월에 걸친 러시아의 성공적인 시리아 개입은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러시아의 오랜 적이자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새 친구가 됐다. 1년 전 터키 영공을 17초 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를 터키가 격추했을 때 푸틴 대통령은 격노했다. 보복 조치로 푸틴 대통령은 터키행 러시아 관광 전세기 운항을 중단시키고 터키산 제품 제재를 개시했다.

그 이후로 두 가지 사건이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아사드의 알레포 승리와 실패로 끝난 터키의 쿠데타였다. 지난해 7월 발생한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적 숙청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의 반발을 샀다. 한때 동지였던 이들의 비판에 터키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응수했다.

“러시아 없이는 시리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말했다. “러시아와 터키의 우정의 축은 복구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바마와의 관계가 “실망스럽다”고 인정했다. 오바마 정부는 시리아 북부에서 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 전사들에게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인 미국 거주 성직자 펫훌라흐 귈렌을 인도하라는 터키 측 요구도 거부했다.

그 결과 터키 고위 관료들은 미국에 내줬던 시리아 국경 근처 인시리크 공군기지 이용 권한에 공개적으로 회의감을 드러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정치인들에게 EU를 향한 집착을 버리고 그 대신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경제협력기구(SCO) 가입을 고려하라고 주문했다. SCO는 푸틴 대통령도 선호하는 기구다. 지난 1월엔 사상 최초로 러시아와 터키 공군이 IS를 겨냥해 합동 공습을 실시했다.

이 새로운 친선관계는 “계산적”일 수도 있으나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채텀하우스 터키프로젝트를 이끄는 파디 하쿠라는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와 미국의 거리를 떨어뜨리고 싶어 한다.” 러시아가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원칙인 ‘적의 적은 나의 친구’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중동의 또 다른 주요 국가인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는 낙오된 국가들 간의 동맹처럼 보였으나 이젠 매우 견고해졌다. 이란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시리아 평화협상에 참가해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릴 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이 회담에서 평화 협상 절차와 시리아의 새 헌법이 논의됐지만, 이는 불가피하게 현재 지상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아사드 정권에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S-300 방공 미사일 시스템 등 러시아가 공급하는 무기들은 이란이 경쟁 국가인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군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해줬다. 그 대가로 이란은 러시아에 하마단 공군기지 이용 권한을 제공해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을 돕고 자국 영해인 카스피해에서 러시아 군함들이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허가했다. 가장 중요한 건 러시아가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면서 이란이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선 저항의 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라고 리처드 달튼 전 이란 주재 영국 대사는 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공습이 아사드 정권의 전략적 요충지 알레포를 수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본다.
이란은 수십년 동안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었지만 이집트는 군사·정보·외교 부문에서 미국의 주요 우방이었다. 미국의 군사지원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받은 이집트는 오바마가 2013년 엘시시의 집권 이후 이 지역에서 발을 빼고 있음에도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한편 이집트는 지난해 러시아 공군 훈련을 지원하면서 지역 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러시아의 입지를 확인했다. 러시아군이 아프리카에서 가진 첫 훈련이었다. 지난해 11월 이집트는 유엔에서 러시아의 시리아 관련 결의안을 지지한 4개국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푸틴 대통령에 지지를 보냈다. 러시아는 그 대신 엘시시 대통령의 동맹인 하프타르가 권력을 독점하려 애쓰는 리비아에 대한 유엔 제재를 해제하도록 손을 쓰고 있다. “푸틴이 제제 해제에 착수할 것”이라고 하프타르는 지난 1월 쇼이구 국방장관와의 화상회의 이후 기자들에게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가깝고도 중요한 우방인 이스라엘과도 친분을 쌓는 데 성공했다. 이제 러시아 전투기는 이스라엘이 1967년 시리아로부터 점령해 분쟁 지역이 된 골란고원까지도 운항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5년 9월 이후 러시아를 세 차례나 찾아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오바마를 만난 횟수보다 더 많다. 네타냐후와 오바마는 사이가 좋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지난해 11월 양국의 수교 25주년을 기념하고 무역 거래를 늘리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러시아가 이스라엘의 두 적인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란을 상대하는 데 협력해주길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염려도 있다. 오바마는 이란 핵 협상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대를 무시하고 네타냐후 총리에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을 가로막는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지난 2월 2일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현 국경을 넘어 정착촌을 확대하거나 새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은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바마 정부 때의 기조를 되풀이했다.

반면 러시아는 이스라엘에 미국처럼 피곤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미국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경제 제재를 가하자 푸틴 대통령은 “제2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지역 내에서 가능한 모든 이들을 친구로 삼으려 한다고 즈비 마겐 전 러시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에 대한 레버리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은 그 레버리지 중 하나다.”

푸틴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6월 모스크바에서 세 번째로 만났을 때 러시아는 네타냐후 총리와 압바스의 평화 협상을 모스크바에서 갖도록 주재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무조건적” 동맹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실용주의에 기반을 둔 이 우호적 관계에서 두 지도자는 기회를 포착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바마 정부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할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이처럼 중동엔 현재 수많은 윈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불행히도 그중에 미국에 해당되는 사례는 하나도 없다.
 아군인가 적군인가
앞으로 트럼프는 중동에서 뭘 하든 항상 푸틴 대통령이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지 고려해야 한다.
오바마는 부시가 중동이나 다른 지역에서 펼쳤던 미군의 실력 행사 전략에서 후퇴했지만, 트럼프는 70년째 이어지는 민주주의 전파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완전히 버리려는 듯하다. 미국의 ‘개입과 혼돈’ 정책은 이제 멈춰야 한다고 지난해 12월 트럼프는 말했다.

러시아가 보기에 미국의 태도 변화는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위험한 힘의 공백을 만들게 된다. 서방에선 러시아의 부상을 잃어버린 제국의 위신과 영향력을 되찾기 위한 것으로 여기지만 러시아 고위 관료 다수는 러시아의 중동 정책이 안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와 마릴린스키 교향악단은 팔미라의 고대 극장에서 세계 각국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연했다.
“얼마나 많은 극단주의자들이 중동에서 체첸으로 건너왔는지 기억한다”고 레오니드 칼라슈니코프 러시아 하원 의장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90년대 북캅카스에선 외국에서 온 성전주의자들이 반군이 일으킨 분리주의 전쟁에 참여했다. “이 지역은 중앙아시아와 인접해 있다. 러시아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테러리즘이 이곳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는 시리아에 개입해야만 한다.”

러시아 연방보안국 국장을 지냈던 니콜라이 코발레프 러시아 하원의원은 “우리 국민 수천 명이 그곳에 가서 IS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의 악인들이 시리아로 모여들고 있다. 이슬람교는 핑계일 뿐이다. 이 사람들은 남을 굴복시키고 여성을 성 노예로 삼는 걸 즐기는 족속들이다. 그들이 러시아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는 건 국가 안보의 문제다.”

러시아는 중동에서 확보한 지배력을 지키려는 의지로 가득하다. 이 지역 지도자들은 미국과 러시아 양쪽에 협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하고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 정착촌에 우호적 견해를 가진 대사를 이스라엘에 파견했다. 이는 모두 네타냐후 총리와 푸틴 대통령의 관계를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러시아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트럼프에 아무런 기대도 없다”고 1994년 오슬로 평화협정 당시 팔레스타인 측 협상가를 맡았던 아부 자이드는 말했다.

이스라엘이 러시아와 미국 모두에 우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이집트 역시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에게 협력을 기대한다. 엘시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당선을 전화로 축하한 첫 해외 정상이 됐다. 그는 트럼프의 유세 기간 동안 트럼프를 만난 첫 아랍계 지도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주한 이래 더 깊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취임 후 아랍 지역에 보낸 첫 번째 제스처는 엘시시 대통령에게 전화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밖에도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를 워싱턴으로 초청하고 여러 아랍 지도자들에게 전화해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트럼프와 엘시시 대통령은 세상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유럽외교협회의 중동·북아프리카 정책 연구원 휴 로버트는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 등 중동 문제에서 “러시아와 이집트, 미국이 협력하는 것을 상상하기도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런 3자 협력은 비밀리에 이집트와 외교안보적 협력을 강화해왔던 이스라엘에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미국 입장에서 이는 아주 새로운 전략이다. 지난 중동 평화 협상에선 미국이 항상 주도적인 중개인 역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려야 한다. 평화협정을 성사시키고 테러리즘을 박멸해 미국의 국익을 지키려면 지난 8년간 미국 대통령을 그토록 괴롭혔던 인물에 계속해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진실 말이다.

- 오웬 매튜스, 잭 무어, 대미언 샤코브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효성,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계열 분리 가속화 전망

2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3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4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5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6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

7남양유업, 60년 ‘오너 시대’ 끝...한앤코 본격 경영

8하나은행, 은행권 최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금 지급

9행안부 “전국 18개 투·개표소 불법카메라 의심 장치 발견”

실시간 뉴스

1효성,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계열 분리 가속화 전망

2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3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4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5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