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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박이왕잠자리 암컷의 이런 특이한 행동은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번식하기 위한 선택적 진화의 결과인 듯암컷 잠자리가 수컷의 교미 시도를 피하기 위해 죽은 체한다. 날다가 떨어져 땅에서 꼼짝하지 않고 수컷이 다른 암컷을 찾아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동물학자 라심 켈리파가 발표한 연구 결과다. 잠자리가 교미를 피하기 위해 죽은 체하는 것을 목격한 첫 사례로 동물이 그런 목적으로 죽은 시늉을 하는 매우 드문 경우 중 하나다.

켈리파는 스위스 알프스에서 기온이 잠자리 유충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잠자리 알을 수집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2년 동안 연구 활동을 하면서 그는 별박이왕잠자리 암컷의 특이한 행동을 목격했다.

그는 2015년 7월 5일 학술지 에콜로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고도 약 2000m인 아로사 부근의 연못에서 기다리는 동안 잠자리 한마리가 다른 잠자리에 쫓기더니 갑자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떨어진 잠자리는 암컷이었다. 그 잠자리는 떨어져 뒤집힌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잠자리가 뒤집혀 있는 자세는 비정상적이다. 뒤따르던 수컷 잠자리는 잠시 그 위를 떠돌다가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떨어진 암컷은 의식이 없거나 죽은 것 같았지만 내가 다가가자 놀랍게도 곧바로 날아가버렸다. 수컷을 속인 것일까? 교미하려고 성가시게 구는 수컷을 피하기 위해 죽은 시늉을 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잠자리가 교미를 피하려고 죽은 체하는 것을 처음 목격한 사례다.”

켈리파에 따르면 죽음을 가장하는 동물로 학계에 알려진 것은 이 잠자리를 제외하면 파리매 2종과 항라사마귀, 닷거미뿐이다. 닷거미는 암컷이 교미 도중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 때문에 수컷이 죽은 체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종의 잠자리 암컷도 꼼짝 없이 누워 있는 것을 묘사한 연구가 있지만 연구자들은 그것이 죽음을 가장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켈리파는 몇 달 동안 암컷 잠자리가 수컷에 쫓기다가 땅에 떨어져 죽은 체하는 사례를 수십 건 기록했다. 그는 암컷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밝히기 위해 별박이왕잠자리의 교미 습성을 조사했다.

그는 별박이왕잠자리 수컷이 교미를 하려고 기다리는 연못에 암컷이 오면 수컷이 공중에서 그 암컷을 가로채 교미를 한다. 그 다음 수컷은 떠나고 암컷이 아무런 보호 없이 혼자 알을 낳는다(다른 종의 잠자리는 암컷이 알을 낳는 동안 수컷이 보호해준다). 켈리파는 “그 때는 암컷이 다른 수컷의 교미 시도에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여러 수컷들이 교미 기회를 노리며 연못의 모든 구석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지속된 관찰 결과 수컷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암컷이 죽은 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암컷이 교미 후 죽은 체하는 경우가 86%나 됐다. “계속 날아다니면 전부 수컷에 잡혀 교미를 하게 된다. 죽은 체한 암컷 27마리 중에서 21마리(77.7%)는 교미를 하려는 수컷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켈리파는 별박이왕잠자리 암컷의 이런 행동이 여러 이유에서 기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적 진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잠자리의 경우 죽은 체하는 것이 원래의 행동 습성이다. 따라서 암컷이 수컷의 강압적인 교미를 피하기 위해 이런 기능을 확대했을 수 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이런 선택적 진화의 기원이 성적 갈등일지 모른다. 암컷과 수컷 각각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적합한 전략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 위험한 전략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암컷은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번식할 수 있다. “자연에선 동물의 그런 행동이 아주 드문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행동 생태학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현재로선 절지동물에서만 확인됐다. 실제로 다른 동물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지 또는 행동 생태학적인 조사가 부족하거나 발견하기가 힘들어 그런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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