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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전 KAIST 총장의 ‘대학 개혁론] “대학이 해외 인재 끌어와야 국가가 발전”

[서남표 전 KAIST 총장의 ‘대학 개혁론] “대학이 해외 인재 끌어와야 국가가 발전”

세계 각국 돌며 대학 개혁 강연·컨설팅 … 능력 따라 보상받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
서남표 전 KAIST 총장 / 사진·심재우 뉴욕특파원
2006년 7월 서남표(81) 당시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으로 취임한 뒤로 개혁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었다. 교수들이 당연시 여기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해 38명 가운데 15명을 탈락시켰고,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토록 했다. 공부 안 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수 없다며 등록금을 차등 부과해 4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빚기도 했다. 교수들의 ‘철밥통 깨기’라는 차원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소통 부재라는 비판과 함께 반발세력을 키웠다. 끝내 임기를 채우지못하고 6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사회 곳곳에 개혁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대학사회는 아직 조용한 편이지만 개혁의 무풍지대일 수 없다. KAIST에서 ‘절반의 개혁’에 성공한 서 전 총장을 최근 보스턴 자택 인근에서 만났다. MIT 명예교수를 맡아 여전히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중이다. 특히 유럽과 호주, 사우디, 싱가포르 등지를 다니며 대학 개혁에 대한 강연과 컨설팅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가 바라는 대학 개혁을 들어봤다.



대학 개혁만큼 어려운 과제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 바꾸기 어려운 게 대학이다. 세계 대학이 경쟁하고 있지만 금방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은 생각은 똑같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사람을 배출해야 기업이 발전한다. 한국에서 삼성 같은 기업이 나온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내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직전인 1954년만 해도 완행열차가 다였는데, 지금은 미국에도 없는 KTX가 다니지 않는가. 정말 놀라운 나라다. 그런 점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과 미국, 일본 등 강대국 사이에서 정말 잘 견뎌내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중앙에 있다고 봐야 한다. 작은 나라지만 중앙에서 중국과 미국을 끌어들여 핵심 노릇을 할 수 있다. 모든 산업은 국제화된 상태이니 대학이 세계 핵심 역할을 지향해야 한다. 중국이든 미국에서 좋은 사람을 끌어와야 한다. 그래야 좋은 아이디어가 쌓이고 사회와 기업이 발전한다.”



문 대통령에게 진정 바라는 대학 개혁이 있다면.


“(문 대통령이)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다. 삼성과 LG는 세계적으로 강한 기업이다. 동시에 세계에서 1, 2등 하는 대학이 나와야 전체 위상이 올라간다. 대학은 아직 세계 톱10에 들어가는 대학이 없다. 기업을 따라서 한국이 발전하려면 결국 대학이다. 젊은 사람들 고용 문제도 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이 쌓이면 글로벌 기업에서 채용할 것이다. 미국 대학의 강점은 전세계에서 좋은 사람이 오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국 대학이 잘되고 있다는 척도는 외국에 있는 학자와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으냐로 삼으면 된다.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의 피해를 곧 보게 될 것이다. EU에 속해 있으면서 영국에 똑똑한 동유럽 교수들이 많이 모인 게 사실인데, 그 복을 브렉시트로 차버린 것이다.”



결국 국제화가 문제인가.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영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 사우디 모 대학재단의 이사로 일하면서 느낀 건데, 행정직에는 사우디 사람만 일할 수 있다. 중요한 자리를 사우디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하면 국제화의 이득을 볼 수 없다. 루마니아를 들여다보니까 근본적인 문제가 루마니아 사람들끼리 다 해 먹더라. 미국 대학처럼 국제화하려고 애쓰는 곳이 호주이다. 개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한다고 해도 국제화는 기정사실이다. 경제적으로 엉켜있고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KAIST 총장 시절 내부적으로 개혁에 불만이 많았다.


“KAIST 교수들은 오래 있다 보면 저절로 생기는 게 많았다. 일단 대학원생 배정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서는 연구비를 받아 와야 대학원생 인건비를 해결할 수 있는데, 당시 KAIST에서는 학교가 지원했기 때문에 대학원생을 많이 받아도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걸 바꾸니까 나이 든 교수들 봉급이 젊은 교수들보다 적어지고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일 잘하고 능력있는 젊은 교수에게 과실이 돌아가도록 했으니 불만이 팽배했다. 게다가 교수의 절반이 경기고 출신으로 최대 파벌이었다. 학과장을 뽑는데 자기들끼리 선거하고 그만이다. 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해야지, 누구를 안다고 우대하면 어느 조직이나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신성철 신임총장이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할 것으로 본다.”



총장 재임시절 교수 수를 대폭 늘렸다.


“유능한 젊은 교수를 수혈하기 위함이었다. 따져보니 1000달러를 쓰면 그중에 169달러가 교수 월급이었다. 이 정도면 교수를 많이 뽑아도 되겠다고 하니까 학교를 말아먹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교수 한 명 뽑으려면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해야했다. 난 생각이 달라서 각 학과에서 마음대로 뽑으라고 했다. 대신 교수의 질은 내가 본다고 했다. 400명 교수의 10%인 40명을 뽑고 싶었다. 첫해에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 뽑지 못하고, 두 번째 해에 90명을 뽑았다. 대신 연구비를 받아오면 학교에 내는 오버헤드 20%를 25%로 올렸더니 재정이 금방 좋아졌다. 젊은 교수들이 경쟁적으로 외부 연구비를 받아온 것이다. 결국 재임 전 400명에서 퇴임 즈음 670명으로 늘렸다. 젊은 교수를 많이 수혈한 것이 KAIST가 요즘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톱10에 들어가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자부한다. 다만 연구비가 많이 들어올수록 주의할 것이 있다. 예상치 않은 곳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정부 규정대로 하기 위해 행정직을 늘려야하고, 독단적인 결정을 막기 위해 위원회 등을 소집해야 한다. 행정직이 늘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효율적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어야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학입시도 국제화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총장으로 있을 때 농어촌 출신 150명을 교장추천으로 뽑았다. 이중 85%는 과학고 출신 학생과 비교해 똑똑하긴 마찬가지였다. 15%는 수학이 모자라서 방황했다. KAIST에서 수학을 못하면 엇나갈 수 있는데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미리미리 특별교육시키지 못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과학고 학생들보다 농어촌에서 온 애들이 사회에 공헌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과학고 출신 학생들은 부모들이 옆에서 도와주면서 지내온 애들이 많아 혼자서 난제를 풀어내는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미래 가능성에 가산점을 주는 입시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가방 하나 들고 입국해 좋은 아이디어로 큰 기업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 잘 만난 것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사회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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