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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틈새 기웃거리는 러시아

북·중 틈새 기웃거리는 러시아

최근 들어 중국이 핵도발 막기 위해 미국과 함께 북한에 압박 가하면서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있지만 북한엔 여전히 중국이 더 중요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바로 그날 밤에 시리아 공격 명령을 내렸다. / 사진 : ALEX BRANDON-AP-NEWSIS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최대 동맹국인 중국과 불화를 빚으면서 러시아가 북한에 전략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으로선 경제적·정치적으로 러시아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러시아의 그런 시도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본부를 둔 전략정보 분석업체 스트랫포(STRATFOR)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북한과 중국 사이의 공개적인 갈등(실제로 매우 드문 현상이다)을 이용하려 한다.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 모두 북한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막아주는 완충지대로 간주한다. 지난 몇 년 동안에도 러시아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지만 최근 러시아의 그런 움직임은 크렘린과 백악관이 외교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는 동시에 미국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저지를 위해 중국을 압박하면서 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스트랫포는 ‘러시아가 북한에서 기회를 잡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북한의 대중국 관계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러시아가 한반도를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며 국제적으로 고립된 이웃나라인 북한과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태세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고 북한에 압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그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이용할 용의가 있는 듯하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계획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장을 추진해온 미국의 오랜 적인 북한을 상대로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선언은 그 하루 전 시리아를 선제 타격한 것과 같은 크루즈 미사일로 무장한 미국 해군 항모강습단의 한반도 근해 파견으로 뒷받침됐다.

미국은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했다고 비난한 지 7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시리아를 공격했다(시리아 정부와 러시아는 화학무기 공격을 강하게 부인했다). 트럼프가 그처럼 무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곧바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도 유사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중국이 미국에 평화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북한의 가장 가까운 정치적·경제적 파트너지만 2003년 북한이 첫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반대해왔다. 최근 중국과 북한은 관영 매체를 통해 설전을 벌였다. 지난해 선거운동에선 걸핏하면 중국을 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가 북한 핵 프로그램을 단념시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잘 협조해준다며 칭찬하자 북한이 중국에 반발한 것이다. 러시아를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북한의 실패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비난했지만 그 결의안은 러시아가 대화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쪽으로 문구를 수정할 것을 안보리에 설득한 후에야 가까스로 통과됐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연합군이 한반도에서 일제를 격파한 뒤 미국은 38선 남쪽, 소련은 북쪽을 점령했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경쟁하는 이념을 가진 정부의 수립을 후원했고 남북 사이에 정치적 갈등이 심화됐다. 결국 북한이 남침함으로써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당시 중국은 북한군과 함께 싸웠지만 소련은 대부분 북한군의 공격을 배후 조정했고 그후 거의 반 세기 동안 북한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이제 러시아는 또 다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강대국으로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영국 노팅엄대학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의 웹사이트에 지난 4월 14일 게재된 기고문에서 앤서니 리나 분석가는 “러시아가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예전처럼 북한의 주요 국제 후원국으로 중국을 대체한다는 발상은 중국과 소련을 서로 경쟁시킨 북한의 냉전시대 전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볼 때는 바람직한 조짐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약 16㎞의 두만강을 맞대고 국경을 마주한다. 이 국경을 통해 이뤄지는 러시아와 북한의 무역은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붕괴 이후 크게 줄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3~14년 국경 인근 나진-하산 구역의 대대적인 개발로 양국의 무역과 수송이 더욱 활발해졌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중국은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특히 2011년 김정은이 등극한 이래로 그런 문제가 심화됐다. 그의 부친 김정일은 중국과 친했다.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는 동안 북한과 중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추진에도 상대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정은은 6년째로 접어든 통치 기간에 한번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 특별대표 같은 중국 인사들에게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 대교 밑을 지나가는 중국 경비정.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양국은 공개적인 설전까지 벌였다. / 사진 : NEWSIS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부소장이며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의 편집장인 제니 타운은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래 중국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중국과 정치적·사업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사실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2월 우다웨이 대표가 북한을 방문한 동안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했을 땐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워싱턴 DC 소재 공공정책 연구소 스팀슨센터의 선임 연구원으로 38노스 기고자인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 윤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부친만큼 중국을 존중하지 않아 그와 시진핑 주석 사이에 ‘성격 충돌’이 생겼다.

이같은 무시에다 최근의 의견충돌까지 겹쳤지만 그런 악재가 중국과 북한 사이의 수십 년에 이르는 동맹관계를 완전히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중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윤선 연구원은 러시아가 최근 북한에 더 가까이 접근한다기보다 중국이 대북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북한으로선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러시아 관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북한으로선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기보다는 중국과의 관계가 약화됐다는 게 맞다.”

그러나 러시아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의 내전에 개입한 상태에서 실제로 한반도 문제에 깊이 간여할 의사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유엔에서 시리아 문제를 두고 중국은 얼마 전까지 서방의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러시아를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 의혹이 불거지고 며칠 뒤 미국이 그 보복으로 시리아 정부군을 미사일로 공격한 뒤엔 상황이 상당히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바로 그날 밤에 시리아 공격 명령을 내렸다. 며칠 후 유엔 표결에서 중국이 기권하면서 러시아만 거부권을 행사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래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정책 충돌에서 중국이 유연성을 보이겠다는 신호였다.

타운 편집장은 뉴스위크에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되고 북한이 정치적으로 중국에서 멀어지면서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정치적인 공간이 열렸지만 그런 관계가 발전하는 수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러시아는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는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자원을 북한에 제공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중국이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한다). 특히 러시아가 중국에 맞먹는 수준으로 북한 경제를 지원하려면 인프라 구축에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중국이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에 협력한다고 해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윤선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반도와 근해의 미군 주둔을 강하게 반대하는 중국이 오랜 동맹국인 북한을 쉽게 미국이나 러시아에 넘겨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중국은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명심해야 한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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